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경대] 특별한 5·18 기념식

천남수 2024. 5. 20. 0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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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 5월 18일 일요일 0시, 강원대학교 학생회관에서 다음날 집회에 사용될 유인물 작업을 하던 1학년 동기생 3명과 3학년 선배 1명은 권총으로 위협하며 들이닥친 군인들에 의해 체포되었습니다. 지프에 실려 압송된 곳은 춘천 보안대 지하실이었습니다. 그때부터 죽음과도 같았던 42일이 시작됩니다." 당시 강원대 법정계열 1학년 박종민 씨의 증언이다.

박 씨의 증언에 따르면, 춘천 보안대에 끌려간 학생들은 머리부터 발끝까지 피가 터지도록 몽둥이세례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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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 5월 18일 일요일 0시, 강원대학교 학생회관에서 다음날 집회에 사용될 유인물 작업을 하던 1학년 동기생 3명과 3학년 선배 1명은 권총으로 위협하며 들이닥친 군인들에 의해 체포되었습니다. 지프에 실려 압송된 곳은 춘천 보안대 지하실이었습니다. 그때부터 죽음과도 같았던 42일이 시작됩니다.” 당시 강원대 법정계열 1학년 박종민 씨의 증언이다.

박 씨의 증언에 따르면, 춘천 보안대에 끌려간 학생들은 머리부터 발끝까지 피가 터지도록 몽둥이세례를 받았다. 박 씨는 큰아버지의 좌익활동 전력 때문에 더욱 혹독했다. “이런 종자는 씨를 말려야 한다”면서 물고문과 전기고문까지 가해졌다. 그는 “겨울철 시냇가에 개구리들이 전기 밧데리에 뒤집히듯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기절했다”면서 당시 가혹했던 순간에 치를 떨었다.

숱한 고초를 겪고도 마지막 일주일은 유격훈련까지 받았다. 그리고 3번의 반성문과 각서를 쓰고 43일째 아침, 춘천 보안대 정문 앞에서 어머니를 만날 수 있었다. 외아들의 생사도 모른 채 불면의 밤을 보내야 했던 어머니의 심정은 오죽했을까. 박 씨가 춘천 보안대에서 신음하고 있던 시간, 광주 시민은 계엄군의 무자비한 폭력에 맞서고 있었다. 5·18이 광주만의 문제가 아닌 이유다.

지난 18일 강원특별자치도와 강원민주재단이 주최한 제44주년 5·18 민주화 운동 기념식이 시민 등 2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옛 춘천 보안대 자리에서 개최됐다. 44년 전, 20살 학생들에게 무차별적인 국가 폭력이 가해졌던 ‘특별한 장소’였다. 강원민주재단 최윤 이사장은 “야만과 폭력의 역사가 있는 춘천 보안대는 이제 치유와 화합, 미래를 위한 장소가 돼야 한다”면서 “우리 아이들이 야만의 시대를 살지 않도록 하는 것이 역사적 소명”이라고 강조했다.

5·18 민주화 운동은 특정 지역, 특정 진영만의 것이 아니다. 모두의 역사적 자산이다. 그러나 춘천 보안대 자리에 조성된 민주평화기념관 문은 여전히 굳게 닫혀있다. 역사를 잊은 민족은 미래가 없다.

천남수 강원사회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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