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가 달 위를 걸을 때…무인선 보내겠다는, 한국
‘아르테미스 프로젝트’ 참여한
미·영·일·캐나다 등 39개국
나라마다 독자적 기술로 기여
2020년대 후반 상주 기지 목표
한국은 2032년 무인착륙선 계획
10번째 ‘아르테미스’ 합류 한국
우주환경 관측장비 제작 맡아
과학계 “핵심적 역할은 아니야”
3D 프린터 건축·우주 인터넷 등
한국 특화 기술로 입지 넓혀야
오는 27일 우주항공청이 경남 사천시에서 문을 연다. 윤석열 대통령의 대선 공약으로 설립되는 우주항공청은 ‘한국판 미국 항공우주국(NASA)’을 표방한다. 지금까지 국내에 없던 우주항공 전문 정부기관이다.
과학계에서는 우주항공청 앞에 만만치 않은 과제가 놓여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국을 포함해 총 39개국이 참여 중인 다국적 달 개척 프로젝트 ‘아르테미스 계획’과 큰 연관성 없이 독자 추진 중인 달 탐사 계획을 다시 들여다봐야 한다는 목소리다. 2032년 무인 착륙선을 달에 쏘겠다는 한국의 계획이 국제 프로젝트와는 동떨어져 ‘외딴섬’처럼 진행되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이 무인 착륙선을 보내려는 2032년에는 아르테미스 계획에 따라 월면에 상주기지가 지어져 우주비행사들이 월면을 걸어다니며 탐사 활동을 벌이는 일이 흔해질 때이다. 이때 한국이 뒤늦게 무인 착륙선을 보내는 데 역량을 쏟는 것이 맞느냐는 지적이다. 과학계는 “우주항공청이 한국만 가진 우월한 기술을 골라 아르테미스 계획 내에서 입지를 넓히는 전략을 시급히 세워야 한다”고 강조한다.
일본은 ‘정밀 착륙’…캐나다는 ‘로봇 팔’
현재 한국은 2017년 시작된 미국 주도의 아르테미스 계획에 가입해 있다. 이 프로젝트를 추진하기 위한 국가 간 협력 체계인 아르테미스 약정에는 지금까지 미국과 영국, 일본 등 총 39개국이 서명했다. 한국은 2021년 10번째로 합류했다.
아르테미스 계획은 돈과 인력이 많이 드는 달 개척을 미국 혼자 감당하기 어려운 현실 때문에 추진됐다. 미국은 1960~1970년대 추진한 달 탐사 프로젝트인 아폴로 계획 때에는모든 기술을 혼자 만들었다. 지금은 그러지 않는다. 다양한 나라와 역할과 비용을 분담한다.파티를 준비하는 과정에 비유한다면 누구는 식기와 장소를 준비하고, 다른 누구는 음식을 가져와 한자리에 모이는 식이다. 이 얘기에는 중요한 의미가 있다. 아르테미스 계획에 참여하겠다고 선언했다면 자국만 보유한 특별한 기술이나 장비가 있어야 다른 가입국의 환영을 받을 수 있다는 뜻이다.
좋은 예가 일본이다. 일본은 월면에서 우주비행사들이 탈 일종의 버스를 개발하고 있다. ‘루나 크루저’라는 이름이 붙은 이 월면차 안에서 우주비행사들은 쾌적한 온도와 기압을 느끼며 우주복을 벗은 채 머무를 수 있다. 낮과 밤 온도 차가 200도가 넘고, 공기가 없는 달 환경을 차단할 수 있는 폐쇄적인 장갑차 형태다.
과거 등장했던 모든 월면차는 달 환경에 우주비행사가 그대로 노출되는 ‘오픈카’였다. 이 때문에 둔하고 불편한 우주복을 꼭 입어야 했다. 그런 번거로움을 없앨 수 있게 된 것이다.일본은 다른 분야에서도 가시적인 성과를 이미 냈다. 지난 1월 달을 향해 무인 착륙선 ‘슬림’을 쏴 정밀한 월면 착지를 시연하는 데 성공했다.
지구처럼 지상에 유도장치가 없는 달에서는 착륙선이 목표 지점에서 수㎞ 벗어나 내리는 일이 흔하다. 미래 달 개척 시대에 ‘우주 미아’가 양산되는 일을 막으려면 반드시 해결해야 할 과제다. 슬림은 첨단 장비를 동원해 착륙 예정 지점에서 겨우 55m 떨어져 착륙했다. 캐나다는 ‘로봇 팔’을 통해 아르테미스 계획 내에서 역할을 따냈다. 캐나다는 조만간 달 상공에 건설될 우주정거장 ‘루나 게이트웨이’ 동체에 자신들이 개발한 대형 작업용 로봇 팔을 부착할 계획이다. 로봇 팔이 있으면 사람이 위험한 우주 공간으로 나가지 않아도 루나 게이트웨이 동체를 보수할 수 있다. 루나 게이트웨이에 접근한 우주선을 정비하는 일도 가능하다. 캐나다는 지구 상공 400㎞에 떠 있는 국제우주정거장(ISS)에서 길이 17m짜리 로봇 팔을 운영 중이다. 로봇 팔 기술에서는 미국도 캐나다를 따라잡기 어렵다.
한국은 ‘기여 확실한 기술’ 불분명
한국은 아르테미스 계획에 합류한 이후 우주에서 고에너지 입자를 감지하는 ‘달 우주환경 모니터(LUSEM)’라는 장비를 만들어 지난해 NASA에 보냈다. 올해 안에 로켓에 실려 달로 갈 가능성이 크다. 정확한 용도가 공개되지 않은 관측장비 4기도 추가 개발해 곧 NASA로 보낼 예정이다. 하지만 국내 우주과학계에서는 “이 정도를 두고 아르테미스 계획 내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맡았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반응이 나온다. 몇 가지 관측장비를 제작한 성과가 아르테미스 계획의 성패를 좌우할 수준의 활동은 아니라는 것이다.
현재 한국이 추진 중인 달 개척의 핵심 사업에 대해서는 따끔한 지적이 제기된다. 2032년 월면에 1.8t짜리 무인 착륙선을 보내는 프로젝트 얘기다. 지금까지 한국은 어느 천체에도 무인 착륙선을 보낸 적이 없다. 현실화한다면 괄목할 만한 성과인 것은 맞다.
그런데 한국이 무인 착륙선에 열광할 2032년은 사람을 달에 보내는 것이 핵심인 아르테미스 계획이 성과를 내기 시작할 때이다. NASA는 2026년 아르테미스 3호를 쏴 사람 2명을 월면에 착륙시키고, 이르면 2020년대 후반에 사람이 상시 체류하는 기지를 건설한다는 계획이다. 미국, 그리고 아르테미스 계획 추진에 중요한 기여를 한 국가의 우주비행사들이 월면을 걷는 일이 일상이 됐을 2032년에, 한국은 홀로 무인 탐사에 집중하는 모양새가 되는 셈이다. 유인 탐사는 무인 탐사와 질적으로 다르다. 유인 탐사를 하면 월면에 건물을 짓는 등 다채로운 활동을 할 수 있지만, 무인 탐사로는 못한다. 사람을 대체할 만큼 똑똑한 두뇌와 유연한 몸통을 지닌 무인 착륙선은 아직 없기 때문이다.
우주 인터넷·3D 건축 주목해야
한국의 달 착륙 계획과 관련해 이창진 건국대 항공우주정보시스템공학과 교수는 “다른 국가들이 멀게는 50년 전에 성공한 일을 다시 하는 것인 데다 아르테미스 계획과는 특별한 연관성도 없다”며 “한국만의 장점을 내세울 수 있는 방향으로 국제적인 연계를 추진해야 하는데 그런 철학이 없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한국은 달 무인 착륙 사업에 2033년까지 총 5303억원을 투입할 예정이다.
익명을 요구한 우주 분야 정부출연연구기관 소속의 한 과학자는 “달에 사람이 살기 전에 전자장비나 인체에 영향을 주는 달 먼지 구조를 미리 파악하는 일 등을 하려면 무인 탐사가 선행돼야 하는 것은 맞다”면서도 “탐사 목표가 국제 공동 프로젝트인 아르테미스 계획에 얼마나 부합하는지, 우리가 무인 탐사로 메울 수 있는 아르테미스 계획의 틈새가 무엇인지를 분명히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한국의 달 개척 정책이 이렇게 외딴섬처럼 전개된다면 아르테미스 계획 내에서 한국 역할은 축소될 수밖에 없다. 아르테미스 계획을 통해 귀한 광물자원이 달에서 채굴되는 성과가 나와도 한국에 돌아갈 몫이 적어질 공산이 크다. 달에서는 화성 같은 먼 우주로 가는 로켓 터미널 건설도 추진될 예정인데, 이때 한국의 역할이 있을지도 장담할 수 없다.
국내 우주과학계가 아르테미스 계획에 내놓을 만한 우리만의 특화 기술로 평가하는 것 가운데 하나는 3차원(3D) 프린터를 이용한 건축 기법이다. 달 표면에 깔린 두꺼운 먼지를 재료 삼아 벽돌 같은 건축 자재를 찍어내는 기술이다. 달에 기지를 만들 때 지구에서 무거운 건축 자재를 공수할 필요가 없도록 해준다. 이 때문에 최근 각국의 주요 관심사가 되고 있다.
한국이 2022년 달 궤도선인 다누리로 ‘우주 인터넷’ 기술을 시연했다는 사실을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당시 다누리는 방탄소년단(BTS)의 노래 ‘다이너마이트’ 뮤직비디오를 우주에서 지구로 무선 송출하는 데 성공했다. 대용량 컴퓨터 파일을 끊김없이 우주에서 지구로 보내는 것은 고난도 기술이다. 이 교수는 “달에 상주 기지가 구축되는 상황에서는 통신망을 만들어야 할 텐데 이때 한국의 우주 인터넷 기술을 활용하자고 제안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정호 기자 ru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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