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 초대석]“소수 극렬 지지자 주장이 소셜미디어로 증폭… 통제 방법 찾아야”

이정은 부국장 2024. 5. 19. 2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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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 연구 석학 스티븐 레비츠키 하버드대 교수
소셜미디어가 정치 양극화 부추겨… 소수 강성 지지층에 과잉반응 말아야
정치인들, 넘지 말아야 할 선 지켜야… 상대가 룰 위반해도 같은 대응 안 돼
“한쪽 팔 묶인 채 싸우란 거냐” 비판도… 민주주의 건강함, 경제력 유지가 관건
스티븐 레비츠키 미국 하버드대 교수는 최근 동아일보와 진행한 화상 인터뷰에서 “정치 양극화를 심화시키는 소셜미디어를 통제할 방법을 찾고 배워나가지 않으면 민주주의가 무너질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극단의 정치’를 종식시킬 방법을 묻는 질문에는 “답을 알면 지금 훨씬 더 높은 연봉을 받고 있을 것”이라고 농담을 하기도 했다. ‘제도적 자제’와 ‘상호 관용’ 필요성을 강조한 그는 정치인이 이를 지킬 수 있도록 사회 원로와 언론, 비즈니스 리더들이 역할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스티븐 레비츠키 교수 제공
《2021년 미국 워싱턴 의회가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극렬 지지자들에게 점령당하는 장면의 충격은 미국인들에게 트라우마로 남아 있다. 미국 민주주의의 상징이나 다름없는 의회 건물이 대낮에 공격당하는 일은 전례가 없었다. 3년이 지난 지금, 미국 정치학계에서는 11월 대선이 민주주의에 미칠 영향을 놓고 다시 논쟁이 한창이다.

스티븐 레비츠키 미 하버드대 교수는 민주주의가 ‘합법적’이고 ‘민주적’인 방식으로 무너질 수 있음을 지속적으로 경고해 온 학자다.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How Democracies Die)’ 등의 저서를 통해 “정당한 선거 절차를 거쳐 선출된 지도자들이 민주주의라는 가면을 쓴 채 이를 파괴하고 있다”고 한 그의 분석은 섬뜩할 지경이다.

레비츠키 교수는 최근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는 극심한 정치 양극화와 함께 이를 증폭시키는 소셜미디어의 문제를 함께 지적했다. 강성 지지층이 목소리를 키우는 것에 대해 “그들이 다수가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하며, 그 주장에 과민반응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막말 등으로 얼룩진 한국의 4·10총선이 끝나고 22대 국회 개원을 앞두고 있는 시점에 그를 화상으로 만났다. 다음은 일문일답. 》




―11월 미국 대선 결과는 워싱턴 정치를 어떻게, 얼마나 바꿔 놓게 될까.

“현재는 동전 뒤집기 같은 상황이다. (조 바이든 대통령과 트럼프 전 대통령의 당선 가능성을) 50 대 50으로 본다. 2018년 이후 전 세계에서 진행된 최소 20개 선거에서 야당이 승리했는데, 미국에서도 같은 결과가 될 가능성이 있다. 트럼프는 지난 대선에서 ‘선거 결과에 승복한다’라는 기본 룰을 깨버렸다. 재선되면 충성파를 기용하고, 법무부를 앞세워 정적을 수사하며, 언론을 압박하겠다는 점을 올해 유세에서 대놓고 밝히고 있다. 프리덤하우스가 매긴 미국의 민주주의 점수는 10년 전 92점에서 이제 83점으로 추락했다.”

―인종적, 문화적 양극화가 민주주의의 위기를 심화시키고 있다고 당신은 지적해왔다. 기득권을 가진 이들이 느끼는 ‘지위 불안(status anxiety)’ 문제도 언급했다.

“지난 40년간 지속된 경제 불평등의 문제, 금융위기 이후 꺾인 성장, 중산층의 상황이 더 이상 좋아지지 않는다는 인식, 세계화의 부작용 등이 서구 민주주의 국가들의 양극화를 심화시킨 원인으로 지목된다. 유럽에서는 불법이 아닌 합법적 이민자 행렬까지 문제가 되고 있다. 미국의 경우 젠더, 인종 등의 평등의식이 높아지고 사회 다양성도 커졌지만 동시에 지방 소도시는 더 종교적이 됐고 교육 수준이 낮은 백인이 많아지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미국 내의 이런 정치 흐름은 한국 같은 동맹국 민주주의에도 영향을 미칠까.

“한국과 일본은 매우 견고한 민주주의 국가다. 다만 유럽에서 동아시아까지 전 세계 미국의 동맹국들이 미국 내부의 움직임을 불확실성과 불안 속에 지켜보고 있는 상황이 아닌가. 트럼프가 재집권하면 미국은 민주주의를 전 세계에 장려하는 것을 멈출 것이다. 또 우크라이나 같은 민주주의 국가들을 끌어안기를 멈출 것이다. 중남미 국가들 중에서는 트럼프의 권위주의적 행태를 따라하는 지도자들이 나오고 있다. ‘봐, 저게 우리의 모델이야’라면서. 전 세계적으로 매우 부정적인 함의를 갖게 될 것이다.”

2021년 1월 6일(현지 시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지지자들이 워싱턴 국회의사당 앞에서 대선 부정선거를 주장하며 의회 점거 폭동에 나선 모습. AP 뉴시스

―지난달 한국 총선 과정에서는 막말이 쏟아졌고 상호 비방 속에 정책 대결은 실종되다시피 했다. 성공한 민주화를 이뤄낸 국가에서조차 이런 퇴행이 벌어지는 것을 어떻게 봐야 하나.

“보기 흉한 정치 양극화를 경험해 보지 않은 나라는 찾기 어렵다. 라틴아메리카만 해도 1970년대에는 좌파가 극단적이지 않았고 사유재산을 국유화하려는 시도도 없었지만 이젠 그 어느 지역 국가들보다 양극화가 극심해진 상황이다. 소셜미디어의 영향이 이를 가중시킨 측면이 있다. 우리 사회가 이를 어떻게 제대로 규제, 통제해야 할지 방법을 찾지 못하고 있는 게 문제다. 인공지능(AI) 기술을 이용한 허위정보도 마찬가지다. 기술이 이를 통제할 우리의 역량보다 앞서 나가고 있다.”

―한국에서도 미국에서도 정치적 팬덤의 부작용이 커지는 듯한데….

“카리스마 있는 지도자에게 거칠고 광적인 지지자들이 따라붙는 것은 늘 있어온 현상이다. 전체의 30%를 넘지 않는 소수파다. 다만 최근에는 이들이 소셜미디어를 통해 연결돼 목소리를 키운다는 점이 과거와 다르다. 몇십 년 전만 해도 미국 서부의 시골에서 어떤 극렬 지지자가 미친 소리, 멍청한 소리를 한다고 해도 정반대 지역에서 이를 들을 일이 없었다. 이제는 모두가 다 듣고 안다. 심지어 계속 반복되고 퍼져나가면서 ‘이런, 정말 심각한 일이야’라고 생각하게 만든다. 이들이 다수가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리고 이에 과민반응해서는 안 된다.”

―제도적 자제와 상호 관용이 당신이 책에서 제시한 해법이다. 그러나 권력을 놓고 죽기살기로 싸우는 정치권 스스로 이를 해낼 수 있을까.

“2개 이상의 정당이 싸울 때 어느 한쪽이 자제하거나 룰을 지키는 것은 매우, 매우 어려운 일이다. 공화당이 점점 극단화하고 룰을 위반하려는 경향이 강해지면서 민주당이 똑같이 지저분하게 맞대응해야 하느냐를 놓고 격론들이 있었다. 딜레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주주의 위기는 룰을 지키는 것으로 막아야 한다는 게 내 생각이다. 정치평론가나 활동가들은 ‘한쪽 팔을 뒤로 묶은 채 링 위에 올라가라는 것이냐’고 비판한다. 한쪽이 모든 무기를 쓰면 다른 한쪽도 가진 모든 무기를 들어야 한다는 논리다. 문제는 그런 식으로 맞대응할 경우 양쪽 모두 극단으로 치달으면서 결국 민주주의를 죽이게 된다는 것이다.”

―결국은 서로가 강대강의 정면 대결로 치닫는 경우가 훨씬 많은 게 아닌가.

“정치인들이 상호 이해를 바탕으로 넘지 말아야 할 선을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 이를 넘어버림으로써 민주주의를 잃은 나라들이 그 대가를 치렀음을 역사가 보여준다. 정치인들이 절대로 넘지 말아야 할 레드라인이 있다는 것을 유권자들 또한 알아야 한다. 이 선을 지킬 수 있도록 사회에서 존경받고 권위 있는 지도자들, 종교지도자와 원로와 비즈니스 리더와 언론 등이 나서야 한다.”

―러시아에서는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80%가 넘는 지지율로 5선에 성공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3연임 체제를 굳혔다. 이들은 대외적 영향력 확대와 군사력 강화도 시도하고 있다. 서구 자유민주주의 국가들과의 갈등이 더 심해질까.

“냉전 종식 후 2000년대 초반까지 서구 국가들은 자유주의라는 헤게모니를 쥐고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중국과 러시아라는 중요한 두 개의 권위주의 파워가 부상하고 있다. 동시에 한국 일본 대만 같은 동아시아 국가들도 부상하면서 세상은 다극화되고 있다. 서구 국가들은 여전히 파워풀하지만 과거로는 절대 돌아가지 못한다. 권위주의 국가들에 대응하는 방법은 자유주의의 건강함을 지키고, 이를 뒷받침할 경제력을 유지하는 것이다.”

―‘이코노미스트 인텔리전스 유닛(EIU)’의 2023년도 글로벌 민주주의 지수에 따르면 ‘완전한 민주주의’로 분류된 나라는 24개국(14.4%)에 불과하다. 반면 권위주의 체제는 59개국(35.3%)으로 더 많다.

“민주주의가 체제적으로 더 우월하다는 내 믿음에는 변함이 없다. 경제 성과, 성장, 부패지수, 범죄율 등이 이를 보여주고 있다. 코로나 팬데믹 위기만 해도 권위주의 국가들이 효율적으로 대응할 수 있다는 주장이 있었지만, 대만도 한국도 매우 잘해 내지 않았나. 민주주의에 대해 이런저런 불만을 토로하는 이들도 막상 그 엄청난 가치를 포기하지는 않는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이 모두 장기화하고 있다. 당신이 지적한 ‘민주주의의 가장 큰 위협’이 전 세계적으로 커지는 듯 보인다. 북핵 위협에 직면한 한국도 상황이 다르지 않다.

“한 국가가 존재론적 위협을 받게 될 때 사람들은 보호받기 위해 권위주의에 굴복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내부 결집이 빠르게 이뤄진다. 1960, 70년대 한국에서도 나타난 상황 아닌가. 덴마크 같은 곳에는 없는 위협을 한국이 직면하고 있는 것이다. 다만 한국이 이후 40년간 보여준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준 높은 민주주의를 확립해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스티븐 레비츠키 하버드대 교수
민주주의와 권위주의, 라틴아메리카 정치 등을 중점적으로 연구해 온 학자. 미국 하버드대 데이비드 록펠러 중남미 연구센터장을 맡고 있다. 2018년 하버드대 동료 교수인 대니얼 지블렛과 함께 쓴 저서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는 28개 언어로 번역됐고, 미국은 물론이고 독일 등 해외에서도 베스트셀러에 오르며 국내외 정치학계의 관심을 모았다. ‘경쟁적 권위주의’ 등 여러 저서에 이어 최근에는 ‘어떻게 극단적 소수가 다수를 지배하는가’를 출판했다.

이정은 부국장 light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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