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세상]공영방송 독립, 경영진 임기보장부터
방송통신심의위원회와 선거방송심의위원회는 왜 그토록 무리하게 MBC 제재에 나선 걸까? ‘권력을 향한 충성’과 ‘언론 위축 효과 내기’ 외에도 다른 무엇이 있을 것 같다. “연말에 있을 방송 재허가 심사에 이 결과를 반영하기 위해서”라는 해석도 있다. 하지만 MBC가 제재에 불복해 소송을 제기할 것이고, 그러면 올해는 넘길 확정판결 전까지 재허가 점수에 반영이 안 된다. 그렇다면 다른 합리적 동기는 뭘까? 오는 8월이 되면 MBC 대주주인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진이 임기 만료로 다 바뀐다. 다수를 차지하게 될 여권 이사들은 무엇보다 먼저 안형준 MBC 사장을 해임하려 나설 것이다. 이때 재임 기간 중 유례없는 제재 건수와 강도를 기록한 ‘죄과’가 명분이 될 것이다. 안 사장이 불복해 해임 효력 정지 가처분을 신청해도 법원이 전례들처럼 기각하리라는 기대로 이런 역대급 기행을 벌이고 있다는 게 나의 추론이다. 본안 소송 최종 판결은 수년 뒤에나 나오니 그 결과는 무의미하다.
정부는 공공서비스의 주체다. 공영방송도 공공서비스의 하나다. 그러므로 이 임무를 놓고 정부와 개인이 대립할 때 법원은 짧은 기간에 판단하는 가처분 단계에서는 일단 정부 손을 들어줄 가능성이 크다. “나 아니면 안 된다”라는 주장은 해임된 개인의 생각일 뿐이다. 이것이 그동안 법원이 해임 정지 가처분을 거의 인용하지 않은 맥락으로 보인다. 지난해 권태선 방문진 이사장의 가처분이 인용된 것이 매우 이례적이었고 그만큼 의미가 컸다. 공공기관인 KBS 및 방문진과 달리 상법상 주식회사인 MBC의 사장 지위는 더 불안정하다. 회사와 사장은 위임 계약 관계이기 때문에 정당하지 않은 사유로 주주총회에서 임기 중 해임되더라도 기본적으로 손해배상 청구만 가능하다.
민주 체제인 제6공화국 출범 이후 현직을 제외한 KBS와 MBC 사장들의 평균 재임 기간은 각각 2년8개월과 2년3개월이었다. 정권이 바뀌거나, 심지어 같은 정권이라도 대통령이 바뀌면 공영방송 사장이 스스로 물러났다. 1998년 홍두표, 2003년 박권상 등 KBS 사장들이 그렇게 사표를 냈다. 2008년 정연주 KBS 사장은 정권 교체에도 자리를 지키는 원칙을 만들겠다며 버텼지만 결국 해임됐다. 이후 문재인 정부 시절 김장겸 MBC, 고대영 KBS 사장이, 그리고 윤석열 정부에서 김의철 KBS 사장이 쫓겨나면서 정권 교체 후 해임이 정례가 돼버렸다.
영국 BBC는 방송사 출범 후 현직을 제외한 사장들의 평균 재임 기간이 약 6년이다. 1992년 보수당 때 임명된 존 버트 사장은 1997년 노동당으로 정권이 넘어간 뒤에도 3년간 더 사장직을 유지했다. 그는 퇴임 후 노동당 토니 블레어 총리의 자문역으로도 일했다. 2004년 노동당 정권에서 임명된 마크 톰슨 사장은 2007년 보수당으로 정권교체 후에도 2012년까지 사장직을 유지해 총 8년을 재임했다. 그는 이후 미국 뉴욕 타임스 사장을 거쳐 현재 CNN 사장이다. 정권과 관계없이 능력에 따라 사장이 재임할 수 있다면 그만큼 독립성과 수월성이 담보되는 셈이다.
나는 공영방송 독립을 위해서는 민주당의 ‘방송 3법’을 실험하는 것보다 꼼수 해임 구조를 바꾸는 게 우선이라고 생각한다. 무엇보다 방송법과 방송문화진흥회법에 사장과 이사의 해임 요건을 강화해야 한다. 가처분 단계에서부터 법원이 간과할 수 없게 탄탄한 법적 구조를 세우는 게 중요하다. 법원도 그간의 타성적 판례에서 벗어나, 부당한 공영방송 사장 해임 자체가 가처분 인용 중요 기준인 ‘공공복리’를 해치는 것임을 전제해야 한다. 단일대오와 선명성만 과시하는 급조된 전략과 정책, 그리고 정의는 승리한다는 확신 명제로 게으름을 대신하다 실패하는 경우를 많이 보았다. 가시덤불을 잘라가며 어렵게 만들어 낸 새 사례가 다음번엔 당연히 가게 되는 길이 된다.
강형철 숙명여대 미디어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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