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게 천천히 날아들더니 ‘쾅’, 자폭 드론 공포 커진다 [박수찬의 軍]
지상에 있는 사람들의 눈에 보일 정도로 낮고 느리게 날아와 표적을 파괴하는 자폭 드론의 위력이 주목받고 있다.
과거에는 고도의 군사과학기술을 갖춘 국가만이 토마호크를 비롯한 순항미사일이나 정밀유도무기 등을 앞세워 정밀 폭격을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전자상거래로 확보하거나 실생활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것을 활용해 만든 싸구려 자폭 드론이 순항미사일과 유사한 위력을 내고 있다.
비국가적 무장조직마저도 마음만 먹으면 전략적 타격을 할 수 있게 됐다는 점에서 새로운 대응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평가다.
◆가난한 조직의 순항미사일, 자폭드론
폭발물을 장착한 드론을 띄워 멀리 떨어진 곳에 있는 표적을 타격한다는 개념은 수십년 전부터 있었다. 한국군도 도입한 이스라엘산 하피처럼 일부 기종이 실용화됐지만, 널리 쓰이지 못했다.
제작에 상당한 비용이 들면서 미사일을 비롯한 정밀유도무기가 더 낫다는 인식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이같은 인식을 완전히 뒤집는 계기를 마련했다. 2010년대부터 민간 분야에서 꾸준히 이어진 드론·정보통신 기술의 발전은 매우 저렴한 가격으로도 1000㎞ 이상을 날아가는 자폭드론을 만들 기반을 제공했다.
전자상거래의 활성화도 큰 몫을 했다. 알리익스프레스나 아마존 등에선 드론용 엔진과 민수용 위성항법(GPS) 수신기, 플레이스테이션 조종기, 레저용 R/C 무선조종기 비행제어 시스템 등을 쉽고 저렴하게 살 수 있다.
자폭드론을 매우 싼 값에 대량생산할 민간 기반이 갖춰진 셈이다.
이란산 샤헤드-136은 우크라이나 전쟁의 상징처럼 인식될 정도로 많이 쓰인 자폭드론이다. 지난 2022년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군은 대전차미사일과 바이락타르 무인기 등을 앞세운 우크라이나군의 저항으로 수도 키이우 함락에 실패했다.
전선이 교착상태에 빠지자 러시아군은 이란산 샤헤드-136에 주목했다.
당시 러시아군은 제공권을 완전히 장악하지 못했고, 장거리 정밀유도무기도 부족했다. 안전한 내륙에서 우크라이나 후방을 타격할 수 있고, 저렴하게 대량생산이 가능한 샤헤드-136은 러시아군에게 새로운 대안이 됐다.
샤헤드-136은 드론 중에서도 성능은 평범한 수준이다. 그런데도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활약한 것은 매우 낮은 비용 덕분이다.
엔진은 알리익스프레스에서도 살 수 있고, 프로펠러를 사용해서 제작 단가도 낮췄다. 그러면서도 최대 1800~2500㎞의 작전반경을 지니고 있다.
순항미사일과 비슷한 수준이면서 가격은 훨씬 낮다. 막대한 양을 생산해 물량 공세에 나설 수 있는 셈이다. 양이 곧 질이 되는 것으로서, 우크라이나군에 큰 압박이 된다.
러시아는 게란-2라는 이름으로 국내 생산을 하고 있다. 항속거리가 줄어든 대신 탄두중량을 늘려 파괴력을 높였다. 2025년 9월까지 6000대 이상을 생산할 예정이다.
우크라이나도 처음엔 서방에서 지원받은 방공망을 가동해 샤헤드-136 드론을 요격했다. 덕분에 피해는 크지 않았으나 고가의 방공무기를 싸구려 자폭드론 요격에 쓰면서 비용 문제가 지적됐다.
이에 우크라이나는 기관총과 망원경, 야간투시경, 탐조등, 픽업트럭 등을 갖춘 드론 샤낭부대를 만들어 드론을 요격하고 있다. 여러 개의 소총을 한데 묶거나 산탄총을 사용하기도 한다.
장거리 자폭드론 투입도 활발하다. 벨고로드를 비롯한 국경 일대 러시아 본토를 비롯해 내륙 지역 타격도 자폭드론에 의해 이뤄진다.
우크라이나는 최근 러시아 타타르스탄의 알라부가 경제특별구역을 공습했다. 샤헤드 자폭드론 공장이 있는 곳으로 전선에서 멀리 떨어진 지역이다.
단순하고 신뢰성이 높아 간단한 개조만으로도 드론을 만들 수 있다. 가격이 9만 달러(1억2400만 원)에 불과하고, 러시아에서도 쓰는 비행기라 러시아인들의 의심을 피할 수 있다.
러시아도 우크라이나처럼 이동식 드론 요격부대를 만들고 있다. SUV 차량 탑재 기관총과 23㎜ 기관포를 쓰는 트럭, 전파방해장치를 탑재한 트럭으로 구성된다.
전통적인 방공망은 비용 대비 효과가 낮으므로 우크라이나처럼 대공포와 전자전으로 드론 공격을 저지하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보여준 장거리 자폭드론의 효과는 중동에서도 입증되고 있다. 이란의 이스라엘 공습에선 이라크·시리아 상공을 거쳐 샤헤드-136이 이스라엘로 날아갔다. 예멘 후티 반군도 샤헤드-136으로 공격을 감행하고 있다.
초저가 자폭드론을 대량 투입해 적 방공망을 뚫는다는 것은 언뜻 보면 효과적인 방법이다. 하지만 단순히 자폭드론 공격만으로는 전쟁의 국면을 바꾸는데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다.
우선 자폭드론을 제작하면서 가격과 성능의 균형을 잡아야 한다. 성능에 초점을 맞추면 비용 상승으로 수천대씩 생산하기가 어렵다. 초저가로 대량생산하는데 집중하다가 성능이 부족해지면 공격력이 취약해질 우려가 있다.
우크라이나에서 벌어지는 전자전으로 정밀유도무기의 명중률이 떨어지는 문제가 두드러지고 있으므로 전자전 대응을 위해 자폭드론 소프트웨어와 무선장치 등의 업데이트도 수시로 이뤄져야 한다.
유사시 단기간에 대량의 자폭드론을 만들고, 적군의 드론 공격을 저지하는 안티 드론 체계를 신속히 전개할 수 있도록 평상시에 관련 제도를 정비할 필요가 있다.
드론과 안티 드론 체계 개발·생산 규제는 개발 및 운용비를 증가시켜 관련 산업의 활력을 떨어뜨린다. 관련 기술 투자와 더불어 드론 개발 및 사용을 가로막는 규제를 과감히 철폐하는 방안도 검토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유사시 표적 분배도 면밀하게 이뤄져야 한다. 러시아산 S-300이나 판치르-S1처럼 순항미사일도 요격하는 고도의 방공체계를 자폭드론으로 공격한다면, 다수의 자폭드론을 투입해야 한다. 아무리 초저가 드론이라도 많은 수량을 단일 표적에 투입하면 비효율적인 작전이 된다.
강력한 방공망을 갖춘 표적에는 정밀유도무기나 탄도미사일 등을 투입하고, 정유소나 변전소, 통신기지국, 공장 등 방공망 범위 밖의 인프라 시설을 자폭드론 표적으로 설정하면 공습 작전의 효과가 더욱 높아진다.
드론 공격을 효율적으로 저지할 수단을 미리 갖추는 것도 중요하다. 초저가 자폭드론은 기술적 난도가 낮아서 개발도상국이나 후진국도 제작이 가능하다.
언제든 자폭드론 공격이 있을 수 있다는 가정 아래 저렴하면서 대량으로 운용 가능한 드론 요격체계를 구축하는 것이 시급하다.
한국도 북한의 드론 공격에 대비해 접적지역과 주요시설에 대한 드론 침입을 저지하는 체계를 갖출 예정이고, 자폭드론과 정찰드론 개발 및 배치도 더욱 늘릴 계획이다.
다만 기존 작전계획에 드론의 역할을 반영하는 것과 드론에 대한 방어대책, 개발·운용할 드론 전력의 수준 등을 고민하는 것이 먼저 이뤄져야 한다는 지적이다.
박수찬 기자 psc@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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