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 축하는커녕 안 싸우면 다행?"…결국 폭발했다 [곽용희의 인사노무노트]

곽용희 2024. 5. 19. 0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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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아 단축근로 짜증나" 직원 간 드잡이
'업무부담' 갈등 폭발
중학교서 육아단축근로 사용 두고 실장과 직원 갈등
"왜 시키는 일 안했나" vs "단축 근로 퇴근 시간"
녹음하려는 실장 핸드폰 빼앗으려다 직원 넘어져
실장, 법원서 폭행죄로 벌금 50만원
동료 업무 부담 늘면서 '갈등' 확산
"임밍아웃이란 말까지 나와"
"대체인력 인재채움뱅크 강화하고 동료 보상 키워야"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지난해 육아기 근로시간단축 사용자 수가 2만3188명으로 역대 최대를 기록했다. 출생아 수가 급감하고 있지만 육아휴직과 육아기단축근로 사용이 조금씩 늘면서 양육 환경이 개선되고 있는 것은 긍정적이다. 하지만 육아휴직 사용이 확대되면서 직장 내 갈등도 조금씩 늘고 있다. 특히 빠듯한 인력으로 운영되는 중소기업일수록 육아휴직자의 업무 부담이 동료들에게 그대로 전가되면서 감정 싸움으로 이어지는 일도 적지 않다.

이런 가운데 최근 부산지방법원은 육아기 단축근무 사용이 빌미가 돼 다툼을 벌이다 '폭행죄'로 기소된 중학교 행정실장에게 벌금 50만원을 선고했다. 

○"육아휴직 사용에 불만" 직원 간 드잡이

한 중학교 행정실장 A씨는 행정실에서 근무하는 여성 사무관 C(35세)씨와 갈등을 빚어 왔다. C씨가 육아휴직과 육아시간(육아기 단축 근로)을 사용하면서 근무를 소홀히 하고 동료들의 업무가 늘어났다는 생각에 불만을 품어온 것.

그러던 중 지난해 2월 어느 날 오후 2시 30분경 A씨는 C씨에게 "학교 운영비를 은행에 입금하고 납부 고지서에 담당자 도장을 받아서 학교에 제출하고 귀가하라"고 지시했다. 하지만 C 씨는 담당자가 자리에 없어 도장을 못 받았고 결국 육아기 단축 근로에 따른 퇴근 시간인 오후 2시 30분에 귀가했다.

이튿날 A씨는 오전 10시 행정실에서 학교 운영비 납부고지서를 왜 내지 않고 귀가했냐고 나무라자 C씨는 "제출하라는 말을 듣지 못했다"며 맞서 실랑이를 벌였다.

말다툼을 벌이던 중 C씨는 A씨에게 "모욕적인 말을 했다"며 큰 소리로 사과하라고 요구했다. 이에 화가 난 A씨도 자신의 휴대폰 음성 녹음기를 틀고 C씨의 말을 녹음하려 했고, 이에 C씨는 A씨의 녹음기를 양손으로 빼앗아 녹음파일을 지우겠다고 덤벼들었다.

이에 A씨는 휴대폰을 빼앗기지 않으려 왼손으로 잡고 오른손으로 C씨의 오른쪽 뺨을 한차례 밀쳐 바닥에 넘어뜨렸다. 결국 폭행죄로 고소된 A씨에 대해 부산지법은 지난해 8월 "평소 피해자가 육아휴직 및 육아시간을 사용하는 것에 불만을 품어 왔다"며 A씨에게 벌금 50만원을 선고했다.

○"'임밍아웃' 단어, 괜히 있는 것 아냐"...업무 부담에 '갈등'

현장에서 육아휴직 사용을 두고 근로자 간 갈등이 점점 커지고 있다. 육아휴직 사용은 법적으로 당연한 권리이고 저출산 시국에서는 축하할 일이지만, 당장 내 일이 늘어날 것을 걱정하는동료들은 한숨을 내쉬는 경우가 적지 않다.

한 중소기업 직원 A씨는 "여성 직원이 8명인 여초 회사인데 2명이 임신해 육아휴직을 쓴다"며 "직원들끼리 업무 분담하면서 갈등이 생겼는데, 결혼을 앞둔 다른 직원 보기 민망했다"라고 말했다. 다른 관리자급 직원도 "회사에서 추가로 보상이 나오는 것도 아니다 보니 남은 동료들 입에서 솔직히 '축하한다'는 말이 절로 나오지는 않는다"며 "오죽하면 임밍아웃(임신+커밍아웃)이라는 단어가 있겠나"라고 토로했다.

2022년 '일가정양립실태조사'에 따르면 근로자는 육아휴직이나 육아기 근로시간단축제도를 사용하지 못하는 이유로 ‘업무공백 부담, 동료 눈치(25.6%)’를 1위로 꼽았다. 반면 기업은 ‘대체인력을 찾기 어렵다(22.7%)’를 가장 많이 꼽았다. 

일각에서는 육아휴직 사용을 늘리기 위한 ‘육아휴직 의무화’를 주장한다. 하지만 이는 육아휴직자의 업무가 주변 동료에게 전가되는 본질적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다.

결국 대체인력 채용을 쉽게 해주는 등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부는 육아휴직 대체인력을 제공하는 '인재채움뱅크'를 운영하고 있다. 하지만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2022년 인재채움뱅크 이용 실적은 4215명에 불과하며 지난해 인재채움뱅크를 통해 취업한 사람은 모두 3800여 명에 그친다. 지난해 전체 육아휴직 사용자가 12만6008명, 육아기근로시간 단축 사용자가 2만3188명인 점을 고려해보면 대부분의 사업장에선 동료들이 육아휴직자의 업무를 떠안게 되는 셈이다.

'계약직 일자리'인 탓에 인재채움뱅크 인재 확보가 쉽지 않은 것도 대체인력 활용이 저조한 이유다. 뱅크의 인재 확보를 위한 보상 유인을 강화해야 한다고 지적이 나오는 배경이다. 경력단절 여성이었지만 인재채움뱅크를 통해 취업한 한 근로자는 "채용되자마자 업무에 바로 투입이 됐지만, 육아휴직자로부터 인수인계를 전혀 받지 못해 많이 고생했다"면서도 "빈 경력을 채울 수 있는 장점이 있고, 보상 유인만 확실하다면 또 할 것 같다"라고 말했다.

자료=고용노동부


대체인력을 활용할 수 없는 직군도 문제다. 판교에 있는 회사의 경영지원팀장 D씨는 "대체인력을 뽑기 어려운 자리인 만큼 회사는 다른 직원들에게 업무를 분산시키라는 입장"이라며 "동료들에게 금전적 보상이라도 있다면 덜 미안할 것 같다"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정부는 현재 중소기업이 출산전후휴가, 육아기근로시간단축에 따른 대체인력을 채용한 경우 대체인력 지원금(월80만원)을 지원하고 있다. 올해 7월부터는 육아기근로시간단축에 따른 업무를 분담한 동료근로자에게 보상을 지급한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지원금(월20만원)을 시행할 예정이다.

다만 이에 대해서는 터무니없이 부족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 중견기업 인사담당자는 "사용자 지원금이라 직원들은 구경도 못 해봤고 이마저도 소속팀 사원들에게 배분하려 치면 턱없이 부족한 액수"라며 "위탁 근로자의 경우 일을 떠안는 건 위탁 회사 동료들인데 지원금은 원소속 회사가 받는 웃지 못할 일도 있다"라고 설명했다.

곽용희 기자 ky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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