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뛰어내리려고 옥상에 왔어요"…29층 난간 매달린 시민 구한 경찰관

오석진 기자 2024. 5. 19. 1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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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테랑] 서울 노량진지구대 송지영 경사
[편집자주] 한 번 걸리면 끝까지 간다. 한국에서 한 해 검거되는 범죄 사건은 113만건(2021년 기준). 사라진 범죄자를 잡기 위해 물불 가리지 않는 이 시대의 진정한 경찰 베테랑을 만났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뛰어내리려고 옥상에 왔어요."

지난 4월25일 오후 6시27분 서울 노량진지구대에 한 통의 신고가 접수됐다. 20대 초반 여성이 투신하려고 아파트 옥상에 올라갔다는 신고였다. 노량진지구대 송지영 경사는 순찰을 마치고 돌아와 자리에 앉으려다 신고를 듣고 다급하게 달려 나갔다. 7시 야간근무팀과 교대를 앞두고 있던 노량진지구대 2팀은 다시 긴급태세에 돌입했다.

가장 위급한 상황을 알리는 '코드 제로'도 발동됐다. 순경부터 팀장까지 모든 직원이 자리를 박차고 뛰쳐나갔다. 지구대에 있는 순찰차 3대가 출동해 3분 만에 현장에 도착했다.

현장에 도착했지만 신고자의 위치는 대략적으로만 파악된 상태였다. 송 경사가 속한 팀은 기지를 발휘해 '옥상에 왔는데 A 아파트 이름이 보인다'는 신고를 토대로 아파트 동호수를 특정해 옥상으로 달려갔다. 여성이 있는 곳은 29층 옥상이었다. 때마침 온 119구조대와 함께 옥상 문 앞에 도착했지만 문이 잠겨 있었다. 구조대가 옥상 문 강제 개방을 준비했다.

한시가 바빴다. 대응이 늦는다면 여성의 생명을 담보할 수 없었다. 장비를 사용해 문을 연다고 한들 아무리 빨라도 수 분이 소요될 터였다. 송 경사는 동료 경찰관에게 연락했고 동료 경찰관이 아파트 경비원에게 상황을 설명한 뒤 비밀번호를 알아냈다. 1분 만에 비밀번호를 입력해 도어락을 풀었다.

송지영 서울 노량진지구대 경사(왼쪽에서 다섯번째)가 팀원들과 담소를 나누고 있다. /사진제공=동작경찰서


문이 열리고 고개를 돌리자 오른쪽에 여성이 보였다. 하얗게 질린 채 울먹이고 있는 여성은 옥상 바깥으로 넘어가 난간을 붙잡고 서 있는 상태였다. 이 모습을 보자마자 몸이 먼저 반응했다. 송 경사와 소방관은 몸을 날려 난간을 움켜쥐고 있는 여성의 손부터 잡았다. 29층 옥상 난간에 있는 여성 뒤로 보이는 광경은 아찔했다. 밑에 있는 커다란 소방차가 개미처럼 보였다.

다른 경찰관과 소방관들도 뒤이어 올라왔다. 송 경사가 잡고 있는 여성이 떨어지지 않게 같이 출동한 팀원들이 여성의 허리에 로프를 둘렀다. 힘이 빠진 여성을 난간 안쪽으로 잡아 끌어당겨 구조하자 온몸의 힘이 풀린 여성은 바닥에 그대로 주저앉았다. 송 경사도 그제야 긴장을 풀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송 경사는 "당시 너무 급박한 상황이었기 때문에 '일단 빨리 가서 구해야겠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며 "함께 출동한 팀원들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런 종류의 신고는 보통 대낮보다는 새벽에 많다"며 "낮에 신고가 들어오는 경우가 드물어서 무척 놀랐다"라고 했다.

현장에 출동했던 119구조대원은 서울경찰청 '칭찬합니다' 게시판에 경찰과 소방이 멋진 팀워크를 발휘했다는 내용의 글을 올려 송 경사를 칭찬했다. 송 경사는 "혼자 한 일이 아니라 우리 팀, 또 같이 출동한 소방관 분과 함께 했다"며 "덕분에 소중한 생명을 살릴 수 있어서 그 분들께 참으로 감사하고 같이 팔을 잡아주셨던 분들께도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서울 노량진지구대 송지영 경사. /사진=본인제공


송 경사는 "매달려계신 여성분의 팔다리에 힘이 빠지는 게 가장 우려스러운 상황이어서 이번엔 급박하게 몸을 날려야 했다"며 "술을 많이 마셨거나 과격한 행동을 하시는 분들의 경우엔 거리를 두고 천천히 접근해도 갑자기 투신을 시도할 수 있기 때문에 구조를 하러 갈 때 굉장히 조심스럽다"이라고 말했다.

송 경사는 올해가 경찰이 된 지 10년째다. 평소 다른 사람들을 돕는 데 보람을 느껴 위험에 빠진 사람들을 구할 수 있는 경찰이 되고 싶다는 생각으로 경찰행정학과에 지망해 경찰이 됐다.

'예비 쌍둥이 아빠'로 최근에는 좋은 아버지가 되는 것이 가장 큰 목표다. 송 경사는 "아내가 매일 '다치지 말고 오늘 하루도 순탄하게 지나갔으면 좋겠다'라고 기도해주는데 덕분에 잘 지내는 것 같다"며 "경찰에 신고해주시는 분들의 절박한 마음에 공감하며 언제나 따뜻하게 다가가는 경찰이 되겠다"고 밝혔다.

오석진 기자 5stone@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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