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명이 힘든 기적" '완도 출신' 최경주, 섬 고립 극복..두차례 연장 끝 54번째 생일날 최고령 우승 감격

정현석 2024. 5. 19. 1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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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번홀 아일랜드홀에서 캐디 엔젤 몽고지와 포즈를 취한 최경주.
최경주 2번홀 파퍼팅 성공후 갤러리에게 인사

[서귀포=스포츠조선 정현석 기자]2024년 5월19일. 1970년 생 최경주의 54번째 생일이었다.

SK텔레콤오픈 2라운드에서 선두에 오른 그는 생일을 묻는 질문에 "이번주로 알고 있다"고 웃으며 "5월 19일, 519를 기억해줬으면 한다"며 또 한번 파안대소 했다.

그의 생일은 바로 대회 파이널 4라운드가 펼쳐지는 날. 우승에 대한 염원을 담은 농담이었다.

말의 힘은 무서웠다. 생일 날 우승 축하연. 이틀 뒤, 현실이 됐다.

최경주가 드라마 같은 우승으로 한국프로골프(KPGA) 투어 최고령 우승의 금자탑을 쌓았다.

최경주는 19일 제주도 서귀포시 핀크스 골프클럽 동·서 코스(파71)에서 열린 SK텔레콤 오픈(총상금 13억원) 최종 4라운드에서 버디 2개와 보기 5개로 3타를 잃어 최종합계 3언더파 281타를 기록했다. 전날 3라운드 최경주와 함께 챔피언조에서 플레이 했던 박상현이 이날 2조 앞에서 보기 없이 버디만 4개로 4타를 줄이며 맹추격, 전날까지 7타 차로 뒤지던 최경주를 따라잡으며 연장전을 성사시켰다.

448m로 긴 전장의 18번 홀에서 서든데스로 진행된 첫 연장 승부는 극적이었다.

최경주가 5번 우드로 친 세컨드샷이 그린 앞 실개천 형태의 해저드 구역 내 섬 같은 러프 지역에 떨어졌다. 폭이 2m도 안되는 좁은 구역. 물에 빠지지 않은 것 자체가 기적이었다.

"처음에 물에 빠진 줄 알았다. 갤러리 함성을 듣고 상황을 파악했다. 하느님께서 주신 기회라고 생각했다. 손으로 놓아도 나오기 힘든 라이였다"고 말한 최경주에게 희망이 살아나는 순간. 포기하지 않지 않은 의지의 힘은 무서웠다. 스핀이 없는 기술적 어프로치 샷으로 홀 컵 1m 이내에 붙이면서 파 세이브에 성공했다.
최경주 기자회견
박상현 1번홀 드라이버 티샷

세컨드샷을 그린에 올린 박상현도 파세이브로 두번째 연장전이 성사됐다.

핀 위치를 중앙으로 옮겨 치러진 두번째 연장의 세컨드샷은 정 반대상황이 연출됐다.

먼저 친 최경주의 아이언샷은 그린 오른쪽으로 올라간 반면, 박상현의 샷은 짧아 그린 앞 러프에 떨어졌다.

박상현의 어프로치 샷이 홀을 지나쳐 3m 거리까지 굴러갔다. 최경주는 롱퍼트를 1m 이내로 붙였다.

박상현의 파 퍼팅은 홀을 지나쳤다. 먼저 보기로 홀아웃 했다. 최경주는 차분하게 우승퍼트를 홀에 떨구며 양 팔을 벌려 환호했다. 끝까지 경쟁을 펼친 박상현과 한동안 악수를 나누며 포옹한 뒤 후배들의 물세례를 받으며 최고령 우승의 기쁨을 만끽했다.

2번홀 그린 퍼팅 라인을 살피는 최경주.

이날 우승으로 최경주는 각종 기록을 세웠다.

지난 2012년 10월 'CJ인비테이셔널' 우승 이후 11년7개월 만의 KPGA 17번째 우승. 54번째 생일인 19일 우승으로 KPGA 역대 최고령 우승자에 이름을 올렸다. 이전까지 역대 최고령 우승자는 2005년 'KT&G 매경오픈'에서 50세 4개월 25일의 나이에 우승한 최상호였다. 그 때 이후 KPGA투어에서는 50대 우승자가 없었다. 최경주가 무려 19년 만에 50대 우승자로 이름을 올렸다.

이날 우승으로 최경주는 KPGA 17승, 해외투어 12승으로 국내외 투어 통산 30승(2021년 9월 PGA 챔피언스투어 '퓨어 인슈어런스 챔피언십' 우승 포함)을 달성했다.

자신의 골프 인생에서 역사를 함께 한 SK텔레콤 오픈에서는 2008년 이후 16년 만에 대회 최다인 4번째 우승을 기록하게 됐다. 핀크스GC에서 개최된 이후 우승은 처음이자, 제주도에서 우승을 한 것도 이번이 처음이다. 이전 'SK텔레콤 오픈' 최고령 우승자는 2000년 박남신으로 41세 1개월 14일이었다.

3라운드까지 5타 앞선 선두였던 최경주는 "내 경우는 컨디션 회복이 우선이다. 오늘도 시차 때문에 새벽 5시에 일어난 다음 잠을 못 잤다. 2주 연속 경기력이 괜찮지만 회복력이 예전보다 빠르지 않다"며 체력이 관건임을 강조했다.
최경주 7번홀 드라이버 티샷
최경주 1번홀 벙커샷

실제 시차 문제 등 체력저하 속에 임한 마지막 날 최종전은 자신과의 싸움이었다.

5타 차 선두로 마지막 조에서 출발한 최경주는 4번홀(파5)와 7번홀(파4)에서 잇달아 보기를 범하며 위기를 맞았다. 하지만 9번 홀(파5)에서 약 3m 내리막 퍼트를 성공시키며 1언더파로 전반을 마쳤다. 기세를 몰아 11번 홀(파4)에서 버디를 잡으며 이븐파로 올라섰다.

하지만 체력 저하 속 위기가 찾아왔다. 파4홀인 12번, 13번 홀에서 잇달아 보기를 범했다.

"17번홀부터 허리통증이 있었다"던 최경주는 파4홀인 18번 홀에서 세컨드샷을 벙커에 빠뜨렸다. 벙커샷이 길어 파 세이브에 실패하고 말았다.

먼저 경기를 마치고 기다리던 박상현은 결국 7타 차를 극복하고 동타를 이루며 연장승부에 돌입했다. 허리통증과 긴 전장의 연장홀, 위기상황까지 최악의 상황들을 포기 없이 극복하고 KPGA 역사상 위대한 족적을 남긴 최경주. 감격스러운 장면에 그도 울컥했다.

최경주는 "기대하지 않았던 대회 4승이 감격스럽다"고 소감을 발혔다. 이어 "SK텔레콤 대회 40주년에, 제 생일에 4승이라니, 이럴 수가 없는데…"라며 말을 잇지 못한 뒤 "끝까지 최선을 다했고, 많은 팬들의 성원 속에 힘주신 기도와 성원에 감사하고, 앞으로 더 열심히 하는 선수가 되겠다"고 다짐했다.

포기하지 않는 인간의 강인한 의지 앞에 물리적 나이는 그저 숫자에 불과했다.

서귀포=정현석 기자 hschung@sportschosun.com

사진제공=KPG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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