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질 없다는 정부, 상처 입었단 의사… 암환자는 기막혀”
“정부는 대형 병원이 중증 환자 중심으로 차질 없이 돌아가고 있다고 매일 발표하는데, 암 환자인 제가 느끼는 현실과 너무 다릅니다. 요즘 대형 병원은 새로운 암 환자는 받아주질 않아요.”
김성주(62) 한국중증질환연합회 대표는 19일 본지 전화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이 단체엔 암환자권익협의회, 췌장암환우회, 폐암환우회, 다발골수종환우회, 식도암환우회, 루게릭연맹회 등 6개 환자 단체가 속해 있다. 김 대표도 항암 치료를 마치고 추적 검사를 받고 있는 식도암 환자다. 한국중증질환연합회 환자들은 지난 17일 국립중앙의료원 의사들에게 “동료들의 비아냥과 배신자라는 조리돌림에도 본분을 지켜 줘서 감사하다”며 손편지와 다과를 전달했다.
-정부는 대형 병원의 중증 환자 진료는 별 무리 없이 이뤄지고 있다고 하는데.
“정부 발표가 나올 때마다 환자들 사이에선 ‘말도 안 된다’ ‘현장과 딴판’이란 말이 나온다. 수도권 대형 병원에서는 더 이상 새로운 암 환자를 받아주지 않는다. 환자들은 그 밑의 수도권 중형 병원이나 지방 병원의 문을 두드리고 있다.
-2차·지역 병원은 환자를 받아주고 있나.
“2차(중형) 병원과 지역 병원도 2~3달 대기해야 되는 경우가 많다. 지방에 있는 국립대 병원들은 이미 수도권 대형 병원과 상황이 비슷하다. 예컨대 전남의 한 대학 병원은 새로운 환자 수용이 제대로 안 되고 있다고 한다. 이 병원들도 한계에 다다른 것이다. 곧 암 환자들은 완전히 갈 곳을 잃을 수 있다. 비정상적이다.”
-항암 치료 상황은 어떤가.
“전공의 집단 사직으로 입원이 어려운 환자들은 각자 집에서 ‘가방 항암’을 하고 있다. 가방 항암이란 암 환자들이 항암 치료제, 케모포트(항암 치료제 등을 정맥에 주입하는 기구) 등을 가방에 챙겨 다니며 직접 항암 치료를 한다는 의미다. 집에서 치료를 하다가 발진, 고열 등 부작용이 생길 경우에는 응급실을 찾아야 하는데 응급실에서 잘 받아주지 않는 문제가 있다.”
-수술 상황은 어떤가.
“수술을 받더라도 로봇 수술만 하고 있다. 개복 수술은 하지 않는다. 로봇 수술이 개복 수술보다 병원 입장에서 수익이 크다. 동일한 수술 시간에 수익을 최대한 올릴 수 있는 방법인 것이다. 환자들에게는 선택지가 없다. 이런 상황도 정부가 모를 리가 없다.”
-의사들은 ‘의사 악마화로 상처받았다’고 말한다.
“기가 막힌다. 진짜 상처입은 사람들은 상처받았다고 말도 못 한 채 맥없이 기다리기만 하는 환자들이다. 누가 의사를 악마화했다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의사들은 상처입었다고 말하기 전에 환자들에게 진정성 있는 사과를 먼저 해야 된다. 의료계는 한 번도 환자들에게 진정성 있는 사과를 한 적이 없다.”
-현 상황을 어떻게 풀어야 하나.
“정부가 이탈한 전공의들에게 먼저 다가가 수련 환경 개선 등 여러 문제를 허심탄회하게 논의해야 한다. 전공의들은 단순히 의대 증원 숫자 때문에 현장을 떠난 게 아니다. 개원의 중심 단체인 대한의사협회와 논의해봤자 전공의들은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중환자 상황은 어떻게 될까.
“암 환자들이 적정 치료 시기를 놓치면 앞으로 어떤 문제가 발생할지 예측할 수 없다. 지난 2020년 일부 전공의들이 약 한 달간 파업을 했을 때도 여러 환자 피해가 있었다. 당시 정부에 (환자 피해 파악을 위한) 역학 조사를 요청했는데 코로나가 터지면서 흐지부지됐다. 3개월 동안 전공의 1만여 명이 전면 파업한 지금은 그때보다 환자 피해가 훨씬 심각하다.”
-정부와 의사 모두 ‘환자를 위한 의료 개혁’을 내세우고 있는데.
“처음엔 하루 이틀은 기다려보자 했지만 (전공의 이탈) 석 달이 넘은 지금은 ‘이게 어떻게 환자를 위한 것이냐’는 생각이 든다. 2000명 의대 증원 숫자보다 더 중요한 것은 고통받는 환자들이다. 법원 판단 후에도 정부와 의료계는 환자를 배려하기보다는 ‘집단 휴진’을 언급하며 사실상 환자들에게 고통을 감수하라고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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