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반복되는 정책 시행착오, 국민이 실험 대상인가
정부가 중국 온라인 쇼핑몰을 통한 유해 제품 수입을 차단하기 위해 국가인증통합마크(KC)가 없는 어린이 용품, 전기 용품 등 80품목의 해외 직구를 금지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가 사흘 만에 철회했다. 소비자 사이트 등에 “해외 직구를 막으면 같은 물건을 2~3배 값에 사야 한다” “중간 유통상이 KC 인증 마크만 붙여 폭리를 얻을 것”이라는 불만이 폭발하고, 여야 정치권 비판도 이어지자 정부는 일요일 긴급 브리핑을 열고 ‘없던 일’로 처리했다. 면밀한 검토 없이 설익은 정책을 던졌다가 접은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엊그제 국가 재정 전략 회의에서 “연구 개발(R&D)에 대한 예비 타당성 조사(예타)를 전면 폐지하라”고 지시했다. 총사업비가 500억원(국비 300억원) 이상 들어가는 재정 사업은 예타를 거쳐야 하는데 R&D 사업은 면제해 주라는 것이다. 작년 예산 편성 때는 “나눠 먹기식 연구 개발을 원점 재검토하라”는 윤 대통령 지시로 R&D 예산이 4조6000억원 삭감되는 바람에 과학기술계 반발을 샀다. 그러더니 1년 만에 예타까지 폐지해 내년엔 R&D 예산을 역대 최대 규모로 편성하겠다며 태도를 180도 바꿨다. 국가의 미래를 좌우할 백년대계 정책이 이렇게 냉·온탕을 오가도 되나.
이런 일이 한두 번이 아니다. 반도체 투자 세액 공제율을 낮게 잡았다가 대통령 지시로 하루아침에 2배로 올린 사례, 취학 연령을 만 5세로 앞당기겠다고 발표했다가 학부모 반발로 교육 부총리가 사퇴하며 없던 일로 마무리한 일, 노동부 장관이 연장 근로시간 한도를 월 단위로 바꾸는 방안을 발표했다가 대통령의 말 한마디로 백지화된 일 등 정부의 정책 설계가 오락가락하며 혼선을 빚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
지난주엔 서울고법이 의대 정원 2000명 증원 집행정지 신청 사건에서 ‘공공 복리’를 이유로 정부 손을 들어줬지만 “2000명에 대한 직접적 근거는 특별한 것이 없어 보인다”며 정부 결정의 부실함을 지적했다. 의대 정원을 늘려야 한다는 데는 다수 국민이 동의하지만 결정 절차와 방식이 허술해 논란을 자초하고 있다. 이렇게 시행착오를 반복하는 정부를 국민이 어떻게 믿겠나. 국정 쇄신의 첫 단추로 정부 정책에 대한 국민 신뢰를 되찾는 일부터 고민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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