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옥스테이’에 신음하는 북촌 주민들 “우리의 밤을 되돌려다오”

기민도 기자 2024. 5. 19. 1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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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당시 종로 구의원으로 지구단위계획 재정비를 적극 찬성했던 윤종복(종로2) 서울시의원은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주민들이 한옥을 조금 활용하면서 우리 대표 문화인 한옥에서 오손도손 살아가는 북촌을 만들려고 한 것이지 기업들이 들어와 돈 벌어먹게 하려고 도시계획을 손본 게 아니다. 기업형 한옥체험업이 더는 들어오지 못하게 지구단위계획을 재정비해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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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3일 오후 서울 종로구 북촌 한옥마을을 돌아다니고 있는 내외국인 관광객들. 기민도 기자 ke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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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르르르르’

8일 자정을 조금 넘긴 시각, 김성미(47)씨는 아스팔트 바닥을 긁는 바퀴 소리에 잠을 깼다. 바깥을 보니 외국인 관광객 4명이 대형 트렁크를 하나씩 끌면서 집 옆 ‘한옥스테이’로 들어서고 있었다.

지난 13일 ‘북촌’으로 불리는 서울 삼청동 자택에서 만난 김씨는 “언제 무례한 관광객이 옆집에 들지 모르니 매일 밤이 긴장된다”고 했다. 밤늦게 밴을 타고 좁은 골목까지 들어오거나, 술에 취해 골목에서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 일도 잦다고 했다. 김씨는 3년 전 북촌에서도 가장 조용한 골목을 수소문해 찾아왔지만, 지난해 8월 기업형 한옥체험업소가 옆집에 생긴 뒤 ‘고요한 밤’을 잃게 됐다.

북촌 주민 김성미(47)씨가 지난 13일 종로구 삼청동 자신의 한옥에서 `다른 곳으로 가서 이야기해달라, 제발 조용히 해달라\'고 영어로 적은 쪽지를 보여주고 있다. 김씨는 창문을 통해 이 쪽지를 외국인 관광객들에게 보여준다. 기민도 기자 key@hani.co.kr 내보여

10년 남짓 가회동 한옥에 살던 ㄱ씨 역시 ‘오버투어리즘’(과잉관광으로 인한 주민과의 갈등)이 심각해지자 ‘덜 시끄러운 곳’을 찾아 2019년 삼청동으로 옮겨온 경우다. 하지만 지금은 기업형 한옥체험업소 때문에 삼청동에서도 떠나야 하는지 심각하게 고민 중이다. ㄱ씨는 “이대로라면 한옥에 터를 잡고 살아온 주민들이 다 떠나갈 판”이라고 우려했다.

종로구청 등에 따르면 현재 서울에서 영업 중인 한옥체험업소가 270곳이다. 이 가운데 210곳이 종로구에, 그 중에도 120곳이 삼청동·가회동 등 북촌 일대에 몰려 있다. 최근 빠르게 한옥체험업장을 늘려가고 있는 ㄴ법인은 북촌 일대에 14곳, 서촌과 익선동까지 포함해 종로구에서만 모두 34곳의 한옥체험업소를 운영하고 있다. 종로구청 관계자는 “하루에 한 두명 정도는 한옥체험업에 대해 문의해온다”고 말했다.

북촌에 이런 기업형 한옥체험업소가 영업할 수 있게 된 것은 2020년 9월 북촌 지구단위계획이 재정비되면서부터다. 그 이전에는 한옥에 거주하는 주민들이 숙박객에게 남는 방 한 칸을 내주는 방식이라 소음이 크지 않았는데, 지금은 독채로 무인 영업을 하기 때문에 관리 자체가 어려워졌다는 게 주민들의 설명이다. 이런 이유로 북촌 주민 10여명은 올해 2월 ‘정주권을 지키고자 하는 북촌주민모임’을 만들었다. 이들은 지난 4월 북촌 주민 217명의 서명을 받아 서울시와 종로구청을 찾아가 ‘기업형 한옥체험업’이 더는 북촌에 들어오지 않도록 지구단위계획을 변경해달라고 요청하기도 했다.

2020년 당시 종로 구의원으로 지구단위계획 재정비를 적극 찬성했던 윤종복(종로2) 서울시의원은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주민들이 한옥을 조금 활용하면서 우리 대표 문화인 한옥에서 오손도손 살아가는 북촌을 만들려고 한 것이지 기업들이 들어와 돈 벌어먹게 하려고 도시계획을 손본 게 아니다. 기업형 한옥체험업이 더는 들어오지 못하게 지구단위계획을 재정비해야 한다”고 했다.

서울시는 주민들의 정주권을 보호해야 한다면서도 지구단위계획 재정비와 관련해서는 추후 검토하겠다는 입장이다. 앞서 서울시는 지난 3월 한옥체험업소가 한옥을 신축·수선할 때 보조·융자금의 최대 지원 한도를 10% 늘려주는 한옥체험업 진흥책을 발표한 바 있다. 서울시 한옥정책과 관계자는 “종로구청 등에서 북촌을 특별관리구역으로 지정해 주민과 업체들이 상생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고 있다”면서도 “지구단위계획을 다시 정비할 때 이런 민원 사항을 반영해 검토하겠다”고 했다.

기민도 기자 ke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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