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여기까지인가..." 박현경, 절망한 순간 떠올린 '긍정의 주문', '매치 퀸'은 그렇게 탄생했다 [춘천 현장인터뷰]
손에 잡힐 듯 다가왔던 우승이 멀어져가는 순간이라고 느꼈다. 박현경(24·한국토지신탁)에게 순간 절망의 그림자가 드리웠다. 그러나 이내 정신을 차렸다. 그리고는 마법 같은 상승세로 결국 첫 '매치 퀸'의 영예를 누렸다.
박현경은 19일 강원도 춘천시 라데나 컨트리클럽(파72)에서 열린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투어 두산 매치플레이(총상금 9억원) 결승전에서 이예원(21·KB금융그룹)을 한 홀 차로 앞서며 정상에 올랐다.
올 시즌 3위만 두 차례를 기록했던 박현경은 지난해 준우승에 머물렀던 이 대회에서 드디어 우승의 기쁨을 누렸다. 우승 상금 2억 2500만원도 손에 넣으며 기쁨은 배가 됐다.
지난해 결승전에서 성유진에게 우승 트로피를 내줬던 박현경은 국내에서 가장 매치플레이에 강한 선수였다. 그럼에도 우승과는 인연이 없었다. 대회 전까지 두산 매치플레이에서 11승 1무 3패로 통산 승률 1위(73.33%)로 출전 선수 중 가장 매치플레이에 강점을 보였던 박현경은 이번 대회에서 7승을 더하며 승률을 81.8%까지 끌어올렸다. 이는 역대로 따져도 박인비(88.89%), 전인지(이상 KB금융그룹·87.5%), 박성현(솔레어·85.71%) 등 미국여자프로골프(LPGA)에서 활약하는 선배들에 이은 전체 4위의 기록이다.
경기 초반부터 질주를 펼쳤다. 1번 홀(파4)에서 세컨드샷을 홀 바로 옆에 붙이며 탭인 버디를 성공시키며 한 홀, 4번 홀(파4)에서 이예원의 샷이 연이어 러프에 빠진 사이 세컨드샷을 그린에 올렸다. 이예원이 홀 포기를 선언하며 2홀을 앞서갔다. 5번 홀(파4)에서도 박현경은 날카로운 아이언샷 감을 뽐내며 1m 위치에 공을 떨군 뒤 버디를 낚아 3홀 차이로 우위를 점했다.
그러나 이후 이예원의 상승세에 흔들렸다. 7번 홀(파3) 승리한 이예원은 12번 홀(파5)에서 손쉽게 버디를 낚아 격차를 좁혔고 13번 홀(파3)에선 박현경이 보기를 범한 반면 타수를 지켜내 결국 승부를 원점으로 돌려냈다.
박현경은 "초반 3UP을 했을 때에도 다른 선수가 아닌 이예원 선수라는 생각에 언제 잡힐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후반에 제가 자꾸 실수를 해서 (흐름을) 내준 게 아쉬웠다. 정말 긴장을 많이 하고 있구나라고 느낀 게 꼭 넣어야 하는 거리에서 자꾸 실수가 나왔다"며 "16번 홀 버디 퍼트가 빠지고 17번 홀 티샷을 하러 걸어가는데 '나는 여기까지 인가'라는 생각이 한 번 들었다가 '아직 끝난 게 아니다. 긍정적 자세가 좋은 결과를 가져오니 끝까지 해보자'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긍정의 주문은 놀라운 결과를 만들어냈다. 17번 홀(파4)에서 송곳 같은 아이언샷이 홀 근처에 안착했고 버디 퍼트로 다시 동률을 이뤘다. 운명의 18번 홀(파5)에선 티샷이 러프로 향했으나 세컨드샷을 잘 쳐놓은 뒤 구사한 웨지샷이 홀 2m 안쪽 퍼트 기회로 연결됐다. 갤러리들 사이에서 환호성이 터져나왔다.
물론 끝날 때까지 끝난 건 아니었다. 이예원도 3m 버디 기회를 만들었다. 박현경은 "심장이 터질 것 같다는 게 이런 느낌이구나라고 느꼈다"며 "이예원 선수가 그런 거리 퍼팅을 잘하는 선수이고 90%는 넣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아버지도 늘 말씀하시지만 이예원 선수가 그런 기회 왔을 때 늘 넣는다는 생각으로 대기하라고 하셨고 그렇게 준비했다"고 말했다.
진정한 '매치 퀸'의 탄생이다. 앞서 매치플레이에 강한 줄 모르겠다던 박현경은 "이제는 (매치플레이에 강하다고) 자신 있게 얘기할 수 있을 것 같다. 스트로크 플레이처럼 생각했다. 매치플레이가 상대에 맞춰서 플레이하는 경우가 많은데 오히려 이 또한 스트로크 플레이라는 생각으로 좋은 스코어를 내자는 생각하고 하니 자연스럽게 승수가 많이 쌓였다"고 설명했다.
물론 마음가짐만으로 우승을 차지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이번 대회 유독 날카로운 샷이 홀 주변으로 붙는 경우가 많았다. 박현경은 "우승의 원동력이라면 핀에 잘 붙은 아이언과 웨지샷이었다. 생각한대로 붙었고 찬스를 잘 만들어서 흐름을 가져오며 승리를 많이 챙길 수 있었다"며 "아버지가 잘 칭찬을 안 해주시는데 이번 대회엔 샷이 정말 너무 좋다고 인정해주셨고 자신감이 올라와서 그런지 끝까지 잘 마무리할 수 있었다"고 털어놨다.
체력적인 부분도 빼놓을 수 없다. 이날은 오전 8시에 4강전을 시작해 1시간 가까이를 쉰 뒤 오후 1시 30분부터 다시 결승 무대에 나섰다. 체력적으로 부칠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시즌을 잘 준비한 박현경에겐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매치플레이를 위해서 정말 체력훈련을 열심히 했구나라는 생각이 많이 든 하루였다. 주 6회씩 체력훈련하고 스쿼트도 하면서 전지훈련에서 흘린 땀이 오늘 빛을 본 것 같다"고 밝혔다.
시즌 초반 꾸준한 성적을 냈음에도 우승과는 인연이 없었던 박현경은 "챔피언조에서 두 번이나 플레이했고 기회를 잡을 수 있던 상황에서 놓쳤다"면서도 "생각보다는 좋은 스타트를 했고 전지훈련 6주 동안 일요일까지 단 하루도 쉬지 않고 훈련하고 분석했다. 우승 못하고 있을 때에도 흘린 땀과 들인 시간은 절대 헛되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다. 그래서 오늘의 내가 있었다"고 말했다.
이번 대회 우승으로 시즌 누적 상금 4억 8523만 1799원을 기록한 박현경은 이예원(4억 6463만 3038원)을 제치고 이 부문 1위로 올라섰다. 더불어 목표 중 하나인 대상 수상을 위한 레이스에서도 204점으로 이예원(179점)을 따돌리며 1위가 됐다. 특히나 대상에 대한 욕심이 컸다. "투어 6년차인데 대상이라는 타이틀은 항상 욕심이 났고 선수 생활이 끝나기 전에 꼭 받아봤으면 싶었다"며 "우승을 많이 하는 선수는 아니지만 꾸준히 칠 수 있는 선수이기에 더욱 탐이 났다. 누구보다 톱10에 많이 진입할 자신이 생기고 있다. 꾸준한 선수에게 주는 상이라고 생각한다. 올해도 그 목표를 향해가고 있다"고 자신감을 내비쳤다.
앞서 언급한 목표가 국내대회에 한정된 것이라면 더 큰 도전에도 나서게 됐다. 오는 31일부터 미국 펜실베니아주 랭커스터 컨트리 클럽에서 열리는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메이저대회 US여자오픈에 출전한다. 고교 시절이었던 6년 전에 이어 개인 두 번째 출전이다.
박현경은 "US오픈 참가를 확정한 건 전지훈련 때였다. 꼭 참가해서 나의 한계에 도전해봐야겠다고 생각했다"며 "고3 때는 첫 출전에 예선통과를 목표로 했다. 6년 만에 나서는 저는 예선통과가 아닌 조금 더 높은 곳을 바라보려는 마음으로 준비를 열심히 했다. 출국 전 좋은 에너지 받고 나가게 돼 더욱 더 기대가 된다"고 전했다.
"5월을 정말 좋아한다. 첫 우승날이 5월 17일이었는데 5번 우승 중 5월 우승이 3번이다. 가장 좋아하는 달에 또 해서 기분이 좋다"고 밝힌 박현경이다. 5월의 끝자락에 시작되는 US오픈에 대한 기대감도 부푼다.
춘천=안호근 기자 oranc317@mtstar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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