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잡해진 주한미군 득실관계…‘토론의 문’ 개방할 필요
주한미군의 경제적 효과도 줄어들어
‘미군 없는 한미동맹’도 생각해봐야
주한미군은 성역이다 . 적어도 접수국인 한국에선 그렇다 . 지난 4월 총선에서도 이는 여지없이 확인된 바 있다 . 야권의 비례대표 예비 후보들이 고고도미사일방어체제 (THAAD)나 한미연합훈련에 반대했다는 이유로 낙마한 것이다 . 하지만 주한미군이 뿌리째 흔들릴 조짐이 일고 있다 . 그것도 파견국인 미국에서 말이다 . 11월 미국 대선에서 당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과 그의 핵심 참모들은 주한미군 존재 자체를 문제삼고 있다 . “부유한 한국을 왜 우리가 지켜주느냐 ”며 그래도 주한미군이 필요하면 방위비 분담금을 대폭 인상하거나 미국의 전략적 이익인 대중국용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 트럼프가 아니더라도 ‘선택적 고립주의 ’와 ‘미국 우선주의 ’를 선호하는 미국 여론이 지속적으로 높아지고 있는 점도 간과할 수 없는 문제이다 .
사정이 이렇다면 더 늦기 전에 한국의 관점에서 주한미군의 득실관계를 따져보는 것은 어떨까 ? 국익을 바라보는 관점도 다양하고 , 득실관계를 수치화하기도 쉽지 않으며 , 미래는 불확실하면서도 한미동맹에는 다양한 선택지가 있다는 점에서 이를 명확히 규명하긴 어렵다 . 하지만 한미 간에는 주한미군에 관한 정책과 전략은 물론이고 담론의 격차도 너무나도 크다 . 이러한 비대칭성을 조금이라도 완화하기 위해서는 국내에서도 주한미군에 대한 토론의 문을 개방할 필요가 있다 .
한미상호방위조약의 물리적 핵심인 주한미군의 가장 큰 득실관계는 대한민국 안보와 한반도 평화에 미치는 영향에 있다 . 주한미군이 한국전쟁 이래 대북 억제력 및 정전체제 유지 ·관리에 핵심적인 역할을 해왔다는 점에서 안보상의 실익이 있는 것은 분명하다 . 동시에 강력한 주한미군의 존재와 세계 최대 규모의 한미연합훈련은 조선의 핵무기 개발 동기의 하나로 작용했고 정전체제의 평화체제로의 전환에 걸림돌이 되어온 측면도 있다 . 주한미군이 ‘소극적 평화 ’에는 기여하지만 , ‘적극적 평화 ’에는 못 미친다는 것이다 .
주한미군은 더 중요한 안보상의 논쟁거리도 잉태하고 있다 . 한국의 이웃국가인 중국이 강대국으로 부상하면서 중국을 견제하는 데에 한미동맹 강화와 주한미군이 필수적이라는 인식이 한편에 있다 . 그런데 다른 한편에선 대만 등에서 미국과 중국 간에 무력충돌이 발생하면 한국이 원하지 않는 전쟁에 연루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 실제로 21세기 들어 미국의 모든 행정부는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을 추구해왔고 그 추세는 미중 전략경쟁과 대만 문제를 둘러싼 갈등과 더불어 강해지고 있다 . 이로 인해 주한미군은 ‘위협 대응형 ’ 못지않게 ‘위협 초래형 ’의 성격도 품고 있다 .
경제적인 관점에서도 손익계산서가 명확한 것은 아니다 . 다만 주한미군의 경제적 효과가 줄어들고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 . 우선 1990년까진 없었던 방위비 분담금이 ‘특별조치협정 (SMA)’이라는 이름하에 1991년에 신설되었고 , 그해 835억원이었던 것이 2023년에는 1조 2900억원으로 폭등했다 . 또 토지 공여 , 카투사 지원 , 세금과 공과금 면제 ·감면 등을 통한 지원 규모도 연간 2조원에 육박한다 . 아울러 과거에는 주한미군이 한국의 국방비를 절감해주는 효과가 있었지만 , 최근 들어서는 한국 국방비와 방위비 분담금이 큰 폭으로 같이 올라가고 있다 . 그렇다면 우리 , 혹은 한미관계 차원의 선택지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 현 상태 유지에서부터 한미동맹 종결에 이르기까지 그 스펙트럼은 넓다 . 하지만 현 상태의 유지는 갈수록 힘들어지고 있다 . 한국이 부담하는 방위비 분담금이 크게 늘어나고 있고 특히 트럼프 재집권 시 감당하기 힘든 요구에 직면할 수 있다 . 더 중대한 문제도 있다 . 대규모의 주한미군을 계속 유지할 경우 대북용보다는 대중국용으로 변질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 이는 미국의 초당적인 요구이자 흐름이다 . 그렇다고 한미동맹이 종말을 고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 트럼프나 그의 참모도 주한미군 철수는 입에 올리더라도 한미동맹을 해체해야 한다고 주장하지는 않고 있기 때문이다 .
조 바이든 대통령 재선 시에는 선택지가 분명해 보인다 . 중국을 겨냥한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 강화와 방위비 분담금의 점진적인 인상으로 귀결될 가능성이 높다 . 반면 트럼프 집권시에는 한국의 딜레마가 격화될 것으로 보인다 . 한국이 주한미군 철수 불가를 고수할수록 트럼프는 이를 지렛대로 삼아 방위비 분담금의 대폭 인상과 대중국용으로의 전환을 관철하려고 할 것이기 때문이다 . 일각에선 이에 대한 대안으로 독자적 핵무장을 주장하고 있지만 , 이게 지혜로운 선택지가 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냉정하게 따져봐야 한다 .
‘주한미군 없는 , 혹은 대폭 줄어든 한미동맹 ’도 생각해볼 수 있다 . 재래식 전력에 해당하는 주한미군은 철수하거나 소규모로 남겨두고 핵우산을 포함한 미국의 확장억제를 골자로 하는 한미동맹은 유지하는 방안도 선택지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 물론 이러한 방안은 미국의 확장억제에 대한 불신을 더욱 키울 수 있다 . 안 그래도 ‘미국이 서울을 위해 워싱턴을 희생할 수 있느냐 ’는 의문이 나오고 있는 상황에서 주한미군마저 떠나면 확장억제를 더더욱 믿을 수 없게 된다는 것이다 . 이러한 의문은 유사시 미국인 피해가 크게 발생해야 미국도 보복할 것이라는 가정에 기초하고 있다 . 그런데 이는 반대의 경우를 간과한 것이다 . 한국에 미국인이 적을수록 적어도 한국에선 자국민 피해를 줄일 수 있어 확장억제 실행의 문턱이 낮아질 수 있기 때문이다 .
한국이 어떠한 선택을 할지 토론하고 준비하더라도 분발해야 할 것은 있다 . 크게 두 가지이다 . 하나는 하염없이 늦어지고 있는 전시작전권 환수를 조속히 실행하는 것이다 . 또 하나는 1990년 이래 최악으로 치닫고 있는 북 ·중 ·러와의 관계 개선에 나서는 것이다 . 한국의 자주국방 역량 강화와 외교안보 환경 개선을 통해 트럼프 , 혹은 미국의 선택적 고립주의에 따른 리스크를 관리하고 한국의 선택지를 넓혀가야 한다는 것이다 . 전작권 환수를 진보의 의제로만 착각해 체질적인 거부감을 보이고 , 미일동맹에 다 걸기를 해온 윤석열 정부를 비롯한 한국 보수의 대오각성이 필요한 까닭이다 .
정욱식 한겨레평화연구소 소장 wooksik@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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