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운학원 이사장 “설립 90주년, 할아버지 건학이념으로 돌아갑니다”

표태준 기자 2024. 5. 20. 0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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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7일 오후 서울 노원구 광운대학교 본관(화도관)에서 조선영 광운학원 이사장이 본지와 인터뷰하고 있다. 광운학원은 20일 설립 90주년을 맞았다. 조 이사장은 올해 하반기에 광운학원 설립자이자 조부인 조광운 박사의 비망록, 회고록 등을 엮은 책을 출간할 예정이다. /장련성 기자

1934년 조선무선강습소(광운대 전신)를 설립해 한국 최초로 전자공학을 학문으로 교육한 사립학교 법인 광운학원이 20일 설립 90주년을 맞았다. 지난 17일 서울 노원구 광운대 본관에서 만난 조선영(46) 광운학원 이사장은 “4차 산업혁명, 저출생 등 급격한 사회 변화가 학교를 덮치며 교육 현장은 격변기를 맞고 있다”며 “그러나 ‘아무리 진선진미(眞善眞美)한 과학기술이라도 반드시 인간다운 품격이 깃들어 있어야 한다’는 설립자 말처럼 교육의 성패는 인성 교육에 달렸다고 본다”고 했다.

조 이사장은 광운학원 설립자인 고(故) 조광운 박사의 손녀다. 1899년 인천에서 태어난 조 박사는 일제강점기 우리 민족이 스스로 일어서기 위해서는 조선 청년들이 과학기술을 익혀야 한다는 신념으로, 1934년 자신이 운영하던 서울 중구 봉래동 광운전기상회에서 학생을 모아 전기통신 교육을 시작했다. 이후 조선무선강습소가 조선무선공학원, 광운공대 등을 거쳐 1987년 현재의 종합대학인 광운대로 이어진 것이다.

국내 대학 최초로 전자공학과를 설립한 광운대는 정보통신기술 인재를 다수 배출했다. 삼성전자 무선 사업을 이끈 신종균 전 부회장, 국내 여성 최초로 암호학을 전공해 IT 보안 기업을 창업한 이영 전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등이 광운대 출신이다.

대학뿐 아니라 유치원부터 초·중·고교까지 모든 교육기관을 경영하는 법인으로 성장하던 광운학원은 1997년 교육부의 임시 이사 파견으로 위기를 맞았다. 조 이사장은 “15년간 임시 이사 체제가 이어지며 법인 재정이 크게 악화해 수차례 매각될 위기에 처하기도 했다”며 “그 사이 설립자 교육 이념도 잊혀 갔다”고 했다. 2018년 이사장에 취임한 그가 가장 먼저 시작한 일이 할아버지인 조 박사의 전기 ‘항상 그대와 함께 걷는 길’을 편찬한 일이다. 올해 하반기에는 조 박사 비망록·회고록 등을 엮은 책도 출간할 예정이다.

미국 카네기멜런대에서 경제·경영학을 공부하고 KPMG 컨설팅에서 일하던 조 이사장은 2016년 광운학원 상임 이사로 근무를 시작하며 조 박사가 남긴 비망록 등을 읽기 시작했다. 조 이사장은 “‘손녀 출생, 조선영으로 명명’이라는 글을 끝으로 설립자의 비망록 작성이 멈췄고, 1년 반 뒤 타계하셨다”며 “한국 사회 격변기를 겪으며 설립자가 쌓은 교육관이 지금의 교육 문제에도 명쾌하게 적용되는 부분이 많아 제대로 정립해보고 싶었다”고 했다.

조 이사장은 ‘가정교육 실종’ ‘교권 추락’ 등이 교육 현장을 덮치며 ‘인성 교육’ 부재로 이어지고 있다고 보고 있다. 그는 “그간 학생들에게 자유를 주고 편안하게 해주는 데 교육의 방점이 찍혔다 보니, 질서·인내·존중 같은 가치를 교실에서 가르치기 어려워졌다”며 “(조부인) 조 박사의 교육관처럼 아무리 성적이 좋고 뛰어난 학생이라도 인성이 부재하면 인재라고 할 수 없다”고 했다.

조 이사장은 인성 교육의 부재가 학교 폭력 문제와도 연결된다고 보고 있다. 이에 따라 광운학원 설립 90주년을 맞아 올해부터 청소년 폭력 예방 재단인 푸른나무재단과 ‘학교 폭력 제로 프로젝트’를 시작하기로 했다. 광운학원 산하 학교들에 학폭 예방 강연, 상담·치유 프로그램 운영 등을 3년간 시범 운영·연구한다. 이후 그 결과를 다른 교육기관과 공유해 10년 안에 전국적으로 이 모델이 퍼질 수 있게 돕겠다는 것이다. 조 이사장은 “정부에서 ‘학폭 전담 조사관’ 같은 제도를 운영하고 있지만, 사후 대응에 초점이 맞춰지고 교사는 소외돼 있다는 현장 의견을 듣고 프로젝트를 시작하기로 결심했다”며 “실용적인 학폭 예방 교육 연구, 교사를 타깃으로 한 상담·치유 프로그램 운영 등을 통해 정책적 한계가 있는 부분은 우리가 메워보자는 차원”이라고 했다.

조 이사장은 대학을 운영하는 사립학교 법인 중 노찬용 영산대 이사장, 유자은 건국대 이사장과 함께 국내 몇 안 되는 ‘여성 이사장’이다. 세 이사장은 종종 만남을 가지며 학교 경영 노하우를 공유한다고 한다. 이사장 중 나이가 가장 어린 축에 속한 조 이사장은 “교육계가 한국에서 그 어떤 조직보다도 위계를 중시하는 보수적인 문화가 고착돼 있어서 오는 어려움을 다른 여성 이사장님과 공유하며 조언을 듣곤 한다”며 “교직원분들에게 ‘이사장’이 아닌 ‘선영님’이라고 불러달라며 ‘호칭 없애기’를 시도하는 등 경직된 분위기를 없애려 노력하고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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