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없이 '황산 테러'당한 6살 태완이…용의자 수사 왜 멈췄나
범인 못잡고 영구 미제로…정치권 '태완이 법' 내 시효 폐지
(서울=뉴스1) 박태훈 선임기자 = 1999년 5월 20일 목요일 오전 10시 50분쯤 6살 어린이 김태완은 '피아노 학원 다녀오겠습니다'며 밝게 인사한 뒤 '어린이 바이엘'이 담긴 작은 가방을 손에 든 채 어머니가 일하고 있는 대구 동구 효목동의 미용실을 나왔다.
아들의 인사에 흐뭇한 미소를 지어 보였던 어머니 A 씨는 10분도 채 안 돼 태완이의 비명에 깜짝 놀라 미용실 밖으로 뛰어나갔다.
아들이 얼굴 피부가 벗겨지고 흘러내리는 등 고통에 몸부림치면서도 엄마가 있는 미용실 쪽으로 기어 오고 있었다.
세상에는 연쇄 살인마, 흉악범, 짐승보다 못한 이, 악마보다 더한 자 등 별의별 사람이 있지만 6살에 불과한 태완이에게 악행을 한 자보다 더 악랄한 이는 없을 듯하다.
◇ 머리카락 잡아당긴 뒤 입 벌리게 하고 황산 들이부어…
태완이는 어머니에게 인사한 뒤 노래를 부르며 골목을 벗어나려 했다. 그때가 오전 11시가 채 못된 시점이었다.
한가한 오전 골목을 지나는 이는 없었다. 그때 검은 비닐봉지를 든 어른이 골목 끝 지점에서 나타나 갑자기 태완이의 머리카락을 잡아끈 뒤 입을 벌리게 하고 하얀색 액체를 들이부었다.
태완이 얼굴이 타는 냄새와 함께 연기와 거품이 일었고 입고 있던 옷도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태완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아픔에 몸부림치면서 비명을 지르는 일뿐이었다.
범인이 골목을 서둘러 빠져나갈 때 태완이의 동네 친구 이 모 군이 마침 골목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 엄마 가게까지 수십미터 기어 온 태완이…두 눈 실명· 전신 40% 3도 화상· 생존율 5%
태완이의 비명에 미용실을 뛰쳐나간 A 씨는 아들의 얼굴 피부가 뒤집어지고 옷에서 연기가 나는 모습을 목격했다.
본능적으로 엄마가 있는 곳까지 수십미터를 기어 온 태완이가 고통에 울부짖자 미용실에 있던 손님들도 뛰어나와 '병원 병원'을 외쳤다.
경북대학교 병원으로 옮겨진 태완이는 두눈이 실명하고 식도 영구손상과 함께 얼굴 전체, 상반신 대부분, 허벅지 등 전신 40%에 걸쳐 3도 화상(진피층까지 화상)을 입었다.
병원 측은 말을 피했지만 이 정도 화상, 특히 황산에 의한 것이라면 생존율 5%일 정도로 태완이의 상태는 위급했다.
◇ 황산, 한 방울만 튀어도 옷 뚫고 피부까지…닿는 순간 열과 수소 발생, 모든 걸 녹여버려
황산(H2SO4)은 무색의 맑은 액체로 습기를 잘 흡수하고 산화력이 커 노출되는 순간, 금방 녹으며 화학반응을 일으킨다.
화학 반응 시 고온의 열과 수소가스를 발생시킨다. 그렇기에 황산 한 방울만 튀어도 옷을 뚫고 피부까지 곧장 침투한다.
피부가 수분 조직으로 이뤄진 탓에 황산이 피부와 접촉하면 진피 깊숙이 들어가 회복하기 힘든 상처를 남긴다.
황산으로 인한 화상 때 물을 부으면 더 큰 화학반응을 초래하기에 절대 금물이다 .
눈과 호흡기가 액체 혹은 에어로졸 형태의 황산에 노출되면 조직 자체가 파괴된다.
◇ 태완이와 유일한 목격자 태완이 친구, OO가게 주인 B 씨 지목했지만
수사에 나선 경찰은 원한 관계를 살폈으나 뚜렷한 성과가 없었다.
이에 태완이 부모에게 '범인과 관련한 진술을 들어달라'고 요청하는 한편 유일한 목격자인 태완이 친구 이 모 군을 조사했다.
청각 장애인인 이 군은 '동네 OO가게 주인아저씨 같았다'고 했지만 경찰은 신빙성이 떨어진다며 무시했다.
어린이들은 흔히 자주 보는 사람이라는 착각을 일으킬 수 있고 또 장애아라는 점 등을 들어 이군 말을 넘겨 버렸다.
태완이는 고통 속에서도 어머니가 "누가 그랬지, 피아노 학원 쪽으로 가던 사람은 누구였지"를 묻자 "OO가게 아저씨"라고 답했다.
하지만 경찰은 'OO가게 주인이 사건 발생 시각 전화 통화했다며 알리바이를 댔고, 태완이의 진술뿐이고, 증거와 물증이 없다'며 보다 깊숙한 수사에 나서지 않았다.
◇ 49일간 투병 끝에 만 7살 생일 9일 앞두고 숨져
태완이 부모가 아들과 죽은 받은 대화를 300분가량의 비디오를 남기는 등 '황산 테러범'을 잡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것과 달리 경찰은 태완이와 친구 이 군의 진술에만 지나치게 의지해 00가게 주인에 대한 압수수색 등에 나서지 않았다.
어린이의 말만으로 압수수색할 수 없었고 거짓말 탐지기 검사에서 '진실' 반응이 나왔다는 것.
경찰 수사가 겉도는 동안 화상과 사투를 벌이던 태완이는 테러 49일째 되던 1999년 7월 8일, 만 7살 생일을 불과 9일 앞두고 끝내 숨졌다.
◇ 공소시효 10년인 상해 치사 적용…여론 떠밀려 공소시효 15년 살인죄 적용했지만
수사팀을 해체했던 경찰은 언론이 '태완이 사건'을 집중부각하자 2013년 12월 3일 재수사에 착수했다.
사건 당시 공소시효 10년인 상해 치사 혐의(이 경우 2009년 7월 7일 시효 만료)를 적용했던 경찰은 이번엔 공소시효 15년인 살인죄를 적용하는 것으로 수사에 나설 근거를 확보했다.
하지만 이번에도 뚜렷한 진전 없이 공소 시효를 향해 시간만 흘러갔다.
유족은 공소시효 4일 전인 2014년 7월 4일 OO가게 주인에 대해 고소장을 제출했지만 검찰이 무혐의 처분하자 이에 불복해 재정신청을 냈다.
재정신청의 경우 고등법원이 3개월 이내 관련 재판을 열지, 아니면 기각할지를 결정해야 하며 그때까지는 공소시효가 중지된다. 관련 재판이 진행되면 그에 따른 결과가 나올 때까지 역시 공소시효는 중지된다.
유족들은 2014년 2월 10일 대구고등법원이 기각하자 상고, 2015년 2월 대법원이 기각하자 재상고했으나 2015년 7월 10일 이마저 기각당했다.
유족들의 노력은 거기까지였고 태완이 사건은 영구 미제사건이 됐다.
◇살인 공소시효 폐지 '태완이법' 2015년 7월 24일 국회 통과…당시 공소시효 종료 사건은 제외
태완이가 우리 사회에 남긴 가장 값진 선물은 '살인죄 공소시효 폐지'다.
들끓는 여론에 따라 정치권은 2015년 3월 공소시효 폐지를 담은 '태완이법'을 발의했다.
태완이법은 2015년 7월 24일 사실상 만장일치(3명 기권)로 국회를 통과, 살인죄는 공소시효 없이 영원히 죄를 물을 수 있게 했다.
태완이법은 그해 7월 31일 시행에 들어갔지만 정작 태완이 사건은 이미 공소시효가 만료된 까닭에 혜택을 보지 못했다.
buckbak@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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