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인을 지키는 건 한국 자존심과 세계시장을 지키는 일”

유재순 재일 작가 2024. 5. 19. 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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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정보 유출 사고 난 美 애플·구글과 달리 네이버에만 이중잣대

(시사저널=유재순 재일 작가)

일본 정부가 기를 쓰고 한국 기업 네이버가 만든 메신저 라인을 '메이드 인 재팬'으로 일본 브랜드화하려는 이유는 무엇일까. 일본 인구 1억2100만 명 중 9600만 명이 이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에서 라인의 존재 가치는 절대적이다. 일본인들 입장에서는 구세주와 다름없다. 2011년 3월11일 동북대지진 발생 이후 급박한 재해 때 손쉽게 활용할 수 있는 네트워킹 커뮤니티가 절실한 상황에서 라인이 대안으로 인정받았다. 실제 2016년 구마모토 지진이 발생했을 때, 서로 생존을 확인하고 실시간으로 재해 현장을 알려 일본 열도가 일사불란하게 복구 작업을 할 수 있도록 도와준 것 역시 라인이었다. 일본인들의 생활 필수 기능 메신저가 된 것이다. 

일본 정부가 '자본 관계 재검토'라는 경제 핵폭탄을 터트린 배경에는 네이버와 연결된 52만 건의 일본인 개인정보 유출 사고도 한 원인이 됐다. 총무성은 개인정보 유출 재발 방지 대책을 세우는 '행정지도'만 하면 됐다. 하지만 총무성은 격노라는 감정을 숨기지 않은 것은 물론 네이버 지분을 넘기라는 월권마저 행사했다. 

5월9일 라인야후가 입주해 있는 일본 도쿄 지요다구의 도쿄가든테라스기오이타워로 사람들이 들어가고 있다. 전면에 '라인야후'라고 적혀있다. ⓒ연합뉴스

"라인을 '완전한 일본 것'으로 만드는 게 日의 속셈"

"사실 일본 정부는 그동안 라인에 대한 문제의식을 수년 전부터 크게 느껴왔다. 라인의 활용가치가 높아지면 높아질수록 위기감도 높아졌다. 왜냐하면 라인은 한국 기업 네이버가 개발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생각은 비단 총무성뿐만 아니라 일본 정부 기관들과 자민당 내에도 오래전부터 팽배해 있었다. '이대로 둬선 안 된다'는 문제의식이 여당은 물론 야당에도 쫙 퍼져있었다. 이런 속내를 차마 공개적으로 드러내지 못하고 있을 때, 이 문제를 수면 위로 끌어올린 게 바로 개인정보 유출 사건이다."

이렇게 말하는 10여 년 경력의 자민당 국회의원 보좌관 K씨는 라인의 개인정보 유출 사고가 울고 싶은데 뺨을 때려준 격이라고 했다. 일본 정부의 목적은 오로지 단 하나. 네이버가 만든 국민 메신저 라인을 완벽하게 '일본 것'으로 만드는 것 그 이상 이하도 아니라는 설명이다. 

일부에서는 20%대 지지율에 갇힌 기시다 정부가 지지율 반전을 꾀하기 위해 그동안 일방적으로 때려왔던 북한 대신 네이버를 선택한 게 아니냐는 말도 나온다. 특히 일본 기자들 사이에서 이런 분석이 흘러나온다. 고(故) 아베 신조 전 총리가 '북한 때리기'로 정치 기반을 굳혔듯이, 기시다 총리도 네이버 지분을 쟁탈해 오는 것으로 임기가 끝나는 9월에 연임을 꿈꾸는 게 아니냐는 의혹이 솔솔 피어오르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한국을 무시하거나 차별하는 정책이 아니냐는 비판도 대두되고 있다. 일본에 진출한 미국의 애플이나 구글, 마이크로소프트에서도 개인정보 관련 사고가 수백여 건 발생했는데 조용한 반면, 유독 네이버에만 다른 잣대를 들이대고 '지분 문제'까지 걸고 넘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 정부가 의도한 대로 네이버 지분을 인수해 라인을 수치상 일본 브랜드로 만든다고 해서 당장 완벽한 일본 인프라가 형성될 수는 없다고 비관적인 견해를 밝히는 IT 전문가도 있다. 18년째 일본 대기업에서 컴퓨터 시스템을 총괄하고 있는 한국인 김모씨(47)는 일본 정부의 이번 네이버 지분 쟁탈전은 작금의 일본 IT 위상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것에 다름 아니라고 밝혔다. 

"가뜩이나 잃어버린 30년의 경제 침체 속에 자존감이 떨어질 대로 떨어진 일본이 한류 열풍에 이어 전 국민적 메신저가 되어버린 라인으로 인해 자존심이 엄청 상해 있다. 한국 IT에 대한 일본 정부의 콤플렉스가 한국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강하다. 그래서 라인을 완전히 일본 것으로 만든 후 네이버로부터 기술적 종속 관계를 끊어버리고 싶은 욕구도 있다고 본다. 하지만 한국에 비해 기술력이 많이 뒤떨어져 있기 때문에 적어도 앞으로 2~3년간은 네이버의 도움을 받을 않을 수 없다. 어차피 라인은 네이버가 개발했고, 그 시스템 이전이 하루아침에 되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네이버 지분이 라인야후로 넘어와 일본이 경영권을 가진다 해도 기술력까지는 일본의 것이 될 수 없다. 특히 일본인 특성을 보면 그렇다."

스마트폰용 네이버 라인 앱 ⓒ시사저널 최준필

"7~8월에 네이버 지분 압박 또 들어올 수 있어"

그가 지적하는 일본인 특성은 변화를 무서워하는 국민성을 일컫는다. 사실 네이버가 일본의 국민 메신저가 된 배경에는 이 같은 변화를 두려워하는 일본인의 습성도 한몫했다. 첨단과학 시대를 살아가려면 변해야 하는데 정작 머리는 이해하지만 마음이 움직이지 않는 것이다. 특히 실무 현장에서는 이 같은 현상이 더욱 심하다고 한다. 

일본의 컴퓨터 교육정책을 보면 쉽게 납득할 수 있다. 문부과학성은 2017년 3월 개정된 '새학습 지도요령'에 따라 2020년부터 초등학교 프로그래밍 교육을 필수 교과목으로 지정해 시행하기로 했다. 이처럼 초등학교에서 정식으로 컴퓨터 교육을 하게 된 게 불과 3년 전이다. 일본의 IT 산업이 낙후될 수밖에 없는 이유다.

한편에서는 현재 일본 기술력으로 너무 큰 욕심을 드러내는 게 아니냐는 조소마저 나온다. 불과 2년 전인 도쿄올림픽 때 '평창올림픽 시스템을 그대로 가져오는 게 아니냐'는 말이 나올 정도로 시스템 관리가 대단히 취약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로 선수들에 대한 도핑 검사는 한국 카이스트에서 파견된 도핑 전문가가 담당했고, 결제 시스템은 현대카드가, 5G 서비스는 삼성이, 티켓 발매는 인터파크가 담당했다. 이 외에도 크고 작은 올림픽 현장에서 많은 한국인 실무자가 IT 관련 프로그램을 도맡아 처리했던 것은 지금까지도 회자되고 있는 유명한 일화다. 

그렇다고 일본 정부가 라인야후를 포기할 리는 만무하다. 당장은 한국의 강한 반발과 윤석열 정부의 가세로 공세적인 지분 인수에 돌입하지는 않겠지만, 7~8월 정도가 되면 라인야후가 아닌 그 모계 회사인 소프트뱅크에 지금보다 더 강한 압력을 가해 결국 네이버 지분을 쟁취해올 것이라는 게 작금의 정설이다.   

이에 대해 일본 IT 산업의 최일선에 진출해 성공 신화를 쌓아올린 전희배 일본키스코(日本KISSCO) 사장은 다음과 같은 정곡을 찌르는 주장으로 일침을 가했다.

"결론부터 말하면 네이버와 라인야후의 지분율 5:5는 한일 우호관계의 상징성을 위해서라도 반드시 그대로 둬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한국 정부가 반드시 네이버의 보호막이 돼줘야 한다. 네이버 문제는 진보, 보수의 문제가 아니다. 애플이 세계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것은 미국 정부가 그 배경이 돼주기 때문이다. 라인은 일본에서 유일하게 성공한 한국 기업이다. 현대자동차도, 삼성도 넘버원이 되지 못했다. 그런 존재를 송두리째 넘겨준다는 것은 말도 안 된다. 라인은 일본에서만 성공하지 않았다. 대만, 태국 등의 이용자가 2억 명이 넘는다. 앞으로 그 숫자는 더 증가할 거다. 때문에 지분을 넘기면 세계시장도 동시에 넘겨주게 된다. 이것은 한국의 자존심이기도 하고 기업을 지키는 일이기도 하다." 

유재순 재일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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