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시혁의 시스템은 작동 중인가 [한겨레 프리즘]

이정국 기자 2024. 5. 19. 1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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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희진 어도어 대표(오른쪽)와 방시혁 하이브 이사회 의장(오른쪽). 연합뉴스, 하이브 제공

이정국 | 문화팀장

온 국민이 엔터테인먼트산업에 관심을 갖는 세상이다. 지난달 22일 국내 최대 엔터테인먼트기업 하이브가 그룹 뉴진스가 소속된 산하 레이블(자회사) 어도어 민희진 대표에 대한 감사에 착수했을 때만 해도 대중은 레이블이라는 개념조차 낯설어했다.

한달 가까이 지난 지금도 매일 아침마다 ‘가요계’ ‘투자업계’로 표현되는 출처 불명 취재원발 ‘단독’ 기사들이 쏟아져 나온다. 주주 간 계약서 등 당사자가 아니고서는 알 수 없는 민감한 내용들이 앞뒤 맥락이 잘린 채, 어느 한쪽에 유리한 내용으로 편집돼 기사화된다. 애초 문제의 발단은 민 대표가 경영권을 침탈할 계획을 세웠으며, 실제 회사에 손해를 끼쳤다는 배임 혐의였지만 이제는 이 내용 자체보단 선정적 이슈에 대한 기사들이 더 많이 보인다.

민 대표의 해임안이 상정될 어도어 임시주주총회를 약 보름 앞둔 지난 17일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주주 의결권 금지 가처분 심문기일도 비슷했다. 하이브를 대리하는 김앤장법률사무소는 ‘민 대표가 뉴진스 멤버를 가스라이팅 했다’ ‘무속인에게 조언을 들어 경영을 했다’는 등 자극적인 내용이 담긴 주장을 펼쳤다. 이 과정에서 이미 세상을 떠난 민 대표의 가족까지 끌어들여 보는 이의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감사에 착수했을 당시 민 대표 등이 국외 국부펀드 등을 동원해 회사를 탈취하려고 했다는 사건의 핵심 의혹에 대한 추가 증빙 자료는 나오지 않았다.

역시 민 대표를 대리하는 법무법인 세종 쪽도 하이브가 음반 밀어내기를 제안했다는 사안의 핵심을 비켜 간 주장을 펼쳤다. 또 방시혁 하이브 의장이 뉴진스 멤버들의 인사를 받지 않았다는 등 여론 감정에 호소하는 모습을 보였다.

위에 거론된 것들이 이번 사태에서 무시할 수 없는 사안이기는 하나 민 대표의 해임이 정당하거나 또는 부당하다는 핵심 법률 근거가 되긴 어려워 보인다. 특히 무속인 언급이 이어지자 재판부가 “법률적인 이야기만 하겠다”며 제지했다고 하니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런 이전투구 상황에서 애꿎은 피해를 보고 있는 건 소속 가수들이다. 미성년자가 많은 아이돌 특성상 더욱더 세심한 관심이 필요하다. 하지만 하이브나 민 대표가 아이들을 제대로 보호하고 있는지 의문이 앞선다. 하이브는 법원에서 민 대표가 ‘뉴진스 멤버들을 보살피는 게 역겹다’는 내용의 메시지를 지인에게 보냈다고 주장했다. 최근에는 민 대표가 뉴진스를 표절했다고 지목해 순식간에 표절 그룹으로 낙인찍힌 아일릿의 멤버가 라이브 방송을 하면서 달리는 악플을 굳은 표정으로 신고하는 듯한 화면이 송출돼 논란이 일었다. 뉴진스를 보호하겠다면서 멤버들이 상처를 받을 내용을 그대로 공개하고, 악플이 달릴 게 뻔한 상황에서 라이브 방송을 시키는 것이 과연 옳은 것일까.

더욱 황당한 것은 심문기일 날 저녁 한 연예 전문 유튜버가 민 대표의 개인 카카오톡으로 추정되는 메시지 내용을 공개했다는 점이다. 민 대표가 뉴진스 멤버들에 대한 신체적 험담, 사내 여직원에 대해 젠더 갈등을 유발하는 발언을 했다는 것인데, 사적인 대화를 어떻게 개인 유튜버가 입수하고 공개하게 됐는지 의문이다.

하이브는 지난 15일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대기업집단 지정을 받았다. 방시혁 의장은 총수 주식 재산 6위(2조5447억원)로 최태원 에스케이(SK)그룹 회장(2조1152억원), 구광모 엘지(LG)그룹 회장(2조202억원)보다 앞섰다. 대기업집단이 됐다는 것은 성장 단계를 지나 확고하게 자리를 잡은 기업으로서 그 사회적 책임을 다하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방 의장은 법원에 보낸 탄원서에서 “(한 사람의) 악행이 사회 질서를 망가뜨리지 않도록 하는 게 사회 시스템의 저력이라 생각한다”고 밝혔다. 방 의장이 말한 시스템에는 아이들에 대한 보호 방안도 포함돼 있을 것이다. 지금 방 의장의 시스템은 작동하고 있는 것일까. 어른들의 싸움에 더는 아이들이 다치지 않도록 ‘대기업’에 걸맞은 책임감과 품격을 보여줘야 한다.

jg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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