2030에게 시집은 ‘쇼트폼’ 가장 힙하다

장상민 기자 2024. 5. 20. 0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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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젊은 독자들, 시집 선호 ‘눈길’
성인독서율 사상 최저치에도
20대는 74.5%로 많이 읽어
2030, 시집판매 비중 45.3%
다른 장르보다 진입장벽 낮아
다양한 생각 · 감성 담긴 시집
짧은 글로 젊은이들에게 공감
게티이미지뱅크

매해 최저치를 경신 중인 성인 독서율은 올해 발표된 ‘2023년 국민독서실태조사’에서도 사상 최저치인 43%를 기록하며 다시 한 번 ‘책 읽지 않는 시대’를 확인시켰다. 그러나 면면을 뜯어보면 모두가 책을 읽지 않는 것은 아니다. 특히 20대의 독서율은 74.5%를 기록했으며 성인 독서율 중 가장 높았다. 다른 연령대에 비해 20대는 좀 더 책을 읽는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이와 같은 모습은 지난 2월 영국 언론 가디언이 “Z세대가 책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는 보도와 겹쳐지며 활력을 잃은 서점가에 희망을 불어넣고 있다.

놀랍게도 20대 독자들이 높은 관심을 보이는 분야는 강의 교재·자기계발서뿐 아니라 ‘시집’이다. ‘시’라고 하면 교과서에 수록돼 각종 수사법을 분석해야 한다는 이미지적 편견이 있지만 실제 Z세대의 생각은 다르다. 최근 서울 종로구의 시집전문서점 ‘위트앤시니컬’에서 열린 박연준 시인의 낭독회 자리의 절반은 20∼30대가 채웠다. 경기 구리시에서 낭독회를 찾았다는 20대 독자는 “올해 20권의 시집을 읽고 10번의 낭독회에 가는 것이 목표”라며 “시의 다채로운 모습이 매력적이고 시집 자체도 예뻐 소장하기 좋다”고 말했다. 서점을 운영하는 유희경 시인은 “처음 서점을 연 2016년만 해도 20대 고객은 30% 정도였지만 최근에는 매출의 70∼80%를 20대 독자들이 차지해 그 열기를 확실히 체감한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낭독회가 끝난 뒤에도 젊은 독자들은 저마다 3∼5권의 시집을 더 구매하며 기자에게 자신이 좋아하는 시집을 추천하기도 했다.

시집을 향한 젊은 독자들의 애정은 대형 서점의 판매율 집계를 통해 명확히 드러난다. 교보문고의 2023년 통계자료에 따르면 20대는 전체 시집 판매 비중의 25%를 차지했고 30대는 20.4%를 기록하며 뒤를 이었다. 통상적으로 구매력이 높은 40대가 가장 높은 구매 비중을 기록하는 다른 분야와 확연한 차이를 보인 것이다. 서점 관계자는 “시집 판매 자체가 4.1% 증가했는데 20대가 증가세를 이끌었다”고 전했다. 서점에서 시집 매대를 둘러보고 있던 20대 최호연 씨는 “태어나서 올해 처음으로 시집을 구매해봤다”고 말했다. “처음에는 SNS를 통해 친구가 찍어 올린 표지가 마음에 들어 구매했지만 읽다 보니 다른 장르보다 오히려 진입장벽이 낮아 흥미를 붙이기 쉬웠다”면서 “선택의 폭이 넓고 나만의 감성을 드러낼 수 있어서 매력적”이라고 덧붙였다.

서울 종로구 시집 서점 위트앤시니컬.

20대들이 시집을 선호하는 경향에 대해 장은수 출판평론가는 “현대 사회가 빠른 속도로 변하는 만큼 20대들의 정서도 하나의 언어로 표현될 수 없다”며 “안희연, 양안다, 박은지, 육호수 등 20대들이 스스로 좋아하는 감수성과 언어를 갖춘 시인들을 발견해내고 팬이 되기도 한다”고 말했다. 실제 100권 넘는 시집을 소장하고 있다는 한 20대 여성 독자에게 시의 매력에 대해 묻자 “젊은 시인들의 시집은 짧은 길이를 통해 수시로 달라지는 마음과 기분의 변덕을 다른 장르보다 시원하게 공감해준다”며 “안미옥 시인의 시에 푹 빠졌다”고 답했다.

이와 같은 경향성은 시집을 출간하는 출판사들에서도 감지된다. 문학과지성사 대표인 이광호 문학평론가는 “한국은 외국과 달리 새로운 젊은 독자가 시집 시장에 꾸준히 유입된다”고 말하며 “문학 중 ‘쇼트폼’이라고 할 수 있는 시가 예측할 수 없는 언어를 통해 젊은 독자들에게는 ‘힙한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고 진단했다. 또한 “젊은 독자들이 원하는 새로운 언어, 감각, 형식을 가진 젊은 시인을 계속 발굴해야 독자들의 선택을 받을 수 있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교보문고 자료에 따르면 1997년생 고선경 시인의 ‘샤워젤과 소다수’(문학동네), 박은지 시인의 시집 ‘여름상설공연’(민음사)을 구매한 독자 중 20대 비중은 각각 58.6%와 57.1%를 차지했다. 이 대표의 말처럼 20대 독자와 젊은 시인의 감성이 맞아떨어지고 있는 셈이다.

장상민 기자 joseph0321@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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