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용노조 거부하자 ‘살인적 괴롭힘’이 시작됐다
여전히 힘겨운 ‘노조할 권리’
봉화청소업체 산재 사망사건
“그때 사장한테 ‘이게 무슨 짓이냐’고 얘기하지 못했으니, 우리는 다 공범 맞습니다.”
지난 5월8일 오후 경북 봉화군의 한 카페에서 만난 박영식(가명·51)씨가 목소리를 높였다. 4년 전 세상을 떠난 직장 동료 김재동(당시 50살)씨를 지켜주지 못했다는 자책이다. 오성윤(가명·36)씨 등 옆에 앉은 동료 3명은 침묵을 지켰다. 당시 봉화군의 위탁을 받은 청소업체 봉화환경서비스에서 일한 김씨는 2020년 6월 말 퇴사한 지 닷새 만에 뇌출혈로 숨졌다. 그의 죽음엔 회사가 만든 ‘어용노조에 가입하라’는 회유에 굴하지 않았던 그를 향한 직장 내 괴롭힘이 자리한다.
노조 결성하자 회사가 어용노조 꾸리고 회유
2018년 4월 직원 10여명이 근무하던 봉화환경에 김재동씨 주도로 민주노총 경북지역일반노조 봉화환경서비스분회가 만들어졌다. 회사의 사장 김아무개씨, 그의 아들이었던 작업반장의 ‘노동착취’가 노조 결성 배경이었다. 오성윤씨는 “봉화환경 옆에 김씨 부자가 고물상처럼 운용하는 업체가 있었는데, 봉화환경 노동자들이 수거해 온 재활용품을 쌓아 놓고 분류 작업을 시켰다. 원래 오후 2시에 퇴근하고 늦은 점심 먹는데, 4시 반까지 점심도 안 먹이고 그 일을 수당 한 푼 없이 시켜 불만이 많았다”고 말했다.
김씨 부자는 노조 가입을 문제 삼으며 수시로 탈퇴를 종용했다. “그 많은 노조 중 어떻게 민주노총 노조에 들었냐. 들고 싶으면 들어. 대신 손해는 본인들이 감수하라”거나 “필요 없는 애들 정리하고, 열심히 하는 사람은 노조에서 말하는 것보다 더 이익을 주겠다”고 했다. 노조를 탈퇴하지 않은 조합원은 엄격한 근태관리 뒤 경고나 해고 조처를 하겠다는 말도 했다.
결국 조합원 7명 가운데 김재동씨 등 2명을 뺀 5명이 압박에 못 이겨 노조를 탈퇴했다. 아들 김씨는 이번엔 어용노조 설립에 나섰다. 직원한테 지시해 별도 기업노조 설립 절차를 준비하게 한 뒤 2019년 2월 ‘봉화환경서비스노동조합’이 만들어졌다. 아들 김씨의 회유에 김재동씨 등 2명을 뺀 나머지 노동자들이 기업노조에 가입했다. 우상윤(가명·61)씨가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아들 김씨는 김재동씨가 민주노총 경북지역일반노조에 교육을 받으러 가야 한다는 공문을 받으면 학을 뗐고, 민주노총 노조를 와해시키기 위해 어용노조를 만들었다.” 우씨는 정작 최연장자라는 이유로 어용노조 초대 위원장을 맡았다가 김씨가 숨진 뒤 다시 민주노총 노조로 돌아왔다.
거부하면 살인적 노동 내몰아
끝까지 노조를 지킨 김재동씨한테 돌아온 회사 쪽의 탄압은 상상을 초월한다. 아들 김씨는 서너명이 돌아가면서 하는 읍내 거리 청소를 김재동씨한테만 시켰다. 심지어 업무와는 관련이 없는 돌출된 거리 보도블록 등 사진 등을 찍어 일일이 보고하라고 지시했다. 재활용쓰레기 분류 작업을 혼자 하게 시키고, 폐회로텔레비전(CCTV)이 보이는 곳에 벌서듯 서 있도록 지시하기도 했다. 인센티브제를 도입한 뒤 김재동씨만 가장 낮은 등급을 주는 방식으로 가장 적은 월급을 줬다.
김재동씨의 삶도 시들어갔다. 우씨는 “김재동씨가 아무도 도와주지 않는 가운데 반복해서 리어카를 혼자 끌고 다니며 거리를 쓸고 밥을 먹었다. 살인적인 일이다. 통통하던 김씨가 죽기 한달 전엔 몸이 마치 날카로운 가시 같아졌다”고 말했다. 노조 결성 이후 2년 넘게 시달린 김씨는 2020년 6월30일 퇴직했다. 집에는 “너무 힘들고 외로워 못 다니겠다”고 했다. 그리고 7월5일 새벽, 집에서 극심한 두통을 호소하며 병원에 실려가 뇌출혈로 숨졌다. 그는 새 직장에 출근하기 위해 새 양복까지 사놓은 상태였다.
“외롭다” 말 남긴 동료는 끝내…
김씨 사망 소식이 알려진 뒤 대구지방고용노동청 영주지청의 수사가 시작돼 김씨 부자는 결국 민주노조를 탄압하고 어용노조를 만드는 데 개입하는 등 노조 활동에 지배·개입한 혐의(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의 부당노동행위)로 기소돼 2021년 4월 아버지 김씨는 벌금 70만원, 아들은 징역 10개월형을 선고받았다. 김씨 부자가 처벌되는 데 박씨, 오씨, 우씨 등 어용노조에 가담한 이들의 진술과 녹취 등이 결정적인 증거가 됐다. 우씨는 “우리도 김재동씨가 핍박당해 죽은 건 다 알고 있었으니까, 노동청을 찾아가 증언하고 아들 김씨를 처벌하라고 말했다”며 “근로감독관한테 어용노조 설립 과정에 대해서도 다 얘기했다”고 말했다.
만시지탄이었다. 김재동씨 가족은 근로복지공단에서 김씨의 죽음을 산업재해로 인정받았으나 4남매의 아빠는 다시 돌아오지 못했다. 그리고 봉화군을 떠나 인근 영주시로 이사했다. 지난 8일 영주시에서 만난 김재동씨 부인 김미경씨는 “재동씨는 ‘민주노총만 자신을 지켜줄 수 있기 때문에 어용노조로 옮기면 회사가 자기를 자를 것’이라고 했다”며 “회사가 결국 부당노동행위로 김재동이란 사람을 야금야금 갉아먹은 것”이라고 말했다.
봉화/전종휘 기자 symbi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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