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조에 “오소리” “비열”…도청·미행까지 ‘전방위 노조혐오’
판결문으로 본 비방 행태
“아직도 건설 현장에서는 기득권 강성 노조(노동조합)가 금품 요구, 채용 강요, 공사 방해와 같은 불법행위를 공공연하게 자행하고 있다. ‘건폭’이 완전히 근절될 때까지 엄정 단속해 건설 현장에서의 법치를 확고히 세우라.”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해 2월 서울 용산 대통령실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노조를 ‘건폭’이라고 지칭하면서 ‘노조 혐오’ 논란이 불거졌다. 이에 앞서 2022년 화물자동차 안전운임제 유지·확대를 주장했던 민주노총 화물연대의 파업에 대해 윤 대통령은 “화물연대 파업은 북핵과도 같은 위협”이라고 밝힌 바 있으며, 원희룡 전 국토교통부 장관도 민주노총을 일컬어 ‘민폐노총’이라 부르며 가세했다.
몸에 보디캠 붙이고 감시…징계·해고 위해 사고 조작도
정치인들의 서슴없는 노조 혐오는 사회 전반의 노조 혐오 정서를 키운다. 19일 한겨레가 2017~2023년 선고된 법원의 부당노동행위 형사 1심 판결문 168건을 분석해보니, 부당노동행위는 대기업뿐만 아니라 영세 사업장, 대학교, 어린이집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하게 퍼져 있었다. 사용자들은 ‘공개’적으로 노조를 헐뜯고, 노조에 가입한 노동자를 비난하고, 불이익 조처를 암시하며 노조활동을 방해하고 탈퇴를 압박했다. 판결문에 나타난 부당노동행위의 유형(검찰 기소 기준)을 살펴보면, 노조 설립·운영에 대한 ‘지배·개입’이 125건(탈퇴 종용 62건, 노조활동 방해 21건, 운영비 원조 18건 등)으로 가장 많았고, 노조활동을 이유로 한 ‘불이익 처분’이 68건(해고 25건, 전보·징계 등 인사상 조치 17건 등)으로 나타났다.
사용자들의 이런 ‘범죄’에는 노조 혐오 정서가 깃들어 있다. 전북 전주의 한 금융조합은 2016~2017년 조합원들이 보는 소식지에 “이미 식물노조”, “귀족노조 그 이상의 모습”, “비열한 노동조합”이라고 노조를 비난하면서 “노조를 빙자해 사업을 방해하고 명예를 실추시키는 직원은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즉시 인사 조처할 것”이라고 썼다. 대한석탄공사의 직원 30여명 규모 하청업체 관리자도 2015년 5월 사업장에 노조가 결성되자 회의 자리에서 “노조 이 ××것들”이라 욕하며 “노조가 대한민국 망하게 하더니 ‘오소리’(조합원 지칭) 한마리가 돌아다니는데 누구를 내보내야 할까”라고 위협해 두달 만에 조합원 21명이 탈퇴했다. 2013년 제주의 한 대학 총장 역시 “노조는 온갖 혐의를 씌워 극한 투쟁, 대립하는 싸움의 명분을 만든다. 노조 만들지 마라”고 말하는가 하면, 2018년 경기 용인의 한 어린이집 원장은 보육교사가 노조에 가입하자 학부모에게까지 연락해 탈퇴를 종용했다.
부당노동행위의 수단과 방법도 다양했다. 2018년 한 자동차 부품업체 관리자는 노조 총회가 열리는 회의실을 도청했고, 같은 해 한 제조업체 대표는 사업장에 폐회로텔레비전(CCTV)을 설치하고 자신의 몸에 카메라(보디캠)를 붙여 조합원을 감시했다. 가입비가 1억원에 이르는 친교모임 ‘서울클럽’ 관리자들은 2017년 조합원들의 징계 사유를 수집할 목적으로 대학교 후배를 고용한 뒤 미행·감시를 지시했고, 이 과정에서 알게 된 노조 집회를 무산시키기 위해 이른바 ‘알박기 집회신고’를 하는 등 노조활동을 방해했다.
조합원을 해고하려고 일부러 교통사고를 낸 버스회사도 있다. 단지 회사에 우호적인 기업노조가 아닌 다른 노조에 가입했다는 이유에서였다. 서울 한 버스회사 대표는 2016년 친한 후배와 모의해, 타깃으로 한 노동자가 운행하는 버스 하차문에 고의로 손을 집어넣어 교통사고를 유발한 뒤, 사고 직후 교통사고를 징계 사유로 삼아 해고했다. 2015년 경남 창원의 한 골프장에서는 노조 조합원들을 징계하기 위해 식당에 있는 소스를 유통기한이 지난 것으로 바꿔치기한 뒤 감봉 처분하기도 했다.
부당노동행위 피해 64%가 민주노총
부당노동행위 피해는 민주노총에 더 집중됐다. 분석 대상 판결 168건 가운데, 상급단체가 민주노총으로 확인되는 사건은 전체의 63.7%였다. 지난해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2·3조 개정 논의 당시 정부와 여당, 경영계는 사용자의 손해배상청구소송 피고 대부분이 민주노총 소속 노조라는 이유로 ‘민주노총 특혜법’이라고 비판했는데, 정작 ‘노조 할 권리’를 침해당한 노조 대부분은 민주노총으로 드러난 것이다.
전문가들은 만연해 있는 부당노동행위를 근절하려면 근본적으로 ‘노조 할 권리’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개선돼야 한다고 짚는다. 우선 정치인들의 노조 혐오 발언이 중단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윤애림 노동자권리연구소 소장은 한겨레에 “정치인들의 노조 혐오 발언은 사용자에게 노조를 적대하거나 억압해도 된다는 신호를 주고, 이런 노조 혐오가 사회 전체적으로 퍼질 수 있어 심각한 사안으로 봐야 한다”며 “노조 혐오 발언을 중단하는 것만으로도 부당노동행위는 줄어들 수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와 함께 노조 할 권리를 행사하기 위한 제도도 뒷받침돼야 한다”며 “우선 노조법 2·3조부터 개정해 노동자들이 최소한 자기 권리를 주장했다는 이유로 민형사 책임을 져야 하는 현실부터 개선해야 한다”고 했다.
김해정 기자 sea@hani.co.kr 박태우 기자 eho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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