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열린 ‘잠 퍼자기 대회’…탑3 연령대와 직업은
최고 기온 27도를 기록한 18일 오후. 서울 여의도 한강공원 녹음수광장에 거대한 인형 탈이나 한복 등 특이한 옷 차림을 하거나, 며칠 잠을 못 자 피곤이 가득한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올해 처음 열린 ‘한강 잠 퍼자기 대회’에 참여하기 위해서다.
직장 생활이나 공부 등으로 지친 현대인들을 위해 마련된 잠 퍼자기 대회. 서울시는 “잠 퍼자기 대회 접수 4시간 만에 모집 정원(100명)이 가득 찼다”고 했다. 참가자의 80%가 2030대였다고 한다.
한 외국인 참가자는 “이 대회에 참가하기 위해 영국에서 왔다”고 했고, 어느 참가자는 “푹 자기 위해서 어젯밤부터 한숨도 안 자고 왔다”고 말하며 전의를 불태웠다. 이 참가자는 연신 하품을 하며 잠을 잘 준비가 돼있었다.
◇가만히 ‘잠 들도록’ 내버려 두지 않는다
이 대회에 본지 기자도 참가했다. 현장에 도착해 오른쪽 팔에 암밴드(arm band)형 심박 측정기를 붙였다. 이 측정기가 대회 우승의 기준이 된다. 기본 심박수와 평균 심박수 간 변동 폭이 가장 큰 참가자가 우승자가 된다. 서울시는 “잠에 깊게 들수록 심박수가 낮게 떨어지기 때문”이라며 시상 기준을 설명했다.
30분 간 잠에 쉽게 들도록 요가 스트레칭을 한 뒤, “안녕히 주무세요”를 외쳤다. 대회의 시작이다. 1시간 30분의 ‘잠 전쟁’이 펼쳐졌다. 참가자들은 숙면을 위해 각자 안대나 인형, 목 베게, 선글라스 등 ‘필수 템’을 갖고 전장에 나섰다.
그런데 가만히 내버려 두지 않는다. 30분에 한 번 미션이 있다. 이 미션에서 실패해 잠에서 깨버리면 실격이다. 미션은 크게 3가지. 첫 번째 미션은 깃털로 자는 사람 얼굴을 간지럽히는 것, 두 번째는 귓속말로 ‘축하드립니다. 우승하셨습니다’라고 하는 것, 세 번째는 모기 소리와 코골이 소리를 트는 것이다. 사회자는 “이런 방해에도 편안하게 잠을 자야 진정한 우승자”라고 했다.
침대 역할을 하는 에어 소파도 불편했다. 바람이 계속 빠지는 경우도 있었고, 편안하게 눕기도 쉽지 않았다. 균형이 조금만 안 맞아도 바닥으로 나뒹군다. 하지만 솔솔 불어오는 한강의 강풍(江風)과 적절히 따듯한 기온은 잠을 자기에 안성맞춤이었다.
◇수상자 모두 20대 대학생·프리랜서 직장인… “따듯한 날씨 덕에 더 깊게 잠 들어”
1시간 30분이 어느새 지나고 대회가 끝났다. 수상자는 총 4명. 가장 깊게 잠든(심박수 변동 폭이 가장 큰) 3명과 베스트 드레서 분야 1명이다. 참가자의 80%가 2030대였던 사실을 각인시키기라도 한 듯 수상자 4명 모두 20대였다.
베스트 드레서 분야에는 한복을 입고 참가한 백가은(22)씨가 선정됐다. 대회를 지켜 본 관람객들의 선택을 받은 것이다. 대구 서구에서 왔다는 백씨는 “평소 사람들이 고운 한복을 입지 않아 아쉬웠다”며 “직접 한복을 사서 이 대회에 왔다”고 말했다. 백씨는 “상을 받은 기념으로 이 한복을 입고 서울 구경을 다닐 것”이라고 했다.
우승자는 1등부터 양서희(23)씨, 강하윤(29)씨, 김주완(29)씨가 선정됐다. 경기 용인에 사는 양씨는 평소 대학(한국외대) 통학을 위해 버스를 탄다고 했다. 양씨는 “버스만 타면 깊게 잠드는 편”이라며 “버스에서 졸고 있다는 생각으로 일종의 마인드 컨트롤을 했더니 깊게 잠들 수 있었다”고 말했다. 숙면을 위해 갖고 온 ‘잠만보(포켓몬 캐릭터)’ 인형도 도움이 됐다고 한다.
양씨는 “한강이라는 낭만적인 공간에서 편안하게 잠을 잘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줘서 감사하다”며 “이런 시간을 명분으로 잠을 잘 수 있는 기회가 더 주어졌으면 좋겠다”고 했다.
2등을 한 강하윤씨는 인테리어 프리랜서로, 평소 별명이 ‘또자’일 만큼 잠이 많다고 한다. 강씨는 “날씨가 좋아서 깊게 잠들 수 있었던 것 같다”며 “2등이라는 아쉬움을 뒤로 하고, 내년에는 1등을 목표로 재도전할 것”이라고 했다.
3등 김주완씨는 유튜브 영상 편집자로, 전날 밤에도 편집을 하다 새벽 4시 30분에 잠 들어 2시간 정도 밖에 잠을 못 잤다고 했다. 김씨는 “받은 상품(백화점 상품권 15만원)은 같이 일을 도와주는 동료들에게 쓸 것”이라고 했다.
이날 시상을 위해 온 주용태 서울시 미래한강본부장은 “처음 열린 대회인데도 이렇게 많은 이들의 관심을 받을 줄 몰랐다”면서 “앞으로도 수면이 부족한 현대인을 위한 잠 퍼자기 대회를 확대해나가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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