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당에서 절대 계산 안하는 여친...“너도 나 사귀는 거 과시하려는 거잖아” [씨네프레소]

박창영 기자(hanyeahwest@mk.co.kr) 2024. 5. 19. 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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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프레소-122] 영화 ‘슬픔의 삼각형’

*주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ㅇㅇ남이나 ㅇㅇ녀 같은 표현은 늘 논쟁의 대상이 된다. 자신의 의도와 관계없이 이런 논쟁에 참여하게 됐을 때 가장 안전한 포지션은 그런 표현 자체를 거부하는 것이다. 일련의 언어가 특정 성을 향해 편견을 드러내고, 사회적으로 성차별과 성갈등을 단단히 만드는 성격이 있으므로 써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야야(왼쪽)는 모델이자 인플루언서다. 남자친구인 칼은 그녀가 식당에서 매번 계산을 피하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기고 있다. [그린나래미디어]
‘슬픔의 삼각형’은 어떤 포지션이냐면 실제 저런 생각이 누군가에게 지지받을 만한 사회적 배경이 존재한다고 보는 쪽이다. 그러니깐 여성들에게 ㅇㅇ남이라고 지적받는 남성의 일반적 특성이 실제로 존재하며, 반대로 남성들에게 ㅇㅇ녀라고 손가락질당하는 여성의 특질도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남자와 여자의 생물학적 특성이 아니며, 현재의 가부장제 사회 안에서 어쩔 수 없이 생겨났다는 게 영화의 주장이다. 그렇기 때문에 설사 특정 성별이 사회적 편견에 매우 충실히 부합하는 행동을 할지라도 손가락질할 필요가 있느냐고 묻는 듯하다. 사회의 성적 권력 구도가 바뀌면 서로가 지적하는 포인트도 정반대가 될 것이라고 말이다.

모델로서 칼(왼쪽에서 네 번째)은 야야보다 훨씬 낮은 모델료를 받고 살아간다. 그럼에도 데이트 비용은 온전히 자기 몫이라는 데 불만을 느낀다. [그린나래미디어]
계산 피하던 애인 “나는 원래 사람 조종 잘해”
영화는 모델 커플의 이야기인 1부 ‘칼&야야’로 시작된다. 칼(해리스 디킨슨)은 여자친구 야야(찰비 딘)가 식당에서 계산하지 않는다는 데서 강한 불만을 느낀다. 매력적 모델인 야야는 칼보다 수입이 훨씬 많은데도 데이트 비용을 분담하지 않는다. 외려 먼저 고맙다고 말해버려서 남자가 돈을 내지 않으면 이상한 상황을 만들어버린다. 택시에서까지 두 사람이 이 문제로 싸우자 기사가 남자에게 조언한다. “호구 되기 싫으면 싸워야 해요.”

이 다툼에서 굳이 택시 기사를 등장시킨 부분에서 영화가 보여주려는 바를 확인할 수 있다. 감독은 커플 중 여자 쪽이 계산하지 않는 문제가 이 커플만의 갈등은 아님을 이야기하려는 듯하다. 즉, 어떤 남성들에겐 이 문제가 너무 심한 스트레스라 남성 간의 정서적 연대가 일어날 정도라는 뜻이다.

칼은 어느 날 머리 끝까지 화가 나서 야야에게 따진다. [그린나래미디어]
남자가 여자에게 돈을 집어 던질 정도로 고조됐던 갈등은 남자 쪽이 수그리고 들어가며 소강상태가 된다. 여자는 문득 웃으며 얘기한다. “내가 사람 조종을 잘하거든. 나도 모르게 그러고 있더라고.”

여자는 작정한 듯 자신의 솔직한 마음을 다 털어놓는다. 사실 식당에서 계산서를 못 본 척했다. 염치없다는 생각도 전혀 하지 않는다. 기가 찬 남자친구가 돈도 더 잘 벌면서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고 묻자 여자는 “누가 더 버는진 중요하지 않다”고 답한다.

“임신해서 일을 그만둬야 한다면 상대가 날 돌보려 할지 알아봐야지. 안 그러면 시간 낭비니깐. 난 모델 생활이 끝나면 과시용 아내밖에 안 되거든.”

트로피와이프인 자신을 기꺼이 부양하면서 살아갈 의지와 능력이 되는지 알아봐야 한다는 것이다.

남자는 여자의 솔직함에 외려 더 강한 끌림을 느끼게 된다.

야야는 모델 일이 끝나면 자신은 ‘트로피와이프’밖에 되지 않는다고 얘기한다. 그렇기 때문에 자기를 기꺼이 부양할 의지와 능력이 있는 남자를 골라야 한다는 말이다. [그린나래미디어]
호화 요트에서 벌이는 갑질 파티
2부 ‘요트’에서 커플은 유람선 여행을 떠나게 된다. 모델이자 인플루언서인 야야가 협찬을 받아냈기 때문이다. 배 안에서 두 사람은 살면서 한 번도 만나본 적 없는 갑부들을 만난다. 수류탄을 파는 군수 회사의 사장, 비료 회사를 운영하며 자신을 ‘똥팔이’로 지칭하는 남자 등이다.

이들 중 다수는 종업원에 대한 하대가 몸에 뱄다. 러시아 갑부 여성은 한창 일하고 있는 선원들에게 미끄럼틀을 타고 놀라고 명령한다. 배가 모터로 가는지라 돛을 탑재하지 않았는데 돛이 더럽다며 세척하라는 승객도 있다. 선원들은 승객의 무리한 부탁까지 다 들어주는데, 이들이 주는 팁이 상상을 초월하는 액수이기 때문이다.

야야가 협찬을 받아오면서 커플은 크루즈 여행에 참여하게 된다. [그린나래미디어]
칼은 배 안에서 또 한 번 좌절감을 느낀다. 회사를 매각하고 거액을 챙겼다는 한 남성이 야야에게 노골적으로 들이대기 때문이다. 야야의 친절함에 감동해 롤렉스를 주겠다는 제안까지 한다. 정말 불쾌한 것은 야야가 그의 접근을 잘라내지 않는다는 데 있다. 그녀는 남성과 춤을 추고, 웃어준다. 물론 어디까지나 선을 넘지 않기 때문에 정색하고 화를 내기도 애매하다.

영화는 갑질 파티가 벌어지는 이 배를 뒤집어엎음으로써 상황을 반전시킨다. 여기서 감독은 세상의 비극에 관심 없던 부자들에게 그들 역시 세상의 비참함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점을 보여준다. 일례로 배가 전복되는 원인이 되는 건 해적들이 던진 수류탄인데, 그건 배 위의 승객이 운영하는 군수 회사 제품이다. 배가 가라앉기 직전 변기가 오물을 뿜어내는 장면은 자신을 ‘똥팔이’로 부르던 남자에 대한 조롱이다.

배가 침몰한 뒤 생존자들은 무인도에서 살아갈 방법을 모색했다. 그러나 이들이 현대사회에서 익힌 기술은 대부분 섬에서 살아나가는 데는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린나래미디어]
여자가 지배하는 섬, 남자주인공은 웃음을 팔아 음식을 얻었다
3부 ‘섬’은 살아남은 몇몇 승객이 도달한 무인도를 비춘다. 이들은 여성의 권력이 훨씬 강한 사회를 경험한다. 현대사회에서 배운 모든 지식이 쓸모없어진 가운데, 무인도에서는 생존 기술을 가진 사람이 최강자였기 때문이다. 물고기를 사냥하고, 불을 피우고, 요리할 줄 아는 유일한 여성이 우두머리를 자처한다. 그녀는 배에서 화장실 청소를 담당했다.

그녀와 가까워져야 먹을 것을 얻을 수 있기 때문에 칼은 비위를 맞춘다. 여자친구인 야야에게서 선을 넘지 않으며 그녀의 요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노하우도 배운다. 처음엔 그저 평온한 하루를 위해 했던 행위였는데, 무인도 체류 시간이 길어지면서 칼은 그녀의 정식 애인이 되는 것까지 상상해본다.

새 사회의 우두머리가 된 여성은 원래 배에서 화장실 청소를 담당했다. [그린나래미디어]
감독이 하려는 얘기는 단순하다. 사회에서 자신의 부를 이용해서 여성에게 접근하는 남자, 또 자기 미모를 활용해 경제적 이득을 얻어내려는 여자가 존재할 수 있는데, 이것을 ‘성’의 특징으로 간주해서 비판하는 게 큰 의미가 있진 않다는 것이다. 왜냐면 특정 성에 권력과 부가 편중된 곳에서는 누구나 그런 유혹에 빠지기 쉽기 때문이다.

영화의 주장은 아주 새로운 것도 아니고, 또 모두가 공감할 만한 내용도 아니다. 이러한 주장 자체가 성에 대한 편견을 드러내는 건 아닌지 싶기도 하다. 다만, 이를 보여주기 위해 서사를 쌓아가는 과정은 재밌다. 칸영화제가 이 영화에 황금종려상을 시상한 이유는 어쩌면 좀 심각하게 들릴 수도 있는 이야기를 가볍게 풀어내는 능력에 있을지도 모르겠다.

‘슬픔의 삼각형’ 포스터. [그린나래미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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