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39호실 탈북 엘리트도 ‘건국전쟁’ 봤다 “이승만 USB 보내자” [노석조의 외설]

워싱턴 D.C./노석조 기자·조지타운 방문연구원 2024. 5. 20. 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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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만 바로 알고픈 재미 탈북자들
‘건국전쟁’ ‘서울의봄’ 평양 주민들 본다면
‘발전소 USB’보다 K영화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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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정호 전 북한 노동당 39호실 고위관리. /VOA

‘건국전쟁’이 지난달 말 워싱턴 D.C. 연방 의사당 강당에서 상영됐습니다. 가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한동안 여론을 뜨겁게 달궜던 영화인만큼 대체 어떤지 확인하고 싶었습니다. 한국에서 개봉하기 전 출국해 미국에 와 미처 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의사당에 일찍 도착했습니다. 두루 인사를 나눌 기회를 가졌습니다. 풍채 좋은 한 분이 저 멀리서 걸어오는 게 보였습니다. 올 백 헤어 스타일의 이분은 누굴까 궁금했습니다. 낯이 익었습니다. 기사로 봤던 고위 탈북자 같았습니다.

다가가 인사했습니다. 직감이 맞았습니다. 북한 노동당 39호실 고위 관리출신인 리정호 씨였습니다. 그는 북한 김씨 일가의 통치 자금 관리와 외화 벌이 무역을 담당하는 노동당 39호실의 고위 간부 출신입니다. 30년간 당 주요 조직에서 일했다고 합니다.

1998~2004년은 39호실 대흥총국 무역 관리국 국장, 2007년부터는 국방위 소속 금강 경제개발총회사 이사장 등을 지냈습니다. 2014년 10월 한국으로 탈북하기 직전까지는 39호실 대흥 총회사 중국 다롄 주재 지사장으로 일했습니다.

그러다 2016년 3월 미국으로 정치적 망명을 했습니다. 평양 태생으로 같이 탈북한 딸 이서현씨 등도 미국에 같이 왔습니다. 리정호씨는 정치적 망명 신청을 해 현재 심사를 받는 상태라고 합니다. 이런 그가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에 대한 영화를 보러 행사장을 찾았던 것입니다.

이날 ‘건국전쟁’ 상영 행사장에는 제가 기대한 만큼 많은 사람들이 오지 않았습니다. 다 합쳐보니 80여명 정도였습니다. 200여명은 와서 객석이 가득 찰 줄 알았지만, 그러지 않아 조금 의아했습니다. 정치적 성향이 어떻든, 이승만 대통령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든 한번은 보고자 하는 분들이 많을 줄 알았습니다. 취재하러 온 언론 매체도 본지를 포함해 KBS뿐이었습니다.

그런데 의외로 탈북자분들이 이 영화를 많이 보고 싶어한 것입니다. 둘러보니 리정호 씨 외에도 탈북자 분들이 더 있었습니다.

탈북자들에게 초대 지도자는 김일성이었습니다. 과거 체제 경쟁이 한창일 때 김일성의 대척점에 있던 대한민국의 지도자가 이승만입니다. 생각해보니, 이승만은 탈북자들이 바로 알고 싶어하는 인물이기에 충분하겠구나 싶었습니다. 평양에서는 이승만 대통령이 하야 한지 30년이 지났는데도 ‘이승만 타도’ 구호를 내걸며 정신 교육을 한다고 합니다.

미국의 북한 전문가 브루스 베넷 박사(RAND 연구소)가 2022년 8월 31일 서울 중구 조선일보미술관에서 본지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남강호 기자

재작년 광화문에서 북한 전문가인 브루스 베넷 미국 랜드연구소 선임연구원을 인터뷰했습니다. 베넷은 북한의 변화시키는 방안으로 “K 팝과 드라마가 담긴 USB(이동식저장장치) 100만개 투하”를 제안했습니다.

그는 “김정은이 가장 싫어하고 두려워하는 것이 K 드라마, 즉 ‘정보 핵폭탄’”이라면서 “UBS 투하 시 95%는 수거·압수가 되겠지만, 5% 정도라도 살아남아서 북 사회에 퍼져도 큰 효과를 낼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이 대목에 고개가 저절로 끄덕여졌습니다. 현무도 좋고 F-35A도 좋지만, 이런 총과 칼 못지 않게 강력한 것이 펜의 힘, 문화의 힘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USB에 건국전쟁 등 한국 영화를 넣어 39호실 간부들과 평양 주민들에게 보내면 어떨까요. 천만 관객을 모은 서울의 봄 같은 영화도 같이 담아주면 반향이 더 큰 듯합니다. 대북 발전소 개발 자료가 담긴 UBS보다 건국전쟁과 서울의 봄이 ‘평양의 봄’을 앞당기는 데 더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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