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밥 앞의 평등

이시내 기자 2024. 5. 20. 05:01
자동요약 기사 제목과 주요 문장을 기반으로 자동요약한 결과입니다.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우리나라 말에는 생업이나 생계를 밥에 비유한 표현이 많다.

밥벌이·밥줄·밥그릇이 대표적이다.

밥벌이를 찾지 못하고, 밥줄이 끊기는 상황은 누구에게나 막막하고 고달플 것이다.

밥줄은 생명줄이다.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말에는 생업이나 생계를 밥에 비유한 표현이 많다. 밥벌이·밥줄·밥그릇이 대표적이다. ‘밥값 좀 하라’고 다그치는 한편 ‘밥심을 내야 일할 수 있다’고 격려한다. 그만큼 먹고사는 문제가 중요하다는 사실을 실감하게 한다. 밥벌이를 찾지 못하고, 밥줄이 끊기는 상황은 누구에게나 막막하고 고달플 것이다.

먹고사는 문제의 최전선에 있는 농업·농촌이 이상기후로 시름에 잠겨 있다. 지난겨울부터 일조량 부족과 잦은 비로 작물 대부분이 제대로 자라지 못하고 있다. 올초 멜론·딸기·방울토마토 등 시설작물 생육부진 사례가 줄을 잇더니 최근엔 벌마늘(2차 생장) 현상이 전남과 경남·제주 지역서 번졌다. 장맛비처럼 쏟아진 봄비에 쌀귀리·보리 등 맥류가 수확 한달을 앞두고 쓰러졌다. 농가들은 무력감을 호소한다. 오랜 시간 쌓아온 경험과 기술이 자연재해 앞에서 무용지물이 된 까닭이다.

농가를 괴롭히는 한가지가 더 있다. 수입 농산물이 확대될 수 있다는 불안감이다. 가뜩이나 인건비와 생산비가 올라 이중고를 겪던 농가 입장에선 농산물 가격마저 지지부진하니 폐업을 고민할 수밖에 없다. 물가가 잡히길 바라는 정부와 소비자의 고충도 이해하지 못하는 바는 아니지만 생산자만 위험을 부담한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최근 전국 농민단체들이 거리로 나와 이상기후에 대한 근본 대책을 촉구한 배경엔 이렇게는 생존할 수 없다는 절박감이 자리할 테다.

영국 국제구호개발기구 옥스팜이 지난해 발표한 ‘기후 평등: 99%를 위한 지구’ 보고서에 따르면 자산 상위 1% 7700만명이 전세계 탄소배출량의 16%를 배출한다. 후폭풍을 감당하는 쪽은 취약계층이다. 특히 농민은 삶의 가장자리로 내몰리고 있다. 국제환경개발연구소(IIED)는 통계분석을 통해 기후변화와 농민의 자살 사이의 연관성을 입증한 바 있다. 인도에선 기후변화에 따른 농어촌지역의 높은 자살률이 사회문제로 자리 잡은 지 오래다.

밥줄은 생명줄이다. 그래서 밥 앞에선 모두가 평등해야 한다. 하지만 이상하게 농업·농촌의 밥줄에 대해선 쉽게 생각하는 듯하다. 농가 희생에만 의존한 식량정책은 공평하지 않을뿐더러 지속가능하지도 않다. 이상기후라는 전 지구적인 위기 속에 안전지대는 없는 만큼 농산물 수입이 근본적 해결책이 될 순 없다. 농민들이 안심하고 농사에 전념할 수 있도록 사회적 안전망을 구축할 때다. 당장은 농가가 직격탄을 맞고 있지만 방관한다면 언젠가 모두의 밥줄을 걱정하는 때가 오지 않을까.

이시내 전국사회부 차장 cine@nongmin.com

Copyright © 농민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