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 무꼬 하자!” 주민 80명 사는 섬에서 열린 첫 영화제

신정선 기자 2024. 5. 19.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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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추도서 ‘제 1회 추도 섬 영화제’
‘제1회 추도 섬 영화제’ 이틀째인 18일 경남 통영시 산양읍 추도의 야외극장에서 영화 ‘3일의 휴가’가 상영되고 있다. 주민과 외지인 80여 명은 마을 언덕에 설치된 극장에서 이날 밤늦게까지 영화 상영을 즐겼다./추도(통영)=신정선 기자

“밥 무꼬 하자, 밥 무꼬!” 누군가의 외침에 객석이 술렁였다. “용이 아부지, 밥 안 잡쒀요?” 찬성하는 목소리가 뒤따랐다. 18일 오후 6시 ‘제1회 추도 섬 영화제’가 열린 경남 통영시 산양읍 추도의 야외 극장에 잔칫상이 차려졌다. 영화를 보러 모였던 관객 80여 명은 마을 부녀회에서 준비한 나물밥을 받아들었다. 추도산 톳과 미역을 넣은 밥을 들고 “마이 무라”는 경상도말, “언제 오셨어요?”라는 서울말이 섞여들었다. 마을 풍물패인 ‘추도9988 풍물단’이 가락을 들려주자 흥을 주체 못한 한 주민이 일어나 덩실덩실 춤을 췄다. 옆자리 주민도 어깨가 들썩였다.

지난 17~19일 통영항에서 남서쪽으로 21㎞쯤 떨어진 추도에서 처음으로 번듯한 영화제가 열렸다. 면적 1.6㎢의 작은 섬 추도의 등록상 주민은 150명. 실제론 80여 명이 산다. 대부분 60·70대다. 편의점이나 카페도 없고, 내비게이션도 통하지 않는 추도의 주민들에게 영화 감상이란 언감생심이었다.

추도 섬 영화제는 4년 전 이곳에 정착한 전수일 감독(경성대 연극영화학부 교수)이 기획했다. 낚시를 좋아해 여러 섬을 다니던 전 감독은 추도의 고요함에 반해 눌러살게 됐다. 그는 “뱃일과 밭일밖에 모르는 주민들에게 함께 영화 보는 기쁨을 알려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박현여(65) 추도 대항마을 이장은 “준비 초기엔 ‘종일 일하느라 피곤한데 니나 영화 봐라’는 주민 분을 설득하느라 애를 먹었다”고 했다. 경남도와 통영시에서 7000만원을 지원받아 정식 영화제가 열리며 온 섬이 들썩였다. 외지 손님을 맞으러 열 곳 안 되는 민박이 일제히 문을 열었다.

영화제 주제는 ‘시와 섬’. 첫날인 17일엔 두 달 전부터 섬에 묵은 감독 3인이 추도를 주제로 만든 영화가 상영됐다. 한국에 여행 온 일본인 마사코의 여정을 담은 ‘섬 그리고 움직임’ 등 3편이다. 둘째 날인 18일 오후 나물밥을 나눠 먹고 화기애애한 관객들 앞에 시 낭송회가 먼저 열렸다. 박성근(67) 영광호 사장은 함께 뱃일 나간 아내가 물에 빠졌던 아찔한 사고를 소재로 한 시를 낭독해 박수를 받았다. ‘다시는 배 안 태우고 싶지만/생계가 걸려서 어쩔 수 없구려/사랑하는 정연씨/남은 인생, 당신에게 돈은 줄 수가 없네요/다만 웃음으로 보답할게요.’ 아내 추정연(65)씨는 “이런 말 평생 처음 들었다”며 객석으로 돌아온 남편을 끌어안았다.

이어 배우 김해숙·신민아가 주연한 영화 ‘3일의 휴가’가 상영됐다. ‘3일의 휴가’의 육상효 감독은 “제가 가본 영화제 중에 제일 아름다운 영화제”라고 말했다. 추도 주민 여명숙씨는 “대한민국이 문화 선진국이라는데, 섬에 살면서 잘 느끼지 못했다”며 “이런 영화제가 생겨서 가슴이 벅차다”고 했다.

19일 오전 ‘섬 영화제를 위한 포럼’에서 오동진 영화평론가는 “베네치아영화제가 실제론 배 타고 들어가는 리도섬에서 열리듯, 추도 섬 영화제도 통영시와 함께 키워나가면 좋겠다”고 했다. 정지영 감독은 “첫 영화제가 이렇게 알찬 경우는 드물다”며 “마을 주민이 모두 어울려 특성화된 영화제로 살려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전 감독은 “장기적으론 여러 섬이 연합한 섬 영화제 네트워크로 발전시키고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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