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보다] D-592일, 사육곰의 운명은?

이규명 2024. 5. 19. 2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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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보다] D-592일, 사육곰의 운명은?

<지난 1월, 충남 당진시>

우리에 갇힌 곰 한 마리


마취총을 맞고 쓰러집니다.

들어. 넷이면 될 거 같아. 가벼워. 하나 둘 셋


일단은 이거 올리고. 거기다 안정되게 싣고선.

현재 대한민국에는 웅담 채취용으로 사육 중인 곰 312마리가 있습니다.

내년 말까지 이 곰들은 도축되거나 보호시설로 보내져야 합니다.


<지난달, 충남 당진시>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먼 길 오셨네. 오랜만에 뵙습니다. 잘 지내셨죠.

최태규 씨는 야생동물 전문 수의사입니다.

5년 전부터 곰 사육 농장을 돌며 사육 실태를 조사하고 있습니다.

말라가지고 말라서 저쪽. 말랐다고요? 이렇게 말라 곰이 이렇게 말라

얼핏 봐도 깡마른 곰.


김광수/곰 사육 농장주
곰들한테 잘 먹이고 싶은데 돈이 없으니까 일단 사료도 간신히 지금 먹이는 형편이고 바닥이 걸을 때마다 출렁출렁하네요. 내려앉을 수도 있고 얘들이 뜯는다고 치면 뭐 힘이 워낙 좋으니까

곰을 가둔 우리는 낡을 대로 낡았습니다.


탈출했던 데가 어느 칸이에요? 철이 삭아서 썩어서 노후되가지고 이제 곰이 밑에 장을 뜯고서 바닥으로 탈출한 건데.

다섯 달 전 이곳에 있던 곰 한 마리가 우리를 뜯고 탈출해 사살됐습니다.

나한테 달려들어 가지고 내가 달리기로 해서 도망가다가. 도망가시고. 큰일 날 뻔했죠. 아이고. 바짝 한 2m 정도 거리 두고 곰하고

33년 전부터 곰을 사육해온 김광수 씨.

현재 91마리의 곰을 키우고 있습니다.


한쪽 팔이 잘린 곰.

김광수/곰 사육 농장주
다리 못 쓰는 애. 얘가 다리 못 쓰는 애야.

한눈에 봐도 곰들의 상태가 좋지 않아 보입니다.

최태규/야생동물 수의사
귀 끝이나 이마 쪽에도 털이 빠지고 하얗게 된 부분들은 곰팡이성으로 피부병이 생긴 거죠.

국제적 멸종위기종 반달가슴곰.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토종 반달가슴곰과 다른 종으로 1981년부터 동남아와 일본 등에서 수입된 곰들이 번식해 자랐습니다.


최 수의사가 농가 실태를 조사하기 시작한 건 내년 말을 기점으로 민간 농가에서 곰 사육이 금지되기 때문입니다.

최태규/야생동물 수의사
2026년 1월 1일부터는 개인의 곰 사육과 웅담 채취, 웅담 판매가 금지되고요. 이 곰들은 보호시설로 옮겨지거나 혹은 도살되거나

사육곰을 한 마리라도 더 구하기 위해 시민 후원금을 모아 전국의 곰 사육 농가와 협의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최태규/야생동물 수의사
농가에 다니면서 혹시 곰 사육을 포기하고 싶으신 분이 계신지 곰들이 잘 살기를 바라는 마음을 가지신 분들이 이 곰을 너무 비싸지 않게 넘기고 업을 그만두신다고 하면 저희가 철거비도 지원하고 곰도 일정 정도 보상해 드리고 데리고 와서 저희가 좀 최대한 잘 돌보려고 애를 쓰고 있습니다.

하지만, 농가와의 협상은 진전이 없습니다.

최태규/야생동물 수의사
시민단체가 마련할 수 있는 금액과 농가에서 원하는 금액은 굉장히 차이가 커서 시민단체의 능력으로 뭔가 메꿀 수 있는 것 같지는 않고요.

농가가 바라는 곰 한 마리 가격은 2~3천만 원 선.

최 수의사는 3백만 원 선에서 곰을 사길 바라고 있습니다.


김광수/곰 사육 농장주
전 재산인데 이게 곰이 ‘헐값에 그냥 거저 기증하면 자기들은 가져가겠다’는 이런 마음이지.

김광수 씨는 우연한 계기로 곰을 키우게 됐습니다.

김광수/곰 사육 농장주
어느 사슴 농장에 갔더니 곰을 사육하길래 관심이 있어 이렇게 보는 중에 그 새끼를 어미가 그 키우는 장면을 보고 너무 예뻐서

처음 4마리로 시작한 곰들이 번식을 거듭해 한때 150마리까지 키우기도 했습니다.

김광수/곰 사육 농장주
수익이 농가 소득이 굉장히 좋을 것이다. 그래서 장려했죠. 정부에서.

(출처 :한국정책방송원)

초기 자금이 많이 들었지만 번식한 새끼를 팔며 한동안 수익은 괜찮았습니다.
그때는 곰 한 마리 얼마씩 했습니까? 새끼 한 마리에 한 8백, 천만 원 막 이렇게 달라고 그랬어요.

사육장 짓는 데 한 4천만 원 들었는데 그 당시 4천만 원이면 어마어마하게 큰 돈이야. 그렇죠. 새끼 내서 분양하는 게 되게 짭짤하고 재미있어요.


하지만, 이후 나라 안팎에서 야생동물 보호 목소리가 높아졌고
1993년, 정부도 멸종위기종 보호를 위한 국제 협약에 가입하면서 곰 수입과 수출을 전면 금지했습니다.

김광수/곰 사육 농장주
하늘이 무너지는 청천벽력 같은 소리죠. 고부가가치다. 이렇게 선전을 해서 한 사업인데.
그걸 나중에 수입하고 나서 몇 년 지난 후에 길이 막히니까 아무것도 판매도 못 하게.

농가들은 반발했고, 정부는 10살 이상 된 곰에 한해 도축을 허용해 웅담은 판매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하지만 조건이 있었습니다.

김광수/곰 사육 농장주
홍보해서는 안 돼요. 웅담 판다고 홍보하면 안 돼. 안 되게끔 그 내부 지침안에 그게 법령이 들어가 있어요

(출처 : kbs)

판로가 막히자 일부 농가들은 살아있는 곰의 배에 관을 꽂아 쓸개즙을 뽑아 불법으로 판매하기까지 했습니다.

여론은 더 나빠졌습니다.

김광수/곰 사육 농장주
딴 거 아무것도 못 팔게 하고 웅담만 팔아라. 그럼 웅담에다가 그 몸값 2천만 원 3천, 5천만 원을 받아야 하는데 맞냐고 누가 사 먹냐고

한때 고소득이 기대되던 사육곰들은 한순간에 애물단지가 됐습니다.


김광수/곰 사육 농장주
사육하려면 어마어마한 돈이 들어가죠. 1년에 2천만 원 3천만 원씩 사료비가 들어가니까.
기르면 계속 적자인데 왜 사육합니까? 사육하는 이유가 있어요. 그렇다고 이거 산짐승 다 죽이냐 이거야.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정부는 2026년부터 민간 농가의 곰 사육은 물론 웅담 채취와 판매까지 전면 금지했습니다.

김광수 씨에게는 날벼락이나 다름없는 소식이었습니다.

당장 내년까지 사육하고 있는 곰 91마리를 모두 도축하거나 사육을 포기해야 합니다.


김광수/곰 사육 농장주
지금 현재로서는 답이 없어요.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서 매입하거나 지원하지 않으면 저희는 방법이 없어요.

정부는 사육곰 120마리를 수용할 수 있는 시설은 짓고 있지만, 예산을 들여 농가로부터 사육곰을 매입하지는 않겠다는 입장입니다.

최태규/야생동물 수의사
정부에서는 이 곰을 정부가 매입하는 것에 대해서는 반대를 하고 있습니다. ‘사유재산이고 농가들이 선택해서 한 사업이기 때문에 어떤 보상을 주고 곰을 데리고 오는 것은 맞지 않다‘라는 주장을 하면서 시민단체가 농가와 협상을 해서 이 곰들을 좀 사서 정부 시설에 넣어달라는 요청을 하고 있고요.

<사육곰 임시 보호시설>
강원도 화천군


40년 넘게 곰을 키워온 이혜숙 씨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처지에 놓였습니다.

이혜숙/곰 사육 농장주
더는 곰을 키우지 말라고 그러니까 분양해서 파는 목적이었는데 이제 그렇게 판로가 다 끊기고 나니까
사료비는 계속 들어가고 중간중간 너무 힘드니까. 저걸 도축을 하거나 죽이거나 하면 어떡해요.
그렇다고 동물원에다가 또 줄 수도 없는 상황이었고.

이혜숙 씨 부부는 곰 사육 농장을 보호시설로 바꾸자는 최태규 수의사의 제안을 받아들였습니다.


최태규/야생동물 수의사
저희가 생추어리(야생동물 보호시설)를 지을 계획이 있었고, 이 공간에서 곰을 계속 키우는 것을 이제 용인을 하시고.
자리를 비워야 할 때 곰을 챙겨주기도 하시고.

다양한 직업의 봉사자들이 힘을 보탰습니다.

최태규/야생동물 수의사
다른 일 하면서 시간 쪼개서 와서 곰들 돌보고 곰들한테 무엇을 해줄 수 있는지 고민하고.
또 곰들을 어떻게 하면 더 잘 지내게 할 수 있을지 이런 것들을 좀 나누고 있고

개 사료나 음식 찌꺼기를 먹던 곰들에게 후원금으로 준비한 건강한 식단을 제공하기 시작했습니다.

도지예/사육곰 임시 보호시설 활동가
당근이랑 주키니 고구마 그리고 양배추 파프리카 이런 것들이 들어가고 있습니다.


곰들의 사육 환경은 눈에 띄게 달라졌습니다.

강지윤/사육곰 임시 보호시설 활동가
나무도 타고 바닥에 떨어진 것도 좀 주워 먹고 이런 애들이다 보니까.
이제 흡사 좀 비슷하게 만들어주는 거죠. 인공적인 구조물로.

곰들의 행동도 조금씩 변하기 시작했습니다.


도지예/사육곰 임시 보호시설 활동가
즐겁게 서로 놀고 뒹굴고 이런 모습을 보면 계속 갇혀 있었던 애들이 서로에 대해서 그런 반응을 할 수 있는 경험을 할 수 있다는 것이 좀 좋은 거 같아요.
되게 벅차기도 한 것 같고.

하지만, 봉사자들의 힘만으로는 한계가 있습니다.

최태규/야생동물 수의사
회원분이 한 천 명 정도 되는데 이분들의 어떤 후원금으로 여기서 곰을 돌보는 사람들의 인건비, 곰 밥값 또 여기 시설 기반을 만드는 데 필요한 공사비들을 충당하고 있고.


김민재/사육곰 임시 보호시설 활동가
개인의 노력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가 아니거든요. 저희 같은 사람들은 그냥 관심이 있고 이 동물들의 복지를 위해서 그냥 어떤 개인의 가치관 실현을 위해서 할 뿐인 거지

<청주동물원>


김정호 수의사가 일하고 있는 청주동물원.

김정호/청주동물원 수의사
좁은 케이지에 갇혀 있었는데 저 곰들을 데려와서 구조해서 저희가 지금 보호하고 있어요

시민단체들이 구조한 사육곰 여섯 마리가 살고 있습니다.

김정호/청주동물원 수의사
’저희가 곰을 구한 게 아니라 곰이 청주동물원을 구했다' 뭐 이런 표현을 쓰기도 하는데 저희가 이제 바뀌는 데 있어서 처음 계기가 됐었던 그런 친구들이죠.


청주동물원은 전국에서 시설이 가장 작고 열악한 공영동물원이었습니다.

전국 각지에서 구조한 동물들을 하나, 둘 데려와 키우면서 동물원에도 변화가 찾아왔습니다.

김정호/청주동물원 수의사
나무 위에 올라가는 것도 굉장히 좋아해요. 나무 위에 올라가서 막 낮잠을 자는 친구들이거든요.
그러니까 이제 올라갈 수 있는 이 구조물들이 있어야겠죠.
자연의 그런 물질들이 꽤 많아야 편안함을 느끼는 친구들이라 그렇게 해주려고.

<지난달, 사육곰 민관협의회>

내년 말로 예정된 사육곰 종식을 논의하기 위해 환경부와 사육 곰 협회 관계자들이 모인 자리.


김광수/곰 사육 농장주
120~130마리 정도밖에 지리산하고 구례하고 들어갈 거밖에 없거든요. 나머지 280마리 중에 나머지는 어떻게 할 건지 그것도 좀 논의 좀 하시고.

시설에 들어가지 못하는 사육곰들을 정부가 매입해 달라는 요구와

김태오/환경부 자연보전국장
법적 근거도 필요하고 그다음에 이제 재정 당국을 또 설득해야 하는 문제들이 있다 보니까

정부 예산으로 사육곰 매입은 어렵다는 입장이 팽팽히 맞섭니다.

문제원/환경부 생물다양성과장
매입 비용에 대해서 말씀하셨는데 그 부분에 대해서는 예산은 없고요.
폐업 지원이나 업종 전환에 대한 요청이 좀 있으시기 때문에 그 부분은 검토 중입니다.

<청주동물원>


올해 1월, 충남 당진의 김광수 씨 농장에서 곰 한 마리가 청주동물원으로 옮겨졌습니다.

김정호/청주동물원 수의사
당진에 있는 곰 농장에서 곰이 조금 몸이 안 좋다고 해서 저희가 데려와서 치료했습니다. 지금은 다 나았고요.
많이 말라 있었고 변을 못 보니까 힘들어했었고. 검사를 해보니까 곰팡이성 질병도 있었고요.

깡말랐던 곰은 넉 달 만에 건강을 회복했습니다.

하지만 이 곰은 얼마 후면 원래 있던 농장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김정호/청주동물원 수의사
사유 재산이기 때문에 이제 돌려놔야 하는 거죠. 농장 상황을 아니까.
다시 돌아간다고 생각하면 마음이 좋지 않죠.


청주동물원 같은 공영동물원에서 논란이 되고 있는 사육 곰들을 매입해 키우는 방안도 해법의 하나로 제시됩니다.

이형주/동물복지문제연구소 어웨어 대표
공영동물원 특히 세금으로 운영되는 동물원이라고 하면 동물한테도 그렇고 시민들한테도 그렇고
이런 사회적 가치 공적인 가치 그런 것을 제공해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40년 넘게 이어온 곰 사육업은 내년 말 종료를 앞두고 있습니다.

하지만 아직도 산적한 과제가 남아 있습니다.


최태규/야생동물 수의사
농장에 살고있는 곰 중에 일부를 국가가 만드는 보호시설에 어떻게 집어넣을 것이냐의 문제와 남은 곰들은 어떻게 할 것이냐. 곰 산업이 어떻게 끝나느냐가 저는 중요한 부분인 것 같아요.

취재기자: 이규명
촬영: 강우용 조선기
영상편집: 김지영
CG: 장수현
리서처: 김예은
AD: 유화영 김영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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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명 기자 (investigate@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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