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예산 깎더니 이번엔 예타 폐지, ‘샤워실의 바보’ 같은 R&D 정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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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은 17일 국가재정전략회의를 주재하면서 "성장의 토대인 연구개발(R&D)은 예비타당성조사(예타)를 전면 폐지하고 투자 규모도 대폭 확충하라"고 지시했다.
현재 총사업비가 500억 원(국비 300억 원) 이상인 재정사업을 진행하려면 반드시 예타를 거쳐야 하는데, R&D 분야에 한해 이 과정을 건너뛰겠다고 한 것이다.
지난해 R&D 예산을 삭감할 때와 마찬가지로 예산 증액과 예타 폐지 과정이 현장 연구자들의 의견 청취 없이 일방적으로 이뤄진 것도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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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D 예타에 대해 과학기술계에서 개선 요구가 많았던 것은 사실이다. 통상 7개월에서 길게는 1년 넘게 걸려 신속한 기술 개발에 걸림돌이 된다는 우려가 많았다. 예타를 피하기 위한 소규모 R&D만 양산된다는 비판도 적지 않았다. 이에 따라 정부가 R&D 예타 대상 기준금액을 올리는 식으로 규제를 완화할 것이라는 관측이 많았는데 아예 ‘전면 폐지’를 들고나왔다.
이 같은 방침은 11개월 전 같은 회의에서 나온 대통령의 발언과 180도 달라진 것이다. 당시 윤 대통령은 “나눠먹기식, 갈라먹기식 R&D는 제로베이스에서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이는 ‘연구비 카르텔’ 논란으로 이어졌고, 정부 R&D 예산 기조는 증액에서 일괄 삭감으로 뒤집혔다. 그러더니 올해 들어서는 내년 R&D 예산을 역대 최고 수준으로 올리고 예타까지 폐지하겠다고 선언했다. 내년도 예산 편성 방향과 4년 뒤까지의 중기재정운용 계획을 논의하는 회의에서의 대통령 발언이 이렇게 뒤집히면 정책의 신뢰성을 담보하기 어렵다.
글로벌 기술 경쟁에 대비하기 위해 예타 규제를 손보는 것은 필요하지만 예산 낭비가 우려되는 ‘묻지 마 사업’에 대한 통제 대책 없이 덜컥 예타부터 폐지하는 것은 부적절하다. 재정의 지속가능성을 강조하며 모든 예산 사업의 타당성을 전면 재검토하겠다는 정부 방침과도 모순된다. 지난해 R&D 예산을 삭감할 때와 마찬가지로 예산 증액과 예타 폐지 과정이 현장 연구자들의 의견 청취 없이 일방적으로 이뤄진 것도 문제다.
정부가 긴축재정과 재정지원 확대 사이에서 원칙 없이 오락가락하면 비슷한 일이 반복될 수 있다. 무턱대고 예산을 깎았다가 반발이 커지면 원상 복구하거나, 전폭적 지원을 약속했다가 돈이 없다며 무르는 식이다. 정부의 널뛰기식 경기 대응을 경제학에선 ‘샤워실의 바보’라고 빗댄다. 수도꼭지를 온수 쪽으로 끝까지 돌렸다가 뜨거운 물이 쏟아지면 깜짝 놀라 찬물을 트는 과정을 반복한다는 것이다. 정부의 R&D 정책이 딱 ‘샤워실의 바보’를 연상케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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