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판 오타니'는 무리였나…키움 김건희, '투타 겸업' 대신 포수에 전념
타격 재능 비해 투수 성장 더뎌…'포수 부족' 팀 사정도 무시 못해
(서울=뉴스1) 권혁준 기자 = '한국판 오타니'는 역시나 무리였을까. 프로 입단 후에도 '투타 겸업'을 이어가 관심을 모았던 김건희(20·키움 히어로즈)가 결국 도전을 멈췄다.
김건희는 지난 18일 서울 고척 스카이돔에서 열린 2024 신한 SOL뱅크 KBO리그 SSG 랜더스와의 경기에서 9번타자 포수로 선발 출장했다. 김건희가 1군 무대에서 포수 마스크를 쓴 것은 이날이 처음이었다.
경기를 앞두고 홍원기 감독은 김건희가 타자, 포수로만 집중할 계획이라고 했다. 그는 "투수 포기라는 말은 그렇지만, 일단은 고교 때까지 해왔던 포수 포지션을 하기로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원주고를 졸업한 김건희는 2023년 신인 드래프트에서 전체 6순위로 키움의 지명을 받았다. 고교 시절 주로 포수로 활약했지만 투수로도 몇 차례 등판해 시속 140㎞ 후반의 구위를 보이며 가능성을 보였다.
그는 입단 첫해인 지난해부터 '투타 겸업'에 대한 뜻을 내비쳤고, 키움도 선수의 뜻을 받아들였다.
김건희는 지난해 1군 무대에서 타자로 9경기에 출전해 0.182의 타율을 기록했고, 투수로는 3경기에서 2이닝을 소화하며 평균자책점 22.50을 기록했다. 데뷔 첫해부터 1군에서 투, 타를 모두 소화하는 흔치 않은 경험을 했다.
선수의 뜻을 존중했지만 사령탑은 내심 한쪽에만 집중하길 바랐다.
홍 감독은 여러 차례 "국내 여건상 오타니처럼 투타를 겸업하는 것은 굉장히 어렵다"면서 "김건희도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다. 우타 거포의 자질을 갖춘 만큼 타자로 성장하는 것이 더 좋을 것 같다"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는 지난 시즌 막판까지 퓨처스리그(2군)에선 투수와 타자로 모두 경기에 나섰다. 2군 무대에서의 성적은 타자로 47경기에서 0.254의 타율에 1홈런 19타점이었고, 투수로는 14경기 13이닝에서 2승 1홀드 평균자책점 9.69였다.
투수로서의 성적이 저조했지만 김건희의 의지는 꺾이지 않았다. 그는 올 시즌도 퓨처스리그에서 투타 겸업을 이어갔다.
하지만 투수 파트의 성장은 더뎠다. 19일까지 투수로 3경기에 등판했는데 7⅔이닝을 소화하며 3패, 평균자책점 7.04에 그쳤다. 타자로는 0.319의 타율에 1홈런 13타점으로 준수한 성적을 낸 것과 대조적이었다.
타자 쪽에선 2군 무대에서 상위권에 속할 정도의 재능을 보여준 반면 투수로는 좀처럼 성장하지 못했다. 선수를 키우는 데 도가 튼 키움이라 할 지라도 마냥 지켜볼 수만은 없었고, 결국 타자로 전념하기로 가닥을 잡았다.
팀 사정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키움은 시즌 전 베테랑 포수 이지영(SSG)을 2차 드래프트로 떠나보냈고, 2년 차 포수 김동헌과 베테랑 김재현으로 구상을 마쳤다. 하지만 김동헌이 개막 2경기 만에 팔꿈치 부상으로 시즌 아웃되면서 계획에 차질이 생겼다.
김재현을 주전 포수로 기용하면서 김시앙, 박준형, 박성빈 등을 백업 포수로 기용했지만 쉽지 않았다. 김재현의 출전 빈도가 높아지면서 빠르게 체력도 소진됐다.
홍원기 감독은 "김동헌이 이탈한 것이 큰 영향을 미쳤다"면서 "김재현이 풀타임으로 뛰면서 많이 힘든 상황이다. 누군가가 보완해야 했다"고 말했다.
김건희의 포수 기용은 구단의 미래를 고려한 결정이기도 하다. 다음 시즌 돌아올 김동헌과 함께 김건희를 주전급 포수로 기용할 수 있다면, 키움은 한동안은 안방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된다. 김건희는 우타 거포의 자질을 갖추고 있기도 하다.
김건희 역시 포지션을 하나로 고정하는 것이 좋은 선택일 수 있다. 그는 투타 겸업을 하던 시절, 야수로 나설 때는 1루수와 3루수, 포수 등을 모두 오갔다. 아무리 재능이 많다고 해도 젊은 선수에게 썩 좋은 일은 아니었다.
1군 무대에서 첫선을 보인 '포수 김건희'는 나쁘지 않았다. 기본적인 포구는 물론, 바운드로 오는 공을 블로킹 해내는 능력도 준수했다.
올 시즌부터 도입된 자동 볼 판정 시스템(ABS)으로 인해 프레이밍 능력이 사실상 의미 없어진 만큼, 선배 투수들과 배터리 호흡을 맞추는 것이 큰 부담도 아니다. 홍원기 감독도 김건희를 5회까지 기용한 뒤 교체하며 처음부터 큰 부담을 주지는 않으려 했다.
일단 김건희의 '의미 있는 도전'은 잠시 멈추게 됐다. 포수로 자리를 잡을 경우 다시 투수 '겸업'을 시도하기는 사실상 쉽지 않아 보인다.
'한국판 오타니'를 기대했던 팬들은 실망감이 적지 않겠으나, 키움과 선수 본인에겐 '거포 포수'로 성장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수도 있다.
starburyny@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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