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길 뛰어든 순직 후에야 이 정도…어느 소방서장의 끈질긴 '공부' 이유
[편집자주] 119안전센터 신고접수부터 화재진압과 수난구조, 응급이송에 이르기까지 국민들이 위기에 처한 현장엔 언제나 가장 먼저 달려온 소방대원들을 볼 수 있다.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동네에서 이들을 진두지휘하는 리더가 소방서장들이다. 그런 만큼 소방서장들이 그간 축적해온 경험과 경륜은 국민들의 생명을 지켜주는 소중한 자산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지역 곳곳의 안전을 확보하기 위해 24시간 출동준비에 여념이 없는 소방서장들을 만나봤다.
2005년 12월29일, 부산 수영구에 있는 족발집에서 화재가 발생했는데 인근에 살고 있던 한 청년이 가게 안에 사람이 있다는 말을 듣고 내부로 들어가다 유리에 발목 인대가 끊어졌다. 당시 부산 남부소방서 지휘조사계장으로 근무하던 류승훈 부산진소방서장은 넉넉하지 못한 살림에 부양해야 할 가족이 있던 이 의인을 모른 척할 수 없었다. 의상자는 직무 외의 행위로 위험에 처한 다른 사람의 생명이나 신체를 구하기 위해 나섰다 부상을 입은 사람을 말한다.
이에 류 서장은 보건복지부에 의상자 신청을 문의했지만 가장 낮은 부상등급에 못 미치면서 막막한 상황에 놓혔다. 답답한 마음에 복지부 담당자에게 하소연했고 결국 목숨을 걸고 화재를 진압하다 부상당했다는 사실을 입증하면 가능성이 있다는 말에 발로 뛰기 시작했다. 주변 사람들에게 꼼꼼하게 확인한 목격담을 기록해 제출했고 불길을 뚫고 사람을 구하다 다친 청년은 의상자로 선정돼 약 7000만원의 보상을 받게 됐다.
류 서장이 이렇게까지 끈질기게 매달린 배경에는 목숨을 걸고 현장에서 분투해온 동료들이 있었다. 매번 순직 사고가 나야만 소방공무원의 처우가 달라지는 현실에 안타까움을 토로한 이유이기도 했다.
그는 "소방공무원들의 복지가 향상되던 시점들을 보면 꼭 순직 같은 큰 사건이 있었다"며 "지금의 복지와 대우는 다 선배들의 '피와 땀'으로 만들어진 결과"라고 강조했다. 이어 "과거에는 장인어른으로부터 소방관 사위가 '위험한 일을 하네'라는 말을 들었다면 지금은 '멋있는 일을 하네'라는 말을 듣는다"며 "그만큼 선배들의 희생 덕분에 사람을 구하는 숭고한 가치가 있는 직업이라는 것을 인정받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류 서장이 재난관리학 박사 학위에 욕심을 낸 것도 같은 맥락이다. 동료들의 희생 없이 조직을 더 나은 방향으로 발전시키고 싶던 조바심은 그를 끊임없이 부추겼다. 류 서장은 "이론을 공부하고 정책의 형성과정을 이해하면 국민들에게 더 신뢰받는 소방행정을 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며 "대형재난이 발생했을 때 임기응변식 대안을 제시하지 않도록 현장의 문제점에 대해 성실히 살피는데 신경을 써왔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그는 이태원 참사의 후속조치로 행정안전부에서 추진한 국가안전시스템 개편 TF(태스크포스) 재난관리분과에 전문가로 참여하기도 했다. 조직간 현장 소통을 위해 구축한 재난안전통신망을 관리하는 담당자가 없어 필요할 시점에 제 역할을 못하고 있다고 쓴소리를 한 것도 이 때다. 여기에 119 상황실에 근무하는 지도 의사의 수를 늘리고, 1분 1초가 중요한 현장에서 CC(폐쇄회로)TV를 소방에서 조작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제안도 했다. 풍부한 현장 경험에 이론적 분석까지 가능했던 소방 전문가만이 내놓을 수 있는 진단이었던 셈이다.
부산진소방서는 하루 평균 70~80건 정도의 구급 신고가 들어오는데 주취자 사례만 30건에 달한다. 서울 이태원과 비슷한 서면이 관할 지역인 탓이다. 여기에 전통시장만 30곳에 이르고 산복도로도 많아 경사가 높고 길이 좁다. 한마디로 소방차가 다니기 힘든 구조다. 산복도로 인근에 화재가 발생하면 현장에서 호스를 10~20장씩 연결하느라 대응이 늦어지는 일이 다반사다. 류 서장이 매번 직원들을 다독이면서도 이같은 상황을 끊임없이 상부에 보고하고 있는 이유다.
그는 "만족도와 행복지수가 낮아지는 것은 인식의 문제로 왜 이런 업무를 해야 하는지 취지를 알고 하는 것과 시키니까 하는 것은 큰 차이가 있다"며 "매번 간담회를 통해 현장의 어려움을 다독이고 또 정책부서에서 처우 개선을 위해 얼마나 노력하는지 알리고 있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더 이상 동료들의 '피와 땀'으로 변화하는 조직이 되지 않도록 정책 형성 과정에 소방관이자 전문가로서 목소리를 꾸준히 내겠다"고 다짐했다.
부산=김온유 기자 onyoo@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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