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객관적 사실보다 김정은 말을 더 믿는다는 전직 대통령
북이 탄도미사일 여러 발을 동해상으로 발사한 날, 문재인 전 대통령 회고록이 공개됐다. 그는 책에서 대북 제재 해제를 위해 “더 적극적인 (미·북 간) 중재를 했어야 하지 않았나 하는 후회가 있다”고 했다. 북한 제재를 강조하는 유럽 정상들 앞에서 해제를 요청해 국제 망신을 자초한 사람이 그것도 부족했다고 자책했다. 싱가포르 미·북 정상회담 당시 북의 핵·미사일 실험과 한미 연합 훈련을 함께 중단한다는 구두 합의가 있었다고 주장하며 “그걸 선언문에 담았더라면…”이라고 했다. 북의 불법 도발과 한미의 합법적 방어 훈련을 맞바꾸자는 게 북·중의 ‘쌍중단’ 요구인데, 그것을 명문화하지 못했다며 아쉬워한 것이다.
문 전 대통령은 김정은이 “핵을 사용할 생각이 전혀 없다. 딸 세대한테까지 핵을 머리에 이고 살게 할 수 없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고 소개하며 “(미국의) 상응 조치가 있다면 비핵화하겠다는 김 위원장의 약속은 진심이었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하지만 당시에도 북한은 핵·미사일 고도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었다. 문 전 대통령은 “중장거리 미사일은 보유한 게 없다”는 김정은 발언도 소개했다. ‘비핵화 쇼’가 끝나자마자 김일성 광장을 행진한 ICBM 행렬은 땅에서 솟았나.
그는 회고록에서 객관적 사실보다 김정은의 말을 더 믿는다는 식의 태도로 일관했다. 한국 답방, 직통 전화 가동, 이메일 소통 등 김정은의 약속은 어느 것 하나 실현되지 않았지만 그는 북측 사정을 이해한다는 취지로 말했다. 김정은이 “연평도 포격 사건으로 고통 겪는 주민들을 위로하고 싶다”고 말했다거나 친서에서 “(폭파한) 남북연락사무소 재건 문제를 협의해 보자”고 제안했다는 일화도 소개했다. 외교적 수사와 진짜 속내도 구별할 줄 몰랐음을 자인한 셈이다.
문 전 대통령은 2018년 김정숙 여사의 인도 외유성 출장 의혹에 대해 “악의적 왜곡”이라고 했다. 하지만 당시 정부 문건을 보면, 인도는 원래 김 여사 아닌 문체부 장관의 방문을 희망했다. 김 여사는 대통령 전용기를 타고 인도에 가 유명 관광지 타지마할을 방문했고 다른 관광객을 물린 채 독사진을 찍었다. 공식 일정표에 없었고 문체부의 사후 ‘출장 결과서’에서도 빠진 일정이었다. 의혹이 한두 가지가 아닌데도 문 전 대통령은 이를 “배우자 첫 단독 외교”라고 했다. 김 여사 외유 의혹도 밝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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