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당한 다둥이 소득공제... 셋째 낳아 방 4개 전셋집 옮겼더니 혜택 사라져

정석우 기자 2024. 5. 20. 0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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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출생 부추기는 세금제도] [中]
지난 9일 오후 경기 고양시 일산서구 킨텍스에서 열린 2024 코베 베이비페어&유아교육전에서 관람객들이 유모차를 살펴보고 있다. /뉴시스

지난해 셋째를 낳고 서울 강북에 있는 방 3개짜리 전셋집을 방 4개짜리로 옮긴 직장인 최모(42)씨 부부는 연말정산 때 전세 대출금 이자에 대한 소득공제를 못 받고 있다. 연간 이자 상환액의 40% 범위에서 최고 400만원을 공제해 주는 이 제도 적용 대상이 전용면적 85㎡(읍·면 지역은 100㎡)로 묶여있기 때문이다.

최씨는 전세 대출 2억원을 받아 매년 이자로만 800만원가량을 낸다. 그가 방 3개짜리 30평대 아파트(전용면적 85㎡)에서 살 때는 800만원의 40%인 320만원을 공제받았다. 하지만 전용면적이 100㎡인 새 전셋집으로 이사 간 뒤에는 이자 상환액을 한 푼도 공제받지 못하는 것이다. 최씨는 “강남에서 전세가 15억원짜리 30평대 전세를 사는 사람들은 자녀가 없어도 공제받는데, 방이 많이 필요한 다자녀 가구가 면적 제한 때문에 공제를 못 받으니 황당하다”고 말했다.

전세 대출 원리금 소득공제와 월세액 세액공제 등 주택 관련 세금 제도가 다자녀 가족을 배려하지 못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부는 2010년 소형 주택에서 사는 무주택 가구의 생활비 부담을 덜어주자는 취지로 주택 관련 공제 제도를 도입했는데, 엄격한 면적 기준 때문에 큰 평수가 필요한 다자녀 가구가 혜택을 받지 못하는 것이다.

또 다자녀 가구가 자동차 취득세, 자녀·배우자 인적 공제를 받을 소득 요건 등도 가족 친화적으로 재설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다자녀 가구에 대한 자동차 취득세 감면액은 140만원으로 15년째 그대로다. 연 소득이 100만원(근로소득만 있는 경우는 500만원)을 넘는 19·20세 대학생 자녀는 1인당 150만원인 자녀 인적 공제도 못 받을 뿐 아니라 대학 등록금 등 교육비 공제도 받을 수 없다.

전세 대출 원리금 소득공제는 전세나 반전세로 거주하는 무주택 가구의 연간 전세 자금 대출 이자(원금을 나눠 갚을 경우 원리금) 상환액 40%를 최고 400만원까지 공제해 주는 제도다. 소득 요건은 없지만, 전용면적 85㎡(수도권 이외 읍·면은 100㎡) 이하라는 면적 제한이 있어, 불가피하게 대형 평형에서 살아야 하는 다자녀 가족에게는 ‘그림의 떡’이다. 반면 전세가 15억짜리 서울 서초구 반포래미안퍼스티지 전용 85㎡(약 34평) 아파트에 전세로 거주하면 전세 자금 대출 공제 혜택을 받을 수 있다.

그래픽=박상훈

◇전월세로 큰 평수 사는 다자녀 가족은 혜택 없어

연봉 8000만원 이하 무주택 가구를 대상으로 연간 월세액의 일정 비율을 세금에서 바로 깎아주는 월세 세액공제 제도도 마찬가지다. 이 제도는 연간 1000만원 한도에서 실제 지급한 월세의 15%(연봉 5500만원 이하는 17%)만큼 세액공제해 준다. 예컨대 월세를 연간 800만원 냈다면 15%인 120만원을 세금에서 깎아주는 것이다. 월세 세액공제는 공제액만큼 세금이 줄어들기 때문에 목돈이 없어 월세로 사는 가구에 혜택이 크다. 또 보증금을 대출받은 경우 전세 대출 이자 소득공제와 동시에 받을 수 있다. 하지만 이 제도도 전세 자금 공제처럼 면적을 기준으로 공제 대상을 제한하기 때문에 40평대 주택에서 사는 다자녀 가구는 혜택을 받지 못한다. 김권우 법무 법인 매헌 변호사 겸 공인 회계사는 “주택 관련 세제의 밑바탕에는 넓은 집에서 살수록 부자라는 인식이 깔려 있다”면서 “집값이 싸더라도 큰 집에서 살아야 하는 다둥이 가족을 외면하는 제도”라고 했다.

전세 대출 공제와 달리 월세 세액공제는 전용면적이 85㎡를 초과하더라도 세 들어 사는 집의 공시 가격이 4억원(시세 약 5억8000만원) 이하면 혜택을 받을 수 있다. 면적 기준을 일부 보완해 큰 평수라도 집값이 낮은 주택은 공제 혜택을 주는 것이다. 하지만 서울 평균 아파트 매매가격이 12억원을 넘나드는 상황에서 이런 까다로운 요건을 충족하는 주택은 별로 없는 것이 현실이다. KB국민은행에 따르면, 지난달 수도권(서울·경기·인천의) 중대형(전용면적 95㎡ 이상 135㎡ 미만) 아파트 평균 매매가는 10억4062만원으로 중형(62.8㎡ 이상 95.9㎡ 미만·7억1366만원)보다 3억원 이상 비싸다.

1970년대에 지은 서울 강남의 40평대 아파트에서 월세로 사는 세 자녀 아버지 박모(44)씨는 세 들어 사는 집값이 비싸서 월세 세액공제를 받지 못한다. 박씨는 “재건축을 앞두고 집값이 20억원을 넘지만, 보증금 4억원에 150만원씩 월세를 내는 우리 가족에게는 아무 상관 없는 이야기”라며 “집값이 높은 부자들을 혜택에서 제외하는 취지 같은데 왜 월세 사는 내가 대상이 돼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주담대 공제도 다자녀에게 유리하게 바꿔야

전월세뿐 아니라 내 집 마련을 돕는 주택 담보대출 이자 소득공제도 가족 친화적으로 개편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1주택자는 면적과 관계없이 주택 담보대출 이자액에 대해 연 최대 1800만을 소득공제받을 수 있다. 제도를 처음 도입한 2000년부터 2013년까지는 전세 대출 소득공제와 같은 면적 기준이 있었는데, 2014년부터 면적 기준을 폐지하고, 취득 당시 공시 가격을 기준으로 공제 혜택을 주고 있다. 하지만 자녀 수에 관계없이 모든 1주택자에게 똑같은 기준을 적용하기 때문에 1인 가구나 무자녀 가구도 혜택을 받을 수 있다. 다자녀 가구에 대한 다른 우대나 인센티브는 없는 것이다.

특히 공시 가격이 6억원(시세 약 8억7000만원)을 넘는 주택을 소득공제 대상에서 제외하는 일률적 집값 기준부터 손봐야 한다는 의견이 많다. 자녀가 많을수록 공제를 받을 수 있는 집값 기준을 올려주면 다자녀 가족이 세금 부담을 덜 수 있다는 것이다.

월세나 주택 대출 이자 등 주거 비용은 식료품비, 교육비 등과 함께 다자녀 가구의 지출 부담이 큰 항목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작년 4분기 기준 5인 이상 가구의 주택 담보대출 이자 등 월평균 이자 부담은 21만2000원으로 2인 가구의 2.1배다. 월세와 관리비 등 주거 관련 비용은 5인 이상 가구가 45만7000원으로 2인 이상 가구의 1.5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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