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욱의 기후 1.5] 이제 평가의 시간…선언의 시간은 지났다

박상욱 기자 2024. 5. 20. 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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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미래'에서 '내 일'로 찾아온 기후변화 (236)
주요 선진국들의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확연한 감소세에 접어든 지 오래입니다. 30여년 전인 1990년의 배출량과 비교했을 때에도, 이미 그보다 더 적은 양을 뿜어내는 경우가 대다수이고, 그렇지 않다고 하더라도 대체로 2000년 전후를 기점으로 본격적인 감축을 실행하고 있죠. 그러나 선진국들의 이런 감축을 두고 '카본 오프쇼어링(Carbon Offshoring, 자국의 탄소배출 몫을 타국에 떠넘기는 행위)'이라는 비판도 쏟아집니다.

이러한 온실가스판 '위험의 외주화'는 실제 통계에서도 나타납니다. 국가들의 국경 내 배출(Territorial Carbon Dioxide Emissions)과 소비 기준 배출(Consumption-based Carbon Dioxide Emissions)을 비교해보면, 선진국들이 얼마나 많은 배출을 다른 나라에 돌리는지 알 수 있죠.

지난주 연재에서 소개해드렸던 미국과 영국, 프랑스, 독일, 일본 등 주요 선진국의 국내 배출량과 소비 기준 배출량 통계를 보더라도, 소비 기준 배출이 이들 국가의 국내 배출량보다 더 많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반면 '세계의 생산기지'로 꼽히는 중국과 인도의 경우, 이와 반대로 소비 기준 배출이 국내 배출보다 적었죠. 이런 가운데, 철강, 자동차 등 탄소집약적인 제품뿐 아니라 반도체, LCD 및 LED 등 에너지집약적인 제품을 주력 수출 상품으로 하는 우리나라는 중국이나 인도와 달리 소비 기준 배출량이 더 많았습니다. 우리의 온실가스 배출 증가를 마냥 '선진국 탓'으로 돌리기 어려운 셈입니다.

각 나라의 온실가스 배출량 그 자체와 감축 실적은 외교 무대를 넘어 통상 분야에서도 첨예한 '총성 없는 전쟁' 속 무기로 사용되기 시작한 가운데 우리나라로서는 상대적으로 불리한 위치에 서 있을 수밖에 없게 됐습니다. 심지어, 여타 선진국들은 단순히 국내 배출을 넘어 소비 기준 배출마저 대폭 줄여낸 만큼, '쓴소리'를 들어야 할지도 모를 정도입니다. 우린 선진국임에도 불구하고 1990년 이래 국내 배출량은 2.4배로 증가했고, 소비 기준 배출량 또한 2.1배로 늘어났기 때문입니다.

뒤늦은 산업화를 핑계로 삼기에도 상황은 여의치 않습니다. 1850년 이래로 국가별 누적 배출량을 보더라도, 우리는 세계 17위로 다른 개도국들의 비판 대상이 될 처지이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OECD 가입국을 대상으로 온실가스 감축 의무를 부여했던 1997년 당시, 우리는 멕시코와 함께 이 의무에서 면제된 '예외적 국가' 두 곳 중 한 나라이기에, 최근까지 계속된 온실가스 배출량의 '기록 경신 행진'은 기후변화를 중심 의제로 하는 국제무대에서 한국의 목소리를 작게 만드는 '족쇄'로 작용할 수밖에 없습니다.

문제는, 이러한 현실이 그저 대한민국이라는 국가의 '글로벌 기후 리더십'만 약화하는 데에 그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지난 2022년 연말, 163번째 연재 기사 〈[박상욱의 기후 1.5] 탄소를 기준으로 모든 것을 바라보면?〉에서 전해드렸던 탄소 기반의 무역 통계를 다시 찾아봤습니다.

그로부터 약 1년 4개월의 시간이 흘렀지만, 여전히 OECD가 공개한 통계의 최신 버전은 2018년 통계였습니다. 2018년 기준, 우리나라는 전 세계에서 6번째로 가장 많은 양의 탄소를 '순수출'하고 있는 나라입니다. 한 나라가 수입하고, 수출하는 것들을 무게나 제품의 수, 혹은 가격으로 따져보는 것이 아니라, 그 상품에 내재된 이산화탄소 배출량으로 계산했을 때, 우리는 수입한 이산화탄소의 양보다 수출한 이산화탄소의 양이 5,570만t 가량 더 많았던 것이죠. 2018년과 2024년, 우리의 주력 수출상품 구성이 크게 달라지지 않은 만큼, 이후에도 순위 자체에서 '지각변동 급'의 변화는 없었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반면, 이웃 나라인 일본의 경우 1억 5,990만t의 이산화탄소를 순수입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각종 통계에서 선진국들의 집합, 대표값이라고 볼 수 있는 OECD 회원국 모두의 탄소 순수출량은 ?14억 4,640만t으로, 무역을 통해 탄소를 수출하는 것이 아니라 수입중인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EU의 CBAM(Carbon Border Adjustment Mechanism, 탄소국경조정제도)을 시작으로, 통상 교섭 과정에서 제품별 혹은 기업별 배출량이 주요 이슈로 떠오른 상황에서, 우리는 다른 나라의 탄소 수출을 트집잡기보다 우리의 탄소 수출을 트집잡힐 일이 빈번해질 수밖에 없다는 뜻입니다.

이러한 탄소 수출입 이슈는 재화의 수출입 과정에서 발생하는 문제라 국가나 정부가 할 수 있는 부분이 없거나 극히 제한적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당장의 생산 효율 개선이나 대대적인 공정의 전환은 개별 기업의 몫이라 할지라도, 기업이 사용하는 전력의 경우, 국가의 역할이 지대하기 때문입니다. 에너지 믹스는, 전력 믹스는 결국 정부의 정책으로 결정되니까요. 특히, 발전과 송배전에 이르기까지 사실상 국유화에 가까운 상태를 보이는 우리나라의 경우는 더더욱 그렇습니다.

글로벌 기후에너지 싱크탱크인 엠버(Ember)는 지난 8일 〈Global Electricity Review 2024〉를 공개했습니다. 이 보고서 속 데이터들을 재가공해 우리에게 필요한 정보와 시사점을 찾아봤습니다. 금세기 들어 대대적인 에너지전환에 힘입어 전력의 청정화는 점차 빨라지고 있습니다. 1kWh의 전기를 생산할 때 전 세계 평균적으로 뿜어져 나온 이산화탄소의 양은 2000년 517.84g에서 2023년 480.24g으로 7.3% 감소했습니다. OECD 평균으로는 476.58g/kWh에서 341.07g/kWh로 무려 28.4%나 줄어들었습니다.

우리나라의 단위 전력당 탄소 배출량은 2000년 461.59g/kWh에서 2018년 520.61g/kWh까지 무려 12.8% 급등했습니다. OECD 평균은 고사하고, 전 세계 평균보다도 높은 원단위 배출량을 기록한 것이죠. 당시 우리나라의 국가 총 배출량 또한 역대 최고를 기록하기도 했습니다. 다행히, 그 이후 우리나라의 전기는 뒤늦게나마 조금씩 탄소 다이어트를 시작했습니다. 그 결과, 2023년엔 430.57g/kWh까지 낮아졌죠.

일본의 경우, 우리와 비슷하거나 소폭 낮은 배출량을 기록하다 2011년 3월 후쿠시마 참사로 원전의 가동이 전면 중단됨에 따라 2012년 무려 594.53g/kWh라는, 선진국에선 좀처럼 찾아볼 수 없는 수준의 높은 단위 전력당 배출량을 기록하고 말았습니다. 이후 후쿠시마 원전을 제외한 다른 원전이 단계적으로 재가동에 들어가고, 대대적인 재생에너지 확대에 주력하면서 2023년엔 세계 평균에 근접한 484.89g/kWh까지 배출량을 줄여냈습니다. 불과 11년 만에 18.4%의 감축을 기록한 셈입니다.

한편, 미국과 EU의 경우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등 외부 변수로 최근 부침이 있었으나, 줄곧 꾸준한 감축을 이어오는 중입니다. EU의 지난해 단위 전력당 배출량은 243.83g/kWh로, 우리나라의 56.6% 수준에 불과합니다. 한 기업이 두 곳에서 같은 양의 전력을 사용했다고 하더라도, 그로 인한 배출량은 배 가까이 차이날 수 있는 것입니다.

왼쪽의 국가별 단위 전력당 탄소 배출량 그래프에선 큰 두각을 나타내지 못하지만, 2000년 대비 얼마나 감축을 달성했는지를 나타낸 오른쪽 그래프에선 유독 눈에 띄는 나라가 하나 있습니다. 바로, 중국입니다. 지난해 기준, 중국에서 1kWh의 전력을 생산할 때 뿜어져 나온 온실가스는 580.69g으로 세계 평균의 1.21배에 달하지만, 이는 2000년 대비 무려 202.62g을 줄여낸 결과였습니다. 지속적인 에너지전환으로 배출량을 줄여온 EU나 미국보다 더 많은 감축량을 기록한 것이죠. 인도 또한, 20여년 사이 26.6g 가량을 줄여내며 우리나라와 비슷한 감축폭을 보였습니다.

실제 중국의 재생에너지 관련 통계를 보면, 글로벌 재생에너지 확산을 '하드 캐리'했다고도 표현할 수 있을 정도입니다. 2010년 이래, 전년 대비 태양광 및 풍력 발전량의 증가분을 살펴보면, 중국 한 나라에서 늘어난 정도가 중국을 제외한 전 세계에서 증가한 정도와 맞먹습니다. 심지어, 2021년(전년 대비 255.2TWh 증가)과 2023년(전년 대비 279.6TWh 증가)의 경우, 그 외 모든 나라에서의 증가분을 넘어설 정도의 성장을 기록하기도 했습니다. 중국과 함께 '글로벌 생산기지'로 국가 내 배출량의 급증세를 이어가고 있는 인도의 경우, 2015년 6.57TWh에 불과했던 태양광 발전량을 2023년 113.41TWh로 무려 17.3배 끌어올리며 전 세계 3위 태양광 발전국으로 거듭났고요.

이를 보면, 지난 2021년 11월, 영국 글래스고에서 진행됐던 제26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6) 폐회식 당일 벌어진 촌극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게 됩니다. 당시 중국과 인도는 글래스고 합의문 초안에 담겼던 “석탄화력발전의 단계적 폐지”가 “단계적 감축”으로 바뀌도록 뒤늦게 몽니를 부린 바 있습니다. 당시 전 세계로 생중계되던 폐회식 현장의 어수선한 모습, 그 속에서 존 케리 미국 기후특사가 단상 위아래를 오가며 중국, 인도, EU 등의 대표들과 분주히 이야기를 나누고, 결국 이러한 갑작스런 요구가 받아들여진 배경엔 분명 이러한 통계도 있었을 것입니다. '전환에 열심'인 미국, EU보다도 더 가파르게 전력의 청정화를 진행 중이라는 정상이 참작된 것이죠.

올해 정부는 2035년 NDC(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와 더불어 BTR(격년투명성보고서)을 작성해야 한다. (자료: 탄소중립녹색성장위원회)
올해는 “2018년 대비 40% 감축”이라는 2030년 NDC(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를 넘어, 그보다 더 진일보한 2035년 NDC를 마련해야 하는 해입니다. 2035년 NDC를 2025년까지 제출해야하기 때문이죠. 또한, 올해부터는 더 이상 '어느 시점까지 몇 % 감축하겠다'는 선언이나 목표가 담긴 문서만으로 생색을 낼 수도 없습니다. BTR(Biennial Transparency Report, 격년투명성보고서)이라고 하는, 파리협정에 따른 의무가 비로소 시작되는 해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의 기후위기 대응 상황을 검증한 결과를 보고서로 만들어야 하는 것이죠. 단순히 우리의 온실가스 배출량 또는 흡수량만을 담아내는 것이 아니라, 감축목표의 이행 및 달성 현황, 기후변화의 영향과 적응 정책이 무엇인지, 개도국에 어떤 지원을 했는지 등을 상세히 작성해야만 합니다.

2015년 파리협정 이후 첫 국가별 평가를 앞둔 상황에서, 마치 밀린 방학 숙제를 하듯 2024년에 갑자기 온실가스를 대량 감축하고, 국가의 에너지 믹스를 바꾸는 일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합니다. 지금까지의 이행 내용을 충실히 정리하고, 무엇이 부족했는지 엄정한 자기 평가를 할 수밖에 없죠. 다만, 올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도 분명 존재합니다. 바로, 대대적인 에너지전환 전략과 구체적인 감축 로드맵을 준비하는 것입니다. 최소한, 지금까지의 부족한 이행 상황을 면피하기 위해서라도 말이죠. 중국과 인도가 지금 당장 114억, 28.3억t이라는 엄청난 양의 온실가스를 뿜어내는 온실가스의 주범이라며 비난하거나 무시하기보다, 이 둘의 사례를 면밀히 분석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박상욱 기자 park.lepremier@jt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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