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시론]건강한 AI 생태계를 만들기 위하여
지난달 시장조사기관 옴디아는 2023년 매출액 기준 세계 반도체 업체 순위를 발표했다. 그동안 줄곧 1~2위를 놓치지 않던 삼성전자가 22년 만에 3위로 추락했고 2022년 8위였던 엔비디아가 1년 만에 2위로 급부상했다. 인공지능(AI) 구동에 필수적인 그래픽처리장치(GPU) 분야 세계 1위 업체인 엔비디아의 매출이 전년 대비 두 배 넘게(133.6%) 급증했기 때문이다.
지금 AI 시장은 연구개발(R&D) 자금과 인력을 블랙홀처럼 흡수하고 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오픈AI에 현재까지 130억 달러(약 18조 원)를 투자했고, 아마존과 구글은 오픈AI의 대항마로 꼽히는 엔트로픽에 각각 최대 40억 달러(약 5조5000억원)와 20억 달러(약 2조7000억원)를 투자할 예정이다. 인재 영입 경쟁도 치열한데 글로벌 빅테크인 메타와 아마존, 구글은 AI 전문 인력들에게 수십억 원 이상의 연봉을 제시하고 있다.
이처럼 세계가 AI에 주목하는 이유는 AI의 잠재력과 확장성 때문이다. AI가 생산, 개발, 판매 등 산업 전반에 적용되면 자동화와 지능화로 인해 시간과 비용이 절감되고, 데이터 기반의 새로운 비즈니스와 부가가치 창출도 가능하다. 시장조사기관 블룸버그 인텔리전스는 생성형 AI 시장이 연평균 40% 이상 고속 성장해 2022년 400억 달러에서 2032년 1조 3,000억 달러까지 커질 것으로 전망했다.
그러나 AI 산업의 성장과 함께 AI로 인한 부작용도 대비해야 한다. 거짓 정보를 사실인 것처럼 생성하는 할루시네이션(Hallucination)은 그중 하나이다. AI를 학습시키고 성능을 개선하는 데 필요한 데이터의 축적, 활용 과정에서 저작권 침해나 개인정보 유출도 우려된다. 특정 국가가 AI 시장을 독점하면 기술 종속에 따른 국가 안보가 위험해지고 데이터 주권 문제도 발생할 수 있다.
이러한 부작용에 대응하기 위해 미국은 지난해 10월 투명하고 안전하며 신뢰할 수 있는 AI 개발을 위한 행정명령을 마련했고 올해 초에는 기업, 학계, 시민단체가 모인 AI 안전 컨소시엄을 구성했다. 유럽 의회는 지난 3월 세계 최초로 AI의 위험을 관리하고 통제하는 인공지능 기본법을 통과시켰다. 일본 역시 총무성, 경제산업성, 문부과학성이 참여하는 AI 정책 컨트롤 타워를 만들고, AI 사업자들이 준수해야 할 지침을 제정하고 있다.
미국 스탠퍼드대 인간중심 AI 연구소(HAI)의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AI 특허 수 경쟁력이 세계 1위다. 2022년 기준 인구 10만 명당 AI 특허 수가 10.26으로 미국의 4.23보다 앞선다. 소프트웨어정책연구소는 우리나라 기술 수준을 미국 대비 약 89% 정도로 파악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지난해 개발한 AI 모델이 없고, AI 인재는 해외로 유출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산업 현장에서의 AI 활용 또한 저조하다. 개발된 AI가 성공적으로 부가가치를 만들거나 매출로 연결되지 못하고 있다. 이에 우리 정부는 2022년 '산업 디지털 전환 촉진법'을 만들어 산업에 AI를 활용하기 위해 노력해 왔다. 정부는 건강한 AI 산업 생태계를 만들기 위해 다음과 같은 역할에 충실해야 할 것이다.
첫째로 AI 인재 양성이다. AI 인재 확보는 AI 개발 기업은 물론 AI를 활용하는 기업에도 최우선 과제가 됐다. 많은 전문가는 AI 시대가 지연될 수 있는 요인으로 인재 부족을 꼽을 정도이다. AI를 잘 이해하면서, 동시에 산업 현장에 적용할 줄 아는 인재를 키워야 한다. 지난해 한국산업기술진흥원(KIAT)은 KAIST, 한국공학대학교와 함께 120명의 AI 전문 인재를 배출했는데 앞으로 더 적극적인 인재 양성이 필요하다.
둘째는 AI 산업 데이터 활용 관리다. AI를 활용하려면 산업 생산 과정에서 발생하는 데이터를 축적하고 개방해 유기적으로 연결하는 등 통합적인 데이터 관리가 필요하다. KIAT는 기업 간 산업 데이터 활용에 필요한 가이드라인을 수립하고, 기업 연합체인 산업 AI 얼라이언스를 구성했다. 또 지난달 독일의 플랫폼 인더스트리(PI) 4.0과 공동선언문을 채택했다. PI4.0은 독일에서 제조업 디지털 전환을 주도하는 민관 연합체로 향후 글로벌 산업 데이터 생태계를 구성하는 데 있어서 제조업 강국인 두 국가가 주도적 역할을 하는 데 기여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AI 산업 정책 지원이다. 시장이 초기 단계일 때 정부와 국회가 법적 가이드라인과 기술 표준을 선제적으로 정비해주면 기업이 더 활발하게 움직일 수 있다. AI는 데이터 및 컴퓨팅 인프라가 필수적이므로 초기 단계서부터 대규모 자본이 필요하다는 특징을 지니며 개발된 AI의 성능 못지않게 신뢰성과 안전성을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다. 따라서 규제 혁신, 표준 정비, 투자 및 관련 법 제정 등 다양한 정책 지원이 종합적으로 이뤄져야 한다.
지난 8일 산업통상자원부가 민관 공동 'AI 정책위원회'를 발족시키고 AI 시대에 적합한 산업 정책을 만들겠다고 선언한 것은 산업 및 에너지 연구개발(R&D) 패러다임을 AI 중심으로 바꾸는 일대 전환점이 될 것이다. AI 정책위원회는 앞으로 정책 과제를 발굴하고 산업 분야별 AI 활용 전략을 구체화하며 '산업 인공지능 활용 지원에 관한 법률'도 마련할 예정이다.
현재 세계 주요 국가들은 자국 이익에 부합하는 방향으로 AI 규범을 제정하는 등 글로벌 AI 주도권 잡기에 여념이 없다. 우리나라도 AI 반도체, 거대언어모델(LLM), AI 안정성 연구 등을 서두를 때다.
AI는 도전하기 어려운 분야이고 실패할 확률도 높다. 범용 AI든 산업 특화 AI든 성공 확률을 높이려면 정부가 인프라와 인재를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민간 투자를 유도해야 한다. 범국가적 지원 없이는 AI 산업에 대한 기업의 도전적 R&D도, 기업-학계-연구소 간 융합형 R&D도 성공하기 어렵다.
우리나라는 저출생 고령화라는 인구구조로 인해 경제활동 위기에 처해 있다. AI 기반으로 산업 구조를 전환한다면 낮은 잠재 성장률을 반등시킬 기회를 만들 수 있다. 실제로 정부는 우리 경제에 AI를 성공적으로 도입한다면 GDP 연간 성장률이 1.8%p 추가 성장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한다. AI가 불붙인 글로벌 기술 패권 경쟁에서 앞서나갈 수 있도록 산학연관은 한 팀이 되어 긴밀히 소통하고 협력해야 할 것이다.
〈필자〉 전문 과학기술인으로 시작해 국회의원, 기관장으로 선임된 인사다. 전문성을 바탕으로 정치·정책 분야까지 확장했다. 1959년생으로, 이화여대 물리학과를 졸업했다. 일본 규슈대에서 핵물리학 박사 학위를 받았고, 일본원자력연구소에서 근무하다 1991년 한국원자력연구소 최초의 여성 유치 과학자로 입소했다. 이후 20년간 국내 원자력 산업 발전에 기여했다.19대 국회의원으로 활동했고, 대한여성과학기술인회 회장과 한국원자력학회장도 역임했다. 2022년 9월부터 KIAT 원장으로 재직하고 있다. 윤석열 정부의 민간 주도 성장 전략을 뒷받침할 정책을 지원하고 있다.
민병주 한국산업기술진흥원(KIAT) 원장 bjmin@kiat.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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