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 건넨 구급차 키, 우크라인 목숨 구해줄 열쇠”

오종찬 기자 2024. 5. 20. 0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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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민 성금으로 구급차 40대 선물
지난 15일 오전(현지 시각)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의 대통령 관저 앞에서 대한적십자사가 보낸 구급차 (현대·기아차 제작) 40대의 전달식이 열렸다. 전달식이 끝난 후 구급대원들이 앰뷸런스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있다. / 오종찬 기자

“오늘 한국 국민이 보내준 구급차는 전쟁터에서 더 많은 생명을 구할 것입니다.” 지난 15일(현지 시각)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 대통령 관저 마린스키궁에서 대한적십자사가 우크라이나에 보낸 구급차 40대(현대·기아차 제작) 전달식이 열렸다. 빅토르 리아슈코 우크라이나 보건부 장관은 감격스러운 표정으로 한국에 연신 감사를 표했다.

이날 전달된 구급차 40대는 대한적십자사가 한국 국민들에게 모금한 성금으로 마련한 것이다. 대한적십자사는 2022년 전쟁 발발 이후 현재까지 328억원(현금 70억원, 물품 258억원)을 우크라이나에 전달했다. 전쟁이 길어지면서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의료 인프라까지 공격했다. 러시아군은 550대가 넘는 우크라이나 의료 차량을 파괴하거나 노획했다. 이 때문에 우크라이나 보건부는 최근 한국에 구급차 지원을 요청했고 적십자사가 이날 화답한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전달식 전날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에게 전화해 “지원과 협력을 계속하겠다”고 했다.

15일 오전(현지 시각) 우크라이나 키이우 대통령 관저 앞에서 대한적십자사가 보낸 구급차 40대 전달식에서 우크라이나 구급대원들이 벌기테 비쇼프 엡센(맨 오늘쪽) 국제적십자연맹 유럽지역 본부장에게 차량 열쇠를 받고 있다. / 오종찬 기자

이날 전달식에서 주우크라이나 김형태 한국대사, 대한적십자사 김철수 회장 등이 구급차 열쇠를 현장 요원들에게 직접 건네줬다. 김 회장은 “70년 전 한국도 6·25전쟁으로 폐허가 된 경험이 있다”며 “한국이 많은 나라의 도움을 받아 비약적으로 발전했듯, 우크라이나에 대한 인도적인 지원을 계속 이어가겠다”고 했다. 행사가 끝나자 구급대원들은 구급차를 몰고 현장으로 떠났다. 도네츠크, 하르키우, 헤르손 등 격전지 등에서 부상병들과 다친 민간인들이 이들을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대원들은 운전석 창문 바깥으로 엄지를 치켜세우며 한국 참석자들에게 외쳤다. “댜크유(고맙습니다)!”

15일(현지시각) 오후 우크라이나 키이우 독립광장에 아직 시신을 찾지 못한 전사자들의 이름이 적힌 우크라이나 국기가 가득 꽂혀 있다. / 오종찬 기자

전달식 현장에서 1㎞ 떨어진 키이우 독립광장엔 우크라이나 국기 수천개가 꽂혀 있었다. 시신을 찾지 못한 전사자들을 추모하는 공간이다. 깃발마다 전사자 이름과 생년월일, 실종 날짜가 적혀 있었다. 1년 전 남편을 잃은 라나(36)가 여섯 살 아들과 함께 서 있었다. 역시 남편을 잃은 율리야(44)가 근처에서 울음을 터뜨렸다. 라나는 일면식도 없는 율리야를 말없이 다가가 안아줬다. 라나의 품에 한참을 안겨 있던 율리야는 그의 손을 잡고 “우린 오늘 처음 만났지만, 정말 큰 위로가 됐어요”라며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인근에서 하염 없이 울던 여성에게 사연을 물으니 “친구 32명 이름이 여기에 있다”고 했다. 우크라이나는 지난 2월 전사자 숫자가 3만1000명이라고 공식 발표했다. 국제사회는 실제 전사자가 7만명이 넘을 것으로 추산한다. 키이우 거리에서 마주친 시민 대부분이 가족이나 친구를 전쟁터로 떠나보냈고 상당수를 잃었다고 했다. 노인과 여성들 표정엔 슬픔이 가득했다.

15일(현지시각) 우크라이나 키이우 독립광장에서 6개월 전 남편이 전쟁터에서 실종된 율리아(44.왼쪽)와 1년 전 전쟁으로 남편을 잃고 아들과 함께 이곳을 찾은 라나(36)가 부둥켜 안고 서로를 위로하고 있다. / 오종찬 기자

수도 키이우에서 북서쪽으로 60㎞ 떨어진 소도시 보로댠카에 들어섰다. 부서진 건물들이 한눈에 들어왔다. 개전 초기 러시아군의 집중 공격을 받은 곳이다. 아파트 수십동이 파괴됐다. 당시 무너진 건물들이 그대로 방치돼 있었다. 도시 전체가 붕괴돼서 그 어느 지역보다 복구가 더디게 진행되고 있다. 도시 중심 광장에 서 있는 우크라이나 국민 시인이자 독립운동가 타라스 셰우첸코(1814~1861) 동상의 머리 한가운데가 뻥 뚫려 있었다. 러시아군의 포격 흔적이다. 부서진 동상 앞에서 크레파스로 우크라이나 국기를 그리는 아이들의 표정은 천진난만했다.

16일(현지시각) 우크라이나 키이우에서 북서쪽으로 60km 떨어진 소도시 보로댠카의 모습. 전쟁 초기 수도 키이우로 향하던 러시아군의 집중 포격으로 도시 전체가 초토화 됐는데, 아직까지 그대로 방치돼있다. / 오종찬 기자

키이우 인근 또 다른 격전지였던 마카리브에서 데이스 페트라첸코(34)를 만났다. 그는 2년 전 남편을 잃었다. 마을을 지키러 나갔던 남편은 6일 만에 주검으로 돌아왔다.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기에 여전히 가슴이 아프다. 하지만 7살 딸이 남아있다. 이 아이에겐 더 나은 미래가 찾아오리라 믿는다.” 페트라첸코는 상담 센터에서 자신과 같은 처지에 있는 사람들의 심리 치료를 돕고 있다.

16일(현지시각) 우크라이나 보로댠카의 아파트가 러시아군의 집중 폭격으로 붕괴돼있다. / 오종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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