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누구나 아는 총선 참패 원인 놓고, 與 40일째 백서 공방
국민의힘이 총선 이후 패배 원인을 분석하는 ‘총선 백서’ 발간을 놓고 40일째 논란을 벌이고 있다. 최근 총선백서 특위 회의엔 공천관리위원 10명 중 7명이 “정치적으로 이용당하기 싫다”며 불참했다. 일부 낙선자는 “특위가 대통령 책임은 빼고 한동훈 전 비대위원장 책임만 부각시키려 한다”고 반발하고 있다. 특위 위원장인 조정훈 의원에 대해서도 “자신의 당대표 출마를 위해 백서 발간을 이용하려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온다.
총선 참패의 가장 큰 원인이 윤석열 대통령의 오만과 불통의 국정 운영이었다는 건 국민 대부분이 아는 사실이다. 그런데 특위가 실시한 당내 총선 평가 설문조사에서 한 전 위원장의 원톱 체제와 메시지, 지원 유세가 어땠는지를 집중 질문하면서 윤 대통령에 대한 직접 평가 문항은 없었다고 한다. 황우여 비대위원장은 한 전 위원장의 ‘이·조(이재명·조국) 심판론’과 ‘진보 인사 대거 영입’을 패배 원인으로 지목했다.
선거 과정의 전략 부재와 공천 잡음 등 한 전 위원장이 책임질 일이 적지 않은 건 사실이다. 한 전 위원장이 책임을 지고 물러난 뒤 다시 당대표 선거에 출마하는 게 맞는지도 논란이 크다. 하지만 근본적 문제는 윤 대통령의 독선적인 국정 운영과 수직적 당정 관계에 있었다. 대통령은 김건희 여사와 이종섭 전 장관 문제에 대한 여론에 귀를 닫고, 의대 정원 확대도 힘으로 밀어붙였다. 윤 대통령도 “제 국정 운영이 많이 부족했다”고 했다.
선거에 참패한 정당이 실패의 원인을 제대로 보지 않고 특정인에게 책임을 씌우거나 차기 당대표 선출에 영향 주려는 의도로 흘러선 백서를 발간하는 의미가 없다. 선거 이후 여당 사무총장·정책위의장·비대위원 등 지도부도 대부분 친윤 인사로 채워졌다. 국민의힘이 변화와 혁신보다는 친윤 중심 체제로 되돌아 가려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적지 않다.
국민의힘은 2020년 21대 총선 패배 직후에도 208페이지에 달하는 백서를 냈다. ‘퇴행적 보수 이미지와 중도층 외연 확장 실패, 공천 논란과 전략 부재’가 패배 원인이라고 짚었다. 하지만 말로 그치고 바로잡지 못했다. 이번에도 이런 일이 되풀이된다면 국민 신뢰를 회복하기 힘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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