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쟁은 “맞다이로 들어와”야 한다 [한승훈 칼럼]

한겨레 2024. 5. 19. 1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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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희진 어도어 대표가 지난달 25일 오후 서울 서초구 한국컨퍼런스센터에서 열린 입장 발표 기자회견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한승훈 |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종교학)

처음에는 연예기획사 내부의 분쟁이었다. 이제는 하나의 사회현상이 되었다. 전환점이 된 것은 민희진 어도어 대표의 기자회견이었다. 그 자체로 하나의 퍼포먼스였던 장시간의 발언 속에서 그는 자신에게 쏟아진 공세를 정면으로 돌파하며 불리했던 여론전에서 반격의 계기를 마련하는 동시에 한국 사회에 다양한 화젯거리를 던졌다. 그 장면들 속에는 한국 종교를 연구하는 종교학자에게 인상적인 대목도 적지 않았다.

하이브는 민 대표가 무속인의 코치를 받으며 회사를 경영해왔다는 이른바 ‘무속경영’ 논란을 제기했다. 민 대표가 인사, 채용, 경영권 장악 시도 등의 과정에서 무속인의 사주를 따랐다는 것이다. 심지어 굿을 해서 방탄소년단 멤버들을 군대에 보내려 했다는 주장도 있었다. 이런 의혹들이 사실인지, 법적으로 어떤 의미가 있는지는 여기에서 다룰 문제가 아니다. 그러나 지난 국정농단 사태 이후, 누군가를 무속인, 혹은 무속적인 무언가와 연계되어 있다고 폭로하는 것이 어느새 우리에게 익숙한 비난의 양식이 되었다는 것은 분명하다.

주로 정치 영역에서 제기됐던 무속 논란들과 이번 무속경영 의혹 사이에는 중대한 대조점이 있다. 무속인과의 연루설이 제기된 인사들은 일반적으로 그 사실을 부인해왔다. 의사 결정에 있어서 어딘가 수상한 종교인의 조언을 따랐다는 것은 증거가 남기 어려우며, 그 자체로는 불법도 아니다. 그러므로 이런 논란은 그저 소문의 형태로 퍼져나갈 뿐이지만, 여론의 장 속에서 끈질기게 지속되며 해당 인물의 위신에 영구적인 손상을 입힐 수 있었다. 그러나 민 대표의 경우는 자신에게 제기된 의혹을 ‘쿨하게’ 인정하는 방식을 택했고, 그 결과는 매우 효과적이었다.

이 문제에 대한 민 대표의 발언은 여러모로 파격적이었다. “무속인인 사람은 지인으로 두면 안 돼요?”라거나 “무속인이 무슨 불가촉천민이야?”와 같은 언급은 무속인 연루 의혹의 근간을 뒤흔드는 지적이다. 자신의 문제에 대해 불교 승려, 천주교 사제, 개신교 목회자와 같은 전문 종교인과 상담했다는 사실은 비난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 그러나 무당이나 역술가의 조언을 듣는다는 것은 적어도 공표될 이야기는 아니라고 여긴다. 제도화된 주요 종교들과 제도화되지 않은 민속 종교 사이의 이 보이지 않는 위계는 ‘종교’와 ‘미신’의 이분법이 도입된 근대 이래로 한국 문화 속에 단단히 뿌리내려 있다.

흥미로운 대목은 민 대표가 이른바 굿 논란에 대해 반격하는 방식이다. “그 사람들이 더 주술 보러 다닐 거예요. 그 사람들이 굿을 하니까 저한테 몰아붙이는 걸 거예요. 자기들이 하니까. 원래 자기가 안 하면 그런 생각을 안 해요.” 이것은 자신에게 제기된 주술 혐의를 같은 방법으로 되돌려주는 전술이다. 주술적 세계관을 가지고 있는 자들만이 상대에게 주술 혐의를 제기할 수 있다는 논리다.

이런 대응이 유효했다는 것은 이후 온라인 커뮤니티들에서 자생적으로 유포된 하이브의 단월드 연루설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것은 하이브가 ‘뇌 호흡’ 수행법으로 유명한 기(氣) 수련단체인 단월드와 관련되어 있다는 음모론이다. 하이브 소속 연예인들에게 일상적으로 단월드식 명상을 시키고 있다거나, 그들을 단월드 소유의 사이버대학교에 단체로 입학시켰다거나, 하이브라는 이름이 단월드를 암시하고 있다는 등의 내용이다. 나아가 민 대표가 이런 사실을 ‘저격’하기 위해서 뉴진스의 뮤직비디오 속에 하이브와 단월드의 연관을 암시하는 비밀스러운 코드를 숨겨두었다는 주장까지 퍼지고 있다.

사실 여부와는 별개로, 이런 의혹들의 근저에는 수련단체의 종교성에 대한 대중적 의심이 깔려 있다. 20세기 후반 이후 전통적인 종교에서 영성 훈련의 요소만을 분리하여 상업화하는 현상이 지구적으로 유행했다. 단학선원, 즉 현재의 단월드는 그 성공적인 모델 가운데 하나였다. 상품화된 영성을 판매하는 수련단체는 기존의 종교 범주에서 모호하게 벗어나 있지만 여전히 종교 비슷한 수상한 무언가로 여겨지곤 한다.

이 모든 논란에는 종교의 자유라는 헌법적 질서와는 별개로 존재하는, 한국인의 암묵적인 종교 인식이 반영되어 있다. 무속, 주술, 수련단체 등은 모두 다른 맥락에 속하는 개념들이지만 문화적으로 공인된 ‘정상 종교’ 범주 밖에 있는 ‘종교적’ 현상이라는 이유로 누군가의 명예에 상처를 줄 수 있는 소재가 된다. 그러나 이런 종교 현상들에 대한 다수 대중의 편견을 이용해 이익을 보려는 시도는 분명 비겁하다. 정치적 영역이든 법적 영역이든 사회적 영역이든 논쟁이란 “맞다이로 들어오는” 방식이 바람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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