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력을 경험한 자는 폭력에 쉽게 중독된다 [전쟁과 문학]

이정현 평론가 2024. 5. 19. 1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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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스쿠프 전쟁과 문학 20편
임레 케르테스의 ‘홀로코스트 4부작’
아우슈비츠 끌려간 케르테스
종전 후 당시 겪은 비극 소설로
수용소 시절 다룬 자전 소설
노벨문학상 받는 영예 누렸지만
폭력에 투쟁하다 불행한 삶 이어가

"파시즘이 남긴 최악의 유산은 파시즘과 싸운 자들의 내면에 파시즘을 남기고 사라진다는 것이다(베르톨트 브레히트)." 폭력을 경험한 자는 폭력에 쉽게 중독된다. 헝가리 작가 임레 케르테스는 홀로코스트를 겪고 살아남았다. 전쟁이 끝난 후에도 그는 자신이 여전히 수용소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사실을 자각한다. 케르테스의 대표작 '홀로코스트 4부작'은 폭력에 중독된 자신과 벌인 처절한 투쟁의 기록이다.

2002년 노벨상 수상 후 임레 케르테스의 홀로코스트 4부작은 「청산」으로 끝을 맺는다.[사진=연합뉴스]

헝가리 출신 임레 케르테스(Imre Kerteszㆍ1929~2016년)는 프리모 레비(1919~ 1987년), 빅터 프랭클(1905~1997년)과 함께 '홀로코스트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다. 그러나 조국 헝가리가 2차 세계대전 이후 소련의 영향 아래 놓였던 탓에 케르테스는 냉전이 종식한 이후에야 빛을 볼 수 있었다.

임레 케르테스는 프리모 레비와 빅터 프랭클보다 훨씬 어린 나이에 강제수용소를 경험했다. 14살의 나이에 홀로코스트를 경험한 케르테스는 훨씬 오랜 후유증에 시달려야 했다.

유대인 강제수용소의 참상은 이미 프리모 레비의 「이것이 인간인가」 「주기율」과 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 등 여러 저서에서 사실적으로 그려진 바 있다. 케르테스가 겪은 후유증은 더 길고 집요했다. 어린 나이에 겪은 비극은 케르테스의 남은 삶을 잠식했다.

1929년 헝가리 부다페스트의 유대인 목재상 집안에서 태어난 케르테스는 평범한 성장기를 보냈다. 전쟁이 발발했으나 어린 소년에게 전쟁은 그다지 실감 나지 않았다. 오히려 소년은 멋진 제복을 입은 독일군 병사들을 동경했다. 1944년 6월 30일, 소년은 버스를 타고 가다가 영문도 모르고 체포됐다.

전쟁 말기에 나치는 유대인들을 닥치는 대로 잡아들였다. 케르테스는 악명 높은 아우슈비츠 수용소, 부헨발트 수용소, 차이츠 수용소를 모두 겪었다. 특히 부헨발트 수용소에서는 '부헨발트의 마녀'로 불리던 일제 코흐(1906~1967년)의 만행을 직접 목격했다.

당시 부헨발트 수용소장의 아내였던 일제 코흐는 감금된 유대인들을 고문하고, 그들의 살갗을 벗겨 전등갓과 식탁보로 만드는 만행을 저지른 인물이다. 그는 유대인들을 성적으로 학대하고, 수감자들의 돈을 빼앗아 부를 축적했다. 케르테스는 수용소에서 운명에 순종하지 않고 사소한 기쁨을 느끼려고 몸부림쳤다. 지옥에서도 분명 행복을 발견할 수 있다는 사실을 되새기면서 그는 수용소에서의 나날을 견뎠다. 이 과정은 그의 대표작 「운명(1973년)」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폭력의 흔적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사진=연합뉴스]

1945년 전쟁이 끝날 때까지 살아남은 케르테스는 부다페스트로 돌아왔다. 대학 진학에 실패한 케르테스는 부다페스트의 '빌라고샤그' 신문사에 취직했다. 그러나 공산당이 집권하면서 이 신문사는 공산당의 기관지로 전락했고 케르테스는 1951년에 쫓겨났다. 실직한 케르테스는 니체, 프로이트, 비트겐슈타인 등 독일계 철학자들의 저서를 번역하며 생계를 겨우 유지했다.

1956년 헝가리에서는 소련에 종속된 정부에 반대하는 민중 봉기가 일어났다. 즉각 부다페스트를 점령한 소련군은 민주화 운동을 가혹하게 탄압했다. 이 시기부터 케르테스는 수용소의 악몽에 시달리면서 그동안 적은 일기를 토대로 「운명」을 창작했다. 지옥 같은 수용소에서도 기어이 행복을 찾아내는 소설의 주인공 '죄르지'라는 소년은 바로 케르테스 자신이었다.

케르테스는 홀로코스트가 아니라 '홀로코스트 이후'를 다룬 소설을 연이어 발표했다. 그중 「좌절」은 케르테스의 삶이 그대로 투영된 작품이다. 소설의 화자인 노인은 '팔리지 않는 글'을 쓴다. 노인은 자신의 홀로코스트 경험이 담긴 「운명」이라는 소설을 출판사에 보내지만, 출판사 편집자들은 그 책의 출간을 원하지 않는다.

이제 전쟁은 끝났고, 고통스러운 과거를 소재로 다룬 소설은 환영받지 않는다. 이 소설의 '노인'은 노년에 이른 케르테스 자신이고, 노인이 쓴 소설의 주인공 '쾨베시'는 젊은 시절의 케르테스와 일치한다. 수용소에서 살아남은 쾨베시는 고향으로 돌아와 여러 직업을 전전하지만 어떤 일에서도 안정을 찾지 못한다. 신문사 기자, 철강공장 직원, 도로 포장 작업 등을 하지만 쾨베시는 적응하지 못하고 금방 해고되고 만다.

그러다가 쾨베시는 감옥의 간수로 취직한다. 쾨베시는 그곳에서 기이한 편안함을 느낀다. 어느 날 쾨베시는 통제에 따르지 않는 죄수를 보고 자신도 모르게 따귀를 때린다. 그 순간 그는 자신이 느낀 편안함의 정체를 깨닫는다. 수용소에서 일상적으로 겪은 폭력은 쾨베시의 내면을 잠식하고 있었다.

그래서 쾨베시는 강력한 규율이 작동하는 폐쇄적인 공간에서 역설적으로 편안함을 느낀다. 그 사실을 깨달은 쾨베시는 수용소에 갇혔을 때보다 더 깊은 좌절에 휩싸인다. 그는 폭력을 경험한 사람은 그 폭력에 저항하면서도 폭력을 내면화한다. 쾨베시는 자신도 모르게 폭력에 길들여져 있었던 것이다.

1990년에 발표한 소설 「태어나지 않은 아이를 위한 기도」 역시 홀로코스트의 기억에 시달리는 자의 내면을 일기 형식으로 기록한 작품이다. 홀로코스트의 트라우마에서 벗어나지 못한 소설의 화자는 무의식적으로 결혼과 출산을 거부한다. 자신이 겪은 고통이 자식에게 대물림될지도 모른다는 불안 때문이다.

냉전이 끝나고 케르테스의 소설은 비로소 전세계에 출간됐고 그는 2002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 노벨상 선정위원회는 케르테스에게 "야만적이고 제멋대로인 역사에 맞섰던 개인의 취약한 경험을 지켜내려 한 작가"라는 헌사를 바쳤다. 케르테스는 2003년 「청산」이라는 소설을 출간했다.

이로써 「운명」 「좌절」 「태어나지 않은 아이를 위한 기도」 「청산」으로 이어지는 '홀로코스트 4부작'을 완결했다. 노벨문학상 외에도 케르테스는 '라이프치히 서적상' '헤르더문학상' '디 벨트 문학상'을 수상하며 헝가리의 대표작가로 떠올랐다.

케르테스의 문학은 비극의 시대에서 인간이 어떻게 살아남고 사유할 수 있는가를 되묻는다. 케르테스는 홀로코스트를 예외적인 사건이 아니라,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는 잠재력을 지닌 사건으로 규정했다.

홀로코스트의 경험은 케르테스를 위대한 작가로 만들었지만, 개인으로서 그는 철저하게 불행했다. '홀로코스트 4부작'을 완성한 이후 케르테스는 파킨슨병을 앓다가 사망했다. 무수한 글을 쓰면서도 그는 자신의 고통을 온전히 감당하지 못했다. 소설 속 인물 '죄르지'와 '쾨베시', '노인'은 평생 수용소의 기억에서 자유롭지 못했던 케르테스 자신이었다.

이정현 평론가 | 더스쿠프
21cbach@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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