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파업 3개월 난무했던 고소·고발, 속도 안나는 수사 왜?[체크리스트]
정부 손 들어준 법원…피로감 커져가는 환자들
(서울=뉴스1) 박혜연 기자 = 지난 2월 20일 전공의 단체 사직으로 시작된 공백이 3개월간 지속되는 동안 고소·고발이 이어졌지만 관련 수사는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수사 대상이 다수인 데다 자칫 의사와 전공의에 대한 수사가 '외압 논란'으로 번질 수 있다는 점도 부담이다. 대대적인 수사가 이뤄질 경우 의사단체가 협상 거부의 명분으로 삼을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최근 법원이 의대 증원이 필요하고 파업이 적절하지 못하다고 지적했지만 의료계는 끝까지 투쟁한다는 입장이다. 이를 지켜보는 환자와 가족들은 여전히 발만 동동 구르고 있다.
◇ '업무방해 교사 등 혐의' 의협 간부 송치 아직…"수사량 방대해"
20일 경찰에 따르면 의정 갈등으로 인한 고소·고발로 수사선상에 오른 대상자만 수십 명에 이르지만 아직 송치된 건은 없다. 현재 경찰은 고발된 임현택 대한의사협회(의협) 회장 등 전현직 임원들과 온라인 커뮤니티에 '전공의 지침' 및 '파견 공중보건의 명단' 등을 게시한 의사들을 수사하고 있다.
서울경찰청 공공범죄수사대는 보건복지부 고발에 따라 업무방해 교사·방조 및 의료법상 업무개시명령 위반 등 혐의로 지난 3월부터 의협 간부들을 수사하고 있다.
경찰은 수사 초기 임 회장을 비롯해 노환규 전 회장, 김택우 비상대책위원장, 박명하 비대위 조직강화위원장, 주수호 비대위 언론홍보위원장 등을 여러 차례 불러 조사하는 등 강도 높은 조사를 펼쳤다.
지난달에는 강원도의사회 소속 전직 비대위원 신 모 씨를 업무방해 혐의로 추가 입건해 수사 중이다. 경찰은 지난달 15일 기자간담회에서 의협 간부들에 대한 송치가 늦어진다는 지적에 "많은 수의 참고인 조사가 있고 통신 수사와 증거물 분석 등 수사해야 할 양이 방대하다"고 해명했다.
◇ 메디스태프 임직원 및 '지침글' 작성자들 줄줄이 조사…자료 분석 중
서울경찰청 사이버수사대와 강남경찰서는 의사 커뮤니티 '메디스태프'의 임직원들과 게시글 작성자들을 수사하고 있다. 지난 3월 메디스태프에는 전공의들에게 '사직 전 병원 자료를 삭제하라'는 지침글과 파견된 군의관·공보의들에게 태업 또는 업무 거부를 종용하는 지침글이 게시돼 논란이 됐다.
또 '참의사'라고 조롱하며 병원에 남은 의사들 명단이 공개된 사건과 병원에 파견된 공보의 명단이 페이스북에 올라온 사건도 현재 작성자들이 특정돼 경찰이 수사 중이다. 25명에 달하는 게시글 작성자들은 대부분 글을 쓴 사실을 시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메디스태프 임직원들은 경찰 수사에 대비해 서버 관리자 계정의 비밀번호를 바꾸라고 지시한 혐의(증거 은닉)를 받고 있다. 대표 기 모 씨의 자택과 사무실을 압수수색하고 이미 두 차례 소환조사까지 진행한 경찰은 증거자료를 분석한 후 수사 방향을 결정할 방침이다.
◇ 복지부 장차관 고소·고발 건엔 "고발인 등 조사하는 단계"
반면 정부를 상대로 의료계가 고소·고발한 사건도 적지 않다. 지난 2월에는 건국대병원의 한 4년 차 전공의가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과 박민수 복지부 2차관을 협박과 업무방해 혐의로 경찰에 고소했고 4월에는 사직 전공의 류옥하다 씨가 조 장관을 직권남용 권리행사 및 업무방해 혐의로 서초경찰서에 고소했다.
류옥 씨에 앞서 전공의 1360명은 지난달 15일 같은 혐의로 조 장관과 박 차관을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에 고발했다. '의대 증원 회의록 미작성' 논란이 일었던 이달 초에는 정근영 전 분당차병원 전공의 대표와 이병철 변호사가 복지부와 교육부 장차관 등 5명을 직무 유기 등 혐의로 공수처에 고발했다.
다만 정부를 상대로 한 고소·고발 건의 경우 경찰은 아직 고소·고발인 등을 조사하는 단계라는 입장이다. 조 장관이나 박 차관에 대한 조사 일정은 잡히지 않았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 法 "의료파업, 바람직하지 않아"…지친 환자들 "이젠 각자도생"
소송전은 대체로 정부에 유리한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 의료계가 낸 의대 증원 집행정지 신청 항고심을 맡은 서울고법 행정7부는 지난 16일 각하·기각하면서 "정부 정책에 반대하기 위한 의사의 파업 등은 특단의 사정이 없는 한 그 자체로 바람직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의협 전 비대위 간부들이 신청한 의사 면허정지 3개월 처분 집행정지 사건도 지난달 1심을 맡은 서울행정법원에서 기각되고 현재 항고심이 진행 중이다. 1심 재판부는 "(면허정지가 취소될 경우) 진료 거부, 휴진 등 집단행동이 확산하고 의료공백이 장기화할 가능성이 있다"고 기각 사유를 설명했다.
의료계는 거세게 반발하며 '끝까지 투쟁한다'는 입장이다. 상급 종합병원들은 응급·중증 환자 위주로 운영하면서 전문의와 전임의, PA간호사들을 동원해 부족한 인력 공백을 메꾸고 있다. 일각에서는 '돌아올 전공의들은 이미 다 돌아왔다'는 말도 나온다.
'의료정상화'를 요구하던 환자단체는 정부와 의료계 양측에 대한 기대를 접고 치료가 가능한 병원을 하루라도 빨리 찾아 생존하는 각자도생의 길로 가고 있다. 안기종 환자단체연합회 대표는 "항암치료나 수술이 연기되는 동안 암이 재발하는 환자들이 많았는데 각자 최선을 다해 치료하는 방법밖에 없다"고 말했다.
안 대표는 "3개월 동안 거의 변화가 없었기 때문에 이 사태가 6개월, 1년도 지속될 수 있다고 본다"며 "22대 국회가 개원하면 필수 진료과 등은 집단행동을 하지 못하도록 하고 PA간호사의 법적 근거를 만드는 등 입법적 개선 요구를 하려고 한다"고 덧붙였다.
hypark@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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