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욱식 칼럼] ‘유사시 무력통일’도 배제하면 어떨까?

한겨레 2024. 5. 19. 2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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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쌍룡훈련에 참가한 뉴질랜드 장병들이 9일 독도함에서 공중돌격훈련에 동원된 미국 MV-22 오스프리에 탑승하기 위해 대기하고 있다. 2016년 쌍룡훈련에는 한·미 해군·해병대 외에 오스트레일리아·뉴질랜드군도 참가했다. 해군 제공

한국은 위기인가 ? 각 부문을 일일이 거론하지 않더라도 위기인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 그래서 혹자들은 ‘복합 위기 ’, ‘다중 위기 ’라고 표현한다 . 여러 위기가 꼬리에 꼬리를 물면서 악순환을 만들고도 있다 . 출구도 처방도 마땅치 않은 현실을 보면서 세계적인 석학인 재러드 다이아몬드가 한 말을 떠올려 본다 . 그는 “위기란 일반적인 대처법과 문제해결법으로는 극복할 수 없는 중대한 도전에 직면한 상황 ”이라며 이러한 위기를 돌파하기 위해서는 “선택적 변화 ”를 추구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

‘선택적 변화 ’라는 말 속에는 우리가 선택할 수 있고 선택하면 유의미한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뜻을 내포하고 있다 . 무엇이 있을까 ? 나는 우리 사회와 정치권이 진지하게 토론해볼 수 있는 의제로 ‘유사시 무력통일 배제 ’를 들고 싶다 . 생소하게 들리겠지만 , 우리가 이러한 선택을 하면 다양하고도 이로운 변화를 도모할 수 있다 .

왜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는지부터 얘기해보려 한다 . 크게 세 가지이다 . 첫째는 적대적인 방향으로 치닫고 있는 남북관계의 위기이다 . 둘째는 민생 ·불평등 ·인구소멸 등 한국 내부의 위기이다 . 셋째는 기후재앙으로 대표되는 글로벌 위기이다 . 이들 위기는 서로 연결되어 있고 그래서 이들 위기를 극복하려면 융합적 사고에 바탕을 둔 선택적 변화가 필요하다 . 유사시 무력통일 배제가 만병통치약이 될 수는 없더라도 공론화해볼 가치는 충분히 있다 . 전쟁이나 ‘북한급변사태 ’가 발생하면 무력으로 통일을 완수하겠다는 군사전략은 평소에도 막대한 인적 ·물적 자원이 투입을 초래하고 있고 기후생태 문제에도 악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

그렇다면 유사시 무력통일론은 언제 만들어진 것일까 ? 이승만 정권은 한국전쟁 이후에도 ‘북진통일 ’을 국시로 내세우곤 했지만 , 작전통제권을 유엔사 (미국 )가 갖고 있었기에 허상에 가까웠다 . 그리고 미국이 만든 작전계획은 1990년대 초반까지만 하더라도 조선의 무력침공 시 방어 ·격퇴 ·보복에 한정되어 있었다 . 전시 무력통일론이 작전계획에 포함된 해는 1998년이었다 . 당시 김대중 정부는 대북정책의 원칙 가운데 하나로 ‘흡수통일 배제 ’를 천명했지만 , 한미연합사의 작전계획 5027-98에는 이러한 내용이 포함되었다 . 그 이후 한국 정부의 변화와 관계없이 유사시 무력통일론은 구체화 ·강화되어왔다 . 심지어 문재인 정부의 ‘국방개혁 2.0’도 그랬다 . 김정은 위원장이 흡수통일을 시도한 것은 “‘민주 ’를 표방하든 , ‘보수 ’의 탈을 썼든 조금도 다를 바 없었다 ”고 주장한 것이 전혀 근거가 없는 것은 아니다 . 그래서 유사시 무력통일 배제가 남북관계와 한반도 정세에 얼마나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지는 좋은 토론거리이다 .

더 확실한 기대효과는 한국 자체에 있다 . 한국이 여전히 50만에 달하는 대군과 징병제를 고수하는 데에는 유사시 ‘북한 점령 및 안정화 작전 ’에 필요한 병력이 약 40만명이라는 군사적 필요가 주요하게 작용하고 있다 . 또 올해 60조원에 달하는 국방비의 상당 부분도 유사시 무력통일 완수에 필요한 무기 ·장비 ·훈련 ·부대운용에 들어간다 . 이는 한국이 무력통일론을 배제하면 , 병력과 국방비 감축이 가능해진다는 것을 뜻한다 . 병력수를 30만 이하로 줄이고 모병제를 매력적으로 설계하면 사회경제적 불평등 ·젠더 갈등 ·노동가능인구 급감 등 우리사회 여러 문제를 완화하고 적응하는데 기여할 수 있다 . 줄어든 국방비를 교육 ·보건의료 ·신재생에너지 ·인프라 분야에 사용하면 방위산업보다 탁월한 일자리 창출 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 .

글로벌 위기의 핵심인 기후 문제 대처에도 효과가 있다 . 전략폭격기 한 대의 1시간 탄소 배출량이 자동차 한 대 7년치에 해당될 정도로 군사 부문의 탄소배출량은 엄청나다 . 유사시 무력통일 배제는 압도적으로 세계 최대 규모로 실시되어온 한미연합훈련을 포함한 군사 활동의 대폭 축소로 이어질 수 있고 그만큼 탄소 배출도 줄일 수 있다 .

안보를 무시한 발상으로 들릴 수 있다 . 하지만 유사시 무력통일을 배제해도 외부의 위협에 대처할 수 있는 효과적인 억제 능력은 구비할 수 있다 . 인구 급감 시대에 징집률을 높여 병력수를 채울수록 관리 부담도 높아지기 마련이다 . 무엇보다도 유사시 무력통일의 대상인 조선은 ‘가난과 고립에서 탈피하는 핵보유국 ’이 되고 있고 동맹국인 미국은 갈수록 미국인이 피를 흘리는 전쟁을 꺼려한다 . 조선과 미국은 크게 달라졌는데 , 한국이 유사시 무력통일론을 고수하는 것이 어떤 실익이 있는지 자문해볼 때이다 . 또 이를 배제하는 것이 어떤 실익이 있는지 토론해볼 때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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