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세계를 만드는 신은 공평해야지…<메지나><망고의뼈> 골드키위새

한겨레21 2024. 5. 20. 0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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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ERS][21WRITERS 골드키위새①] 할머니가 돼서도 자기 만화를 하고 싶다는 작가
골드키위새 작가의 캐리커처. 골드키위새 제공

골드키위새 작가가 늘 궁금했다. 데뷔작 <메지나>부터 금광을 발견한 기분이었다. 첫 작품부터 이만한 규모의 이야기를 이렇게 섬세하게 풀어낸다니. 비슷한 시기에 만화평론 일을 시작했던 터라 연재 중단 사건만 아니었다면 인터뷰도 할 뻔했다. 나는 아쉬웠지만 작가는 계속 나아갔다. 연재 중단 시기에 발표한 <우리집 새새끼>는 반려동물 생활툰에 없던 남다른 시선과 가공할 개그 감각을 뽐냈다. 곡절 끝에 <메지나>를 완결한 골드키위새 작가는 이듬해 <죽어도 좋아♡>(이하 <죽좋>)로 만화계 최고 권위의 상이라 할 ‘오늘의 우리만화’를 수상했다. 너른 인정의 증명 같은 일에 내 일도 아닌데 죽어도 좋은 기분이었다, 정말로.

다음 작품 <망고의 뼈>는 가정 내 성폭력을 경험한 청소년을 스릴러와 로맨스 장르를 경유해 보살피며 피해 이후의 세계가 가능할 수 있는 조건을 따뜻하게 펼쳐 보여줬다. 그리고 2023년, 최장기 연재작인 <순정 히포크라테스>(이하 <순히포>) 완결 뒤엔 더 궁금해졌다. 이 금광의 매장량은 끝이 없는 걸까. 어떻게 그 엄청난 <죽좋>보다 더 좋을 수 있지? 어떻게 갈수록 더 풍성한 주제 의식을 이렇게까지 구체적이고 적확하게 펼쳐 보일 수 있지? 그렇게 궁금했고 만나고 싶었던 골드키위새 작가와 14년의 기다림 끝에 이야기를 나누게 됐다. 질문이 죄다 구름 위에 떠 있는 것처럼 보인다면 착각이 아니다.

뭘 배워도 ‘3개월’을 넘기지 못했던 어린이

<메지나>의 체자. 골드키위새 제공

—올해로 웹툰 작가 데뷔 14년차다. 2011년 <메지나>로 데뷔한 뒤 건강 문제로 요양했을 2018년을 빼고는 쉬지 않고 작품 활동을 했다. 대체 얼마나 만화 창작을 좋아하는 건가.

“14년이라니 저도 믿어지지 않습니다. 며칠 전쯤 주변에 데뷔 10주년 얘기를 했던 것 같은데, 주간 연재가 시간의 흐름을 가속한다는 학계의 정설이 맞나봐요. 만화 좋아하는 마음이 크니 가능했겠지만, 한 번 크게 아프고 나서는 살면서 그리고 싶은 만화를 다 못 그리고 죽을 수도 있겠다 싶어서 조금 조급해지긴 했어요.”

—그간 지켜보며 이야기보따리가 잔뜩 있다는 생각을 했다. 하고 싶은 작품 다 못하고 죽을까 걱정하는 것도 그렇고.

“그리고 싶은 얘기는 많은데 불러주는 곳이 계속 있을지가 걱정되죠. 시켜만 주면 죽을 때까지 다 못 그릴 만큼 보따리는 많아요. 하지만 그리고 싶은 만화와 시장에 내놓을 수 있는 만화 사이에 충돌이 없을 수 없고, 그래서 거절도 많이 당합니다. 그걸 잘 조율해야 할머니가 돼서도 만화로 먹고살 수 있겠죠.”

—이런 이야기꾼이 탄생한 과정이 궁금하다.

“어린이 시절 별명이 3개월이었습니다. 뭘 배워도 3개월을 넘기지 못한다고 어머니가 지어주셨어요. 만화는 이렇게 길게 하는 거 보니까 정말 재밌는 게 틀림없습니다. 유년기부터 사촌 언니가 만화 그리는 걸 보면서 따라 그렸어요. 언니 덕분에 초등학생 때 <테르미도르>나 <불의 검>(김혜린 지음) 같은 순정만화도 접했고요. 또래들과 함께 소년만화도 봤으니, 자연스럽게 다양한 작품들을 즐기며 꿈을 키워온 셈입니다.”

—만화만 팠다는 얘기인가. 한눈 하나도 안 팔고?

“만화책 보는 것도 좋아했지만 연습장에 만화 왕창 그려서 친구들한테 보여주는 게 생활이었습니다. 이렇게 옛날부터 꿈이었지만 좌절할 만한 일은 많았어요. 여기저기 투고가 떨어지기도 했고요. 그런데도 계속하고 싶어서 그냥 이것만 계속했어요.”

—의외다. 엄청 젊은 나이에 데뷔해 승승장구한 것만 봐서 천재라는 인상이었다.

“젊은 나이에 데뷔한 건 맞지만 승승장구는 전혀 아니에요. 출판만화 잡지 쪽에서 잠시 작품을 준비했지만 잘 맞지 않았어요. 반면 막 부상하던 웹툰은 창작의 자유도가 높아서 매력적이었어요. 당시엔 아마추어 만화 투고가 활발해서 나도만화가(당시 다음만화속세상), 도전만화(네이버웹툰) 등에 작품(<완전한 인간>)을 올리기 시작했죠. 그러다 데뷔했고, 그 이후로도 우여곡절을 경험하며 작가 생활을 하고 있어요.”

한 인물을 지나치게 사랑하지 않는다는 원칙

골드키위새 제공

—이번에 작품들을 다시 읽으며 작품 세계 속에서 인물을 살아가게 만들고 관계를 엮는 솜씨에 감탄했다.

“저는 일단 인물이 뚜렷할 때는 인물에 세계관을 맞추고(<순히포>), 세계관이 뚜렷할 때는 인물을 맞추는 편입니다.(<죽좋>) 생각해둔 캐릭터와 세계관을 이리저리 끼워맞춰 볼 때도 있고요.(<메지나>) 어떻게 하든 캐릭터에 너무 빠지거나 감정 이입하지 않도록 노력합니다. 캐릭터를 너무 사랑하게 되면 그 세계의 균형이 무너져버린 느낌이라서요. 캐릭터 속에 취향이 아닌 요소를 집어넣기도 합니다. 세계를 만드는 신은 아무래도 공평해야 한다고 생각해서요.”

—그런 공평함이 여러 인물의 관계성을 다양하게 구성하는 열쇠인 것도 같다. 하지만 주인공들에게도 공평한지는 잘 모르겠다. 똑똑한 주인공들을 세계의 문제에 현명하게 대면하게 한 경우가 많다.

“너무 완벽하면 과하게 사랑하게 되고 그러면 특별히 아픈 손가락으로 취급하게 되거든요. 아픈 손가락엔 곤경을 던져주기가 어려워지죠. 공교롭게도 주인공들이 대체로 똑 부러지는 면은 분명 있습니다. 똑똑한 인물이 어려움을 돌파해나가는 것이 스토리상 이점이 많아서겠지만, 제가 그다지 똑똑하지 않은 사람이라 무의식중에 그걸 추구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독자들 사이에 도는 말이 있다. “캐릭터의 지능은 작가의 지능을 뛰어넘지 못한다.” 늘 맞지는 않지만 골드키위새 작가는 그럴 거라 생각했다. 체자나 사해처럼 똑똑하지 않은가. 청소년기엔 소복이 같지 않았나.

“저는 눈속임이 가능하다고 봅니다. 작품의 세계를 만들 때 자료 조사를 하고 자문받아 이미 작가의 한계를 뛰어넘는 세계가 만들어집니다. 그 안의 많은 요소를 장악하고 있으니 연출과 스토리로 똑똑한 인물을 그려낼 수 있죠.”

—자료 조사와 자문의 중요성에 대한 강조로 이해된다. 자료 조사를 어떻게 하는지 궁금하다. 전문가 인터뷰 등 많은 준비를 한다고 알고 있는데.

“인터뷰에 엄청나게 많은 시간을 쓰지는 않아요. 결과적으로 만화 만드는 시간을 희생할 수밖에 없게 되니까요. 오히려 저는 자문받은 내용에 제 만화를 변형시켜 끼워넣는 방법을 많이 씁니다. 실제와 만화 내용의 타협점을 찾는 거죠. 자료 조사도 비슷해요. 작품 시작할 때 일단 키워드에 해당하는 책은 다 사지만, 다 읽지는 못하죠. 빠르게 넘기면서 내 작품에 딱 쓸 부분을 위주로 뽑아내는 편입니다.”

인물 간 사랑 방해하는 “망사랑 전문가”

<순히포>의 사해. 골드키위새 제공

—애초에 기획이 탄탄하기 때문일 것 같다. 자료 조사 내용을 반영할 유연성도 있는 거고. <순히포> 때는 특히 의료 자문이 많았을 텐데. <망고의 뼈>에도 변호사가 등장하니 자문이 필요했을 거다.

“<순히포>는 전문가 의존도가 높을 수밖에 없었어요. 제가 공부를 많이 했다기보다는 제 질문에 그분들이 답변을 잘해주신 거라고 봐야죠. <망고의 뼈> 때는 변호사에게 법률 자문을 받았는데 법과 현실을 이야기에 소화하느라 힘들었어요. 독자들이 보면서 이탈하지 않으려면 이야기에 개운함을 줘야 하는데 유리사와 같은 인물들이 경험했을 현실에는 그럴 틈이 없었습니다. 결말을 바꾸지 않는 선에서 현실을 최대한 반영해 이야기를 꾸리느라 고생했어요.”

—<메지나>를 제외하면 현대 한국이 배경인 것도 작품에 구체적인 활용이 가능해서인가? 시대물이나 판타지 장르보다 현대물을 많이 발표한 이유가 궁금하다.

“우선 배경과 소품으로 쓸 스케치업 소재가 많아서라는 현실적인 이유가 있습니다. 그리고 드라마 판권을 팔기가 용이하다는 사악한 이유가 있습니다. 한번 <죽좋> 판권을 팔아보고 못된 버릇을 들인 것이지요. 그래도 연달아 현대물을 하니까 다른 것이 그리고 싶어져서 차기작은 현대물이 아닙니다.”

—차기작 이야기가 너무 궁금하지만 마지막에 하자. <순히포>에서 반가웠던 게 있었는데, 레즈비언 커플 보듬이와 주리다. 지엘(GL, 여성 캐릭터 간 연애를 그린 장르)이 아닌 이상 한국 만화에서 레즈비언 커플이 성사된 예를 본 기억이 별로 없다. 이 커플과 관련해 조금 들어보고 싶다.

“둘 얘기를 하려면 지안이 얘기도 해야 합니다. 후기에도 썼지만 지안, 보듬, 주리는 ‘보듬지 않는다’ ‘보듬어 주리’라는 이름 퍼즐을 가장 먼저 기획했어요. 보듬을 사이에 두고 빛과 그림자 같은 존재로 설정했죠. 반가웠다고 말씀해주셨는데 지안 얘기가 좀 길어지고 주리와의 이야기를 많이 그리지 못해서 조금 아쉽습니다. 그래서 하나만 말씀드리자면, 주리와 보듬이는 롱디를 하게 됩니다. 금참대 흉부외과 교수가 비에 젖은 아기 고양이 표정으로 붙잡아서 보듬이는 금참대에 남거든요. 주리는 서울로 가게 됩니다.”

—왜 둘이 사랑하는 걸 방해하는가.

“제가 망사랑 전문이기 때문입니다. 이성애든 동성애든 이루어진 사랑을 그리는 건 너무 어렵습니다. <메지나> 때 체자를 향한 퀼라의 망한 사랑 같은 건 잘 만든다고 생각하는데, 일단 성사된 커플의 이야기를 그리는 건 자신이 없습니다.”

—솔직히 <망고의 뼈> 인물들이 모두 맺어지는 건 어색했다. 그래도 <순히포> 사해와 준혁의 연애는 좋았고 <죽좋> 커플의 사랑도 아름답게 성사됐다.

“제 기준에는 미치지 못합니다. ‘로맨스’를 간판에 달아둔 작가로서 의무감이 있지만 어색하기 짝이 없습니다. 서로 사랑하는 사람들의 데이트 장면을 짜는 게 너무 어렵습니다.”

◆<죽어도 좋아♡><메지나><순정 히포크라테스> 골드키위새 작가 인터뷰는 다음 기사로 이어집니다.  ‘한 마디로 형용할 수 없는 순정’ (https://h21.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55522.html)◆

조익상 만화평론가

팁박스 - 골드키위새의 관람차

<순정 히포크라테스> 시즌2 27화. 골드키위새 제공

이별은 관람차에서. “서로 사랑하는 사람들의 데이트 장면을 짜는 게 너무 어렵”다던 골드키위새 작가는 작품 속 데이트 코스로 놀이공원을 애용한다. 특히 <망고의 뼈>와 <순히포>에는 공통적으로 관람차 장면이 있고, 그 속에서 커플이 헤어진다. 이별의 배경이 관람차인 것은 왜일까. 관람차 안에서 보이는 것은 두 가지다. 함께 탄 사람과 높은 곳의 풍경. 둘을 함께 볼 수 있는 공간에서 선택이 요청된다. 넓은 가능성의 세계와 연인의 어쩌면 좁을지도 모르는 품 사이에서 내릴 선택이다. 꽤 자주 여성이 내릴 때만 계산적이라고 말해지는 선택.

물론 같은 공간이지만 두 작품에서 헤어질 결심이 구성되고 발화되는 공정은 다르다. 특히 <순히포>의 관람차 이별에선 앞선 선택이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다가온다. 그것은 마치 높은 곳에서 연인을 빌려 행해지는 사고실험 같고, 그 실험의 답은 전혀 다르게 풀린다. 따라서 그것은 이별로 끝나지 않는다. 이처럼 의미심장한 공간 활용을 보여준 작가는 그저 놀이공원을 좋아하고 관람차를 즐겨 타느라 그리되었다지만, 글쎄. 골드키위새의 관람차에는 뭔가 파헤쳐볼 것이 있다. 골드키위새 작가 본인에게는 수없이 많고.

작품 목록

<메지나> 2011년~2014년 다음 만화속세상(시즌 1∼4)과 레진코믹스(시즌5)에서 연재한 데뷔작. 현재 카카오웹툰과 카카오페이지에서 서비스 중. 문학동네 단행본 출간.

판타지는 아닌 서양풍 가상 시대물. 골드키위새표 지략 대결과 망사랑의 원형이 담겼다.

<우리집 새새끼> 2013년 다음 만화속세상 연재. 현재 카카오웹툰과 카카오페이지에서 서비스 중. 애니북스 단행본 출간.

이런 반려동물 생활툰은 없었다. 울다 웃고 웃다가 우는, 골드키위새표 후기 만화 스타일의 참신한 생활툰.

<죽어도 좋아♡> 2015~2016년 다음 만화속세상 연재. 현재 카카오웹툰과 카카오페이지에서 서비스 중. 생각정거장 단행본 출간. 한국과 중국에서 각각 드라마화.

악덕 상사가 죽으면 주인공 루다의 하루가 리셋된다. 루프물 속에서 그려지는 요절복통 사람 고쳐 쓰기.

<망고의 뼈> 2016~2017년 레진코믹스 연재. 골드키위새 글, 넋부자들 그림. 현재 레진코믹스와 카카오페이지에서 서비스 중.

성장 배경이 다른 네 청소년이 서로를 통해 구원받고 서로를 구원하는 이야기.

<순정 히포크라테스> 2019~2023년 카카오웹툰에 연재. 현재 카카오웹툰과 카카오페이지에서 서비스 중.

의대생 군상극이자 골드키위새의 대표 순정만화. 중심인물뿐만 아니라 주변 인물들의 서사도 충실해 여러 감정과 생각거리를 안겨준다.

<인어의 연서> 2023년 젊은 만화가 테마단편집 <이 편지가 도착하면은>(문학동네) 수록 단편.

안데르센을 모티프 삼은 흑백 출판만화. <메지나>와 같은 시기에 기획했던 작품을 단편으로 소화했다는 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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