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 넘치면 안 되는 사람이 있다, 그건 바로…군주 [스프]

심영구 기자 2024. 5. 19. 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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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비자는 왕에게 사랑이 넘치면 안 된다고 단단히 경고합니다.

<설의> 편에선 인의(仁義)의 군주는 나라를 망친다고 노골적으로 표현합니다.

특히 나라를 다스리는 데 총애하는 사람에게 결정을 맡기거나 그에 휘둘리는 인상을 주게 되면 신하들은 군주를 가볍게 보고, 총애하는 사람을 중히 여기게 된다고 경계합니다.

총애하는 신하, 친인척, 지인 등 군주의 가까운 사람들에게 은혜를 베푸는 것은 대단히 위험하다는 일화도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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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비자-정치적 인간의 우화 ⑩] 가까운 사람일수록 죄지은 자에게 반드시 벌을 줘야 한다 (글 : 양선희 소설가)
#1
위나라 혜황이 복피에게 물었다.

"그대는 나에 대한 평판을 들었을 터인데, 들어보니 어떻던가?"

복피가 말했다.

"왕께서는 자애롭고 은혜로운 분이라고 들었습니다."

왕은 아주 기뻐하면서 말했다.
"그러하니 앞으로 안정된 상태에 이르지 않겠는가?"

그러자 복피가 대답했다.

"왕의 공으로 망하는 데에 이를 것입니다."
"백성들은 나를 자애롭고 은혜롭다고 했다. 행동이 선한데 어찌하여 망하는 길로 간다고 하는가?"

왕의 물음에 복피는 이렇게 답했다.

"본시 자애로운 자는 측은한 마음을 갖고 은혜로운 자는 베풀기를 좋아합니다. 그러나 측은하다 하여 죄가 있어도 벌을 주지 않고, 베풀기를 좋아하면 공을 세우지 않아도 상을 줍니다. 과오는 있는데 죄가 없고, 공은 없는데 이득이 주니 비록 망한다 해도 당연하지 않습니까?"

한비자는 왕에게 사랑이 넘치면 안 된다고 단단히 경고합니다. <설의>편에선 인의(仁義)의 군주는 나라를 망친다고 노골적으로 표현합니다. 이런 얘기입니다.
#2
어린 자식에 대한 애정은 어머니보다 앞설 수 없다. 그러나 자식이 잘못을 하면 스승을 따르게 하고, 병이 들면 의원에게 보낸다. 스승을 따르지 않으면 장차 형벌로 떨어지고, 의원을 따르지 않으면 장차 죽을지도 모른다.

어머니가 아무리 자식을 사랑해도 형벌을 면하거나 죽음을 구하지 못한다. 어머니가 애정으로 집안을 보전할 수 없는데, 어찌 군주가 사랑으로 나라를 지탱하는가. 군주의 사랑이 넘치면 아래가 방자해지고, 요행을 바라게 된다.

특히 나라를 다스리는 데 총애하는 사람에게 결정을 맡기거나 그에 휘둘리는 인상을 주게 되면 신하들은 군주를 가볍게 보고, 총애하는 사람을 중히 여기게 된다고 경계합니다. 이렇게 되면 군주는 주인이 아니라 '손님' 같은 처지로 떨어진다는 것입니다. 총애하는 신하, 친인척, 지인 등 군주의 가까운 사람들에게 은혜를 베푸는 것은 대단히 위험하다는 일화도 많습니다.
#3
성환이 제나라 왕에게 말했다.

"왕께서는 너무 사랑이 많으시고, 너무 사람을 동정하십니다."

그러자 왕이 되물었다.

"크게 사랑하고 크게 동정하니 평판이 좋지 않으냐?"

이에 성환이 말했다.

"그것은 신하들에게나 선해야 한다는 것이지 지금 군주가 행하시는 것처럼 하는 것은 아닙니다. 무릇 신하들은 반드시 인애를 보여야 그 후에 가히 함께 도모할 수 있고, 남을 동정하는 마음이 있어야 나중에 가까워질 수 있습니다. 인애가 없으면 함께 도모할 수 없고, 동정하지 못하면 가까이하지 못합니다."

왕이 되물었다.

"그렇다면 나는 어떤 점이 잘못 인애롭고, 어떤 점이 너무 남을 동정한다는 것인가?"

그러자 성환이 대답했다.

"왕께서는 설공(맹상군의 아버지로 왕의 친척)을 크게 사랑하시고, 공실 일족인 전田 씨들을 지나치게 동정합니다. 설공을 지나치게 사랑하시면 그에게 권력이 집중되니 중신들의 권위가 낮아지고, 공실인 전 씨 일족을 지나치게 가엽게 생각하시면 숙부와 사촌과 조카들이 범법을 하게 됩니다. 대신들이 힘을 못 쓰면 외국을 방어해야 할 병사들이 약해질 것이고, 공실 일족이 범법을 하면 국내 정치가 혼란스러워질 것입니다. 외적을 방어할 군대는 약하고, 국내 정치는 어지러운 것을 두고 망국의 원인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군주의 사랑은 망국의 원인이 되지만, 그의 작은 관심이라도 받는 이들에겐 이익이 무궁무진합니다.
#4
제나라 재상 정곽군이 친구와 함께 오랫동안 얘기를 나누었더니 그 친구가 부유해졌다. 또 측근에게 수건을 주었더니 그 측근이 중요한 사람처럼 되었다.
오래 이야기를 나누고 수건을 준 일은 작은 밑천인데도 재상의 친구라는 이유만으로 그것이 부를 이루는 기반이 되었다.

한비자는 가까운 사람일수록 '필벌(必罰)'하라고 권합니다. 필벌은 한비자가 권하는 군주의 정치술 '7술'의 둘째 덕목이기도 합니다. 실제로 필벌의 의지를 대내외적으로 천명하는 것만으로도 나라가 안정되고, 적국도 감히 다른 마음을 먹지 못한다고도 하죠. 그래서 위나라 사군은 자신의 '필벌 의지'를 천명하기 위해서 이웃에 성을 내주겠다고 제안하기도 합니다.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

심영구 기자 so5what@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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