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태준의 가슴이 따뜻해지는 詩] [20] 누에
누에
세 자매가 손을 잡고 걸어온다
이제 보니 자매가 아니다
꼽추인 어미를 가운데 두고
두 딸은 키가 훌쩍 크다
어미는 얼마나 작은지 누에 같다
제 몸의 이천 배나 되는 실을
뽑아낸다는 누에,
저 등에 짊어진 혹에서
비단실 두 가닥 풀려나온 걸까
비단실 두 가닥이
이제 빈 누에고치를 감싸고 있다
그 비단실에
내 몸도 휘감겨 따라가면서
나는 만삭의 배를 가만히 쓸어안는다
-나희덕(1966~)
저쪽에서 이쪽으로 세 여성이 나란히 다정하게 걸어온다. 언니와 여동생 사이인 듯 보였으나 가까이 다가왔을 때에 보니 어머니와 두 딸이다. 몸이 불편한 어머니를 가운데에 모시고 걸어오는 두 딸은 어느덧 다 성장했다. 시인은 이 셋 사이가 비단실로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누에가 실을 토해 둥근 고치를 만들어내듯이 어머니 몸에서 모성과 사랑의 비단실이 풀려 나와 두 딸을 감싸고 있음을 본다. 그리고 이제는 두 딸의 비단실이 늙고 왜소해진 어머니를 빙 둘러서 싸고 있음을 발견한다. 빛나고 부드럽고 고운 보은(報恩)의 비단실로 말이다. 눈물겹고 뭉클한 풍경이 아닐 수 없다.
이 시를 읽고 있으니 어릴 적 누에를 치던 방이 생각난다. 싸리를 얽어 만든 채반인 잠박 위에서 뽕잎을 갉아 먹던 누에. 하얀 고치를 짓던 누에. 누에를 치는 방에서 누에와 함께 고된 잠을 주무시던 어머니. 슬레이트 지붕 아래 작은 방이었지만 마치 고치의 안쪽 공간처럼 아늑했던 어머니의 방. 그렇지는 않았지만, 목련 꽃봉오리 내부 같았다고 부러 말하고 싶은 그 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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