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원비에 월세·용돈까지 年 1억 넘게 써요"…재수생의 눈물 [대치동 이야기⑥]
※ 한국경제신문과 한경닷컴은 매주 월요일 대치동 교육 현실의 일단을 들여다보는 '대치동 이야기' 시리즈를 연재합니다.
"재수 종합학원에 단과 수업 학원, 월세에 용돈까지…부모님이 제게 쓰는 돈만 한 달에 600만원이 넘어요. 실패를 한 번 더 할 순 없으니 마음 다잡고 집중해야죠."
충남 당진에 살다 재수를 앞두고 대치동으로 이사 온 A양의 이야기다. A양은 "지방에서 '대치동행'을 선택한 경우 1년에 1억 넘게 쓰는 집도 있다"고 말한다. 그가 머무는 한티역 오피스텔 한 달 월세는 150만원. 학원가로 향하는 이동 시간을 줄이기 위한 선택이었다. A양은 "옵션에 TV가 있어서 집주인에게 따로 빼달라고 말했다"며 "학원이 끝나면 밤 10시가 넘어 부모님이 귀갓길이 걱정된다며 폐쇄회로(CC)TV 설치 여부도 꼼꼼히 확인했다"고 말했다.
아침 6시에 기상하는 A양은 식사 후 한약을 먹은 뒤 재수 종합학원으로 향한다. 평일에는 이곳에서 대학수학능력시험을 위한 전 과목 관리를 받는다. 담임 선생님도 따로 있어 생활지도도 이뤄진다. 수업 시작 전 휴대폰과 태블릿 등 전자기기를 전용 캐비닛에 제출하고 오롯이 공부에 집중한다. 점심, 저녁 시간에는 전문 영양사를 둔 이 학원에서 제공하는 급식을 먹는다.
학원을 마친 후에는 바로 자취방으로 복귀한다. 공부 환경 조성을 위해 독서실 책상도 구비했다.
주말에는 A양의 취약 과목인 국어와 사회탐구 영역 1타 강사 현장 강의를 듣는다. 격주 주말에는 부모님이 서울로 와 반찬을 채워주고 집 청소를 돕는다. 아침잠이 많은 A양은 '수험생 수면장애 치료'도 받는다. A양은 "24학년도 수능 만점자가 공부 비결로 아침 공부를 꼽았다"며 "대치동 한의원에서 짧은 시간을 자도 깊은 잠에 취할 수 있는 맞춤형 약을 처방받았다"고 했다.
학원 하나 때문에 지방서 상경하는 재수생들
대치동 재수생들에게 가장 중요한 건 자신에게 맞는 학원 선택이다. 대치동 재수학원은 크게 △재수 기숙학원 △재수 종합학원 △독학 재수학원으로 나뉜다. 대치동의 한 재수 종합학원 관계자는 "학습 시간 전후로 관리가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학생의 목표는 무엇이며 현 성적대는 어느 정도인지, 학습환경 분위기는 어떤지 등에 따라 학생과 부모마다 학원 선택 기준이 다르다"고 했다.
재수생 사이 가장 유명한 학원 중 하나는 시대인재 재수 종합학원이다. '불수능'이었던 지난해 수능 만점자와 전국 수석 두 명 모두 시대인재 출신으로 알려졌다. 시대인재 재수종합반의 월평균 수강료는 250만원 수준. 수업료와 독서실비, 콘텐츠비(교재 및 모의고사)가 포함된 가격이다. 추가로 점심과 저녁을 제공하는 급식비는 40만~50만원 선. 시대인재와 별개로 운영되는 사설 기숙사 등을 이용하는 학생이라면 평균 150만원이 추가돼 월 450만원을 내는 셈이다.
시대인재는 지방에서도 상경해 수업을 듣는 학원으로 유명하다. 실제 지난해 수능에서 전국 표준점수 전국 수석을 차지했던 이동건 군도 대구에서 상경해 자취하며 이 학원에 다녔다. 연초에는 시대인재 등 유명 재수학원이 모여있는 학원가 일대에 원룸을 구한다는 부모들의 문의가 쇄도한다.
한 단기 임대 플랫폼에 올라온 대치동 학원가 인근 월세 시세는 30만~270만원으로 형성돼있었다. 매물 정보에 '시대인재 근처'를 강조한 한 원룸은 '1주에 34만원, 풀옵션으로 공부 분위기 최적, 한달 임대도 가능'이라고 홍보했다. 이외에도 '대치동 학원가 걸어서 3분 거리, 한티역 초역세권' 등 문구를 걸어두고 세입자를 구하는 곳도 많았다. 대치동 한 공인중개사무소 관계자는 "가격과 상관없이 조건이 좋으면 바로 계약하는 부모들도 많고, 학생을 혼자 보내기 두려워하는 부모들은 투룸을 계약하고 아이들과 함께 거주하기도 한다"고 했다.
기숙·독학부터 의대 특별반…재수학원 '천차만별'
재수생들이 시대인재와 같은 재수 종합학원만 고집하는 것은 아니다. 재수 기숙학원은 학습 및 생활시간을 비롯해 면학 분위기를 해칠 수 있는 과도한 친목이나 이성 교제까지 엄격히 금지한다는 점에서 인기다. B 독학 재수학원 관계자는 "독학 재수학원은 학생 스스로 인터넷 강의 및 현장 강의 수업을 골라 듣고 주도적으로 학습 계획을 세워 공부하는 시스템"이라며 "학생이 원하는 과목에 집중할 수 있어 최상위권 학생들에게 선호도가 높다"고 했다.
평일에 대치동 학원에 가기 어려운 대학생과 직장인은 주로 주말을 활용한다. 대치동 C 재수학원 주말반은 토요일마다 실제 수능 시간에 맞춰 국어, 영어, 수학 과목 모의고사를 진행한다. 점심시간 이후에는 각각 1~2시간 내외로 주요 과목에 대한 단과 수업을 한다. 주말만 다니는데도 주요 과목에만 한 달에 평균 100만~150만원이 든다. 여기에 탐구 과목 단과 수업을 신청하면 40만원을 추가로 내야 한다.
재수생뿐 아니라 상위권 이공계 대학 재학생, 직장인까지 의대 입시에 도전하기 위해 재수학원을 찾는 경우도 늘었다. 이미 대치동에는 '직장인 야간 의대반', '최상위 문과생 의대반' 등 특별반도 여럿 생겨난 상황이다. 의대 증원 정책 영향으로 지난해 30%대 초반이었던 N수생 수능 응시 비율은 올해 더 높아질 수 있다는 전망도 나왔다.
특히 한의대는 인문계열 수험생 중 최상위권 학생들이 한 번쯤 도전해보는 학과로 꼽힌다. 실질적인 준비 인원은 뽑는 인원이 적은 탓에 최상위권 중에서도 '극소수'에 달한다고 볼 수 있다.
강남 유명 자사고에서 인문계를 졸업하고 경희대 한의대를 준비했다는 김모 군은 "수시 논술전형을 지원했는데, 높은 수능 최저 점수를 요구했기 때문에 수능 준비가 완벽해야 했다"며 "수학 과목의 중요성을 알았기에 주말에는 단과 수업을 들어가며 부족한 부분을 메꾸는 데 집중했다. 여기에 한의대 수시 논술 준비 학원까지 포함하면 400만~500만원이 들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지난해 기준) 인문계만 지원할 수 있는 한의대학은 경희대 하나였고, 지방에 있는 한의대들은 뽑는 인원도 적었다"면서 "대부분의 문과생이 선택하는 수능 과목의 표준점수가 이과생들이 선택하는 수능 과목에 비해 낮아서 정시 지원 시 불이익이 컸다"고 털어놨다.
정부의 사교육비 대책에도 사교육비는 매년 사상 최대치를 경신하고 있습니다. 사교육을 받은 학생들과 그렇지 않은 학생 사이의 격차도 심화하고 있습니다. 다들 사교육이 문제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뭐가 문제일까요. 한국경제신문·한경닷컴은 사교육으로 대표되는 대치동의 속살을 살짝 들여다볼 수 있는 '대치동 이야기' 시리즈를 기획해 매주 월요일 게재합니다. 대치동을 긍정적으로만 평가할 수는 없습니다. 그렇지만 그 시스템을 모르면 한국 교육의 업그레이드도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대치동이 어디인지, 대치동의 왕좌는 어떻게 변화해왔는지, 그 안에서 살아가는 학생, 학부모, 강사들의 삶은 어떤지. 잘 알려지지 않았던 대치동 이야기를 써 내려갑니다. 아래 기자 페이지를 구독하거나 포털에서 [대치동 이야기]로 검색하면 더 많은 교육 기사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
김세린 한경닷컴 기자 celin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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