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희용의 세계시민]한반도·아프리카 400년 인연

고규대 2024. 5. 20.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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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아프리카 동반자 시대를 열자
명나라 군대 환송 잔치를 담은 천조장사전별도에는 수레를 탄 모잠비크 출신 흑인 병사 ‘해귀’의 모습이 생생하게 그려져 있다. (사진=한국국학진흥원 소장)
[이희용 다문화동포팀 자문위원] 우리나라 사람이 아프리카인과 처음 만난 기록은 임진왜란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유럽에서 아프리카 남단을 거쳐 인도로 가는 항로를 개척한 포르투갈은 아프리카 주민들을 납치해 노예무역에 나섰다. 이 가운데 일부가 명나라로 팔려갔다가 조선 지원군으로 참전한 것이다. 출신지는 아프리카 동남부 모잠비크였으나 포르투갈 식민지여서 당시 포르투갈을 일컫는 파랑국(波浪國) 사람으로 불렸다.
“일명 해귀(海鬼)라고 한다. 노란 눈동자에 얼굴빛은 검고 사지와 온몸도 모두 검다. 턱수염과 머리카락은 곱슬이어서 검은 양털처럼 짧게 꼬부라졌다. 한 필이나 되는 누른 비단을 납작복숭아 모양으로 둘둘 감아 머리 위에 올려놓았다. 바다 밑에 잠수해 적선(賊船)을 공격할 수가 있고, 수일 동안 물속에 있으면서 수중생물을 잡아먹을 줄 안다.”

조선왕조실록 선조 31년(1598년) 5월 26일의 기록이다. 명나라 장수 팽신고가 선조에게 해귀 4명을 바쳤다, 유성룡의 징비록에도 이들을 묘사한 대목이 나온다.

“남번(南蕃·남쪽 오랑캐) 출신으로 낯빛이 칠처럼 까맣고 바다 밑에 숨어 다니기도 한다. 그 모양이 귀신 같아 해귀라고 부른다. 키가 큰 사람이 하나 있었는데, 거의 두 길이나 되었으므로 말을 타지 못하고 수레를 타고 다녔다.”

명나라 군대 송별연을 그린 천조장사전별도(天朝將士錢別圖)에는 수레를 탄 해귀 4명이 그려져 있는데, 유성룡의 기록과 일치한다.

그 뒤 350여 년 동안 아프리카인과 만날 일이 없었다. 1950년 6·25전쟁이 발발한 뒤에야 에티오피아와 남아프리카공화국 군대가 유엔군 일원으로 참전하며 우리나라 땅을 밟았다.

아프리카는 현생인류의 고향이자 맨 먼저 고대문명을 꽃피운 곳이다. 그러나 동서로 넓게 펼쳐진 유라시아 대륙과 달리 남북으로 길쭉한 지형 탓에 문명의 교류가 활발하지 못해 생산력이 답보 상태에 머물렀다. 무더운 날씨와 척박한 땅도 발전의 장애 요인이었다.

제국주의 시대가 개막하자 에티오피아를 제외한 모든 지역이 영국·프랑스·벨기에 등의 식민 지배를 받았다. 유럽 열강은 경쟁적으로 약탈을 벌이다가 자기들끼리의 충돌을 막으려고 경계선을 정했다. 산맥이나 강 같은 지형에 따라 나뉜 부족의 생활권을 무시한 채 지도에 자를 대고 반듯하게 금을 긋는 바람에 국경선이 직선으로 된 곳이 많다. 이는 오늘날까지도 부족 간 분쟁의 불씨가 되고 있다.

2022년 12월 미국 워싱턴DC에서 열린 미국·아프리카 정상회의에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아프리카 정상들이 단체 사진을 찍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1945년 2차대전이 끝난 뒤에도 한동안 식민지가 유지되다가 1955년 인도네시아 반둥의 비동맹회의를 계기로 해방의 바람이 불어닥쳤고, 신생국들은 1963년 5월 25일 아프리카단결기구(OAU)를 창설했다. 회원국들은 이날을 ‘아프리카의 날’로 정했다. 5일 뒤면 제61회 아프리카의 날을 맞는다. OAU는 2002년 아프리카연합(AU)으로 재출범했다.

여전히 식민주의 유산을 극복하지 못한 채 내전과 저개발에 신음하는 나라가 많지만 아프리카는 인구의 60%가 25세 이하이고 풍부한 광물자원을 보유해 성장 잠재력이 크다. 더욱이 2021년 아프리카대륙자유무역지대(AfCFTA) 탄생에 따라 거대한 단일시장을 형성해 미국, 중국, 유럽연합(EU), 일본 등이 앞다퉈 구애의 손길을 내밀고 있다.

우리나라는 1961년 코트디부아르 등 6개국을 시작으로 수교국을 늘려온 데 이어 1980년대 들어 서울올림픽 유치를 위해 아프리카 외교에 적극 나섰다. 1991년 한국국제협력단(KOICA) 창설과 함께 공적개발원조(ODA)를 확대하고 있으며, 2005년 AU 옵서버 국가 자격을 얻어 협력의 기틀을 마련했다. 2018년에는 한·아프리카재단이 발족해 민간 교류도 급물살을 타고 있다.

다음 달 4~5일 경기도 고양시 일산킨텍스와 서울에서는 한·아프리카 정상회의가 열린다. 우리나라는 원조를 받는 나라에서 주는 나라로 탈바꿈한 유일한 사례다. 한국의 민주화와 산업화 경험은 AU 회원국 정상들에게 영감과 희망을 안겨줄 것이다. 우리에게는 아프리카 각국의 역사와 문화를 더 깊이 이해하고 동반성장의 길을 고민하는 기회가 되기를 바란다.

◇글=이희용 다문화동포팀 자문위원(전 연합뉴스 한민족센터 고문)

고규대 (enter@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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