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라운드 인생] 남들 모르게 칼을 갈았던 정준원
※ 본 기사는 농구전문 매거진 점프볼 5월호에 게재됐음을 알립니다.
2009년 드래프트 2라운드 4순위 지명
1라운드에 뽑히기를 기대했는데 1라운드 지명을 마치고 쉬는 시간일 때 큰 실망감을 느꼈다. 그 순간 생각이 많아져 만감이 교차한다. 정신없이 2라운드 4순위에 불리면서 ‘가서 더 이 악물고 해야겠다’면서도 여러 가지 복잡한 생각이 들었다. 그 순간이 그랬다.
고등학교 3학년으로 돌아간다면?
연세대는 정말 가고 싶은 대학이었다. 늦게 농구를 시작했는데 농구를 좀 더 잘 배웠으면 어땠을까 싶다. 연세대를 선택한 건 후회 없다. 가고 싶었던 학교였고, 좋은 사람을 만났다. 농구 이해도가 좀 부족해서 대학 가서 애를 먹고 적응을 못 했다. 그런 생각은 한다. 지금의 생각과 지금의 농구의 이해도를 가지고 그 때로 돌아가면 지금보다 잘 했을 거다. 고등학교 때 운동능력으로 농구를 하고 기본을 못 배웠다. 지도자를 욕하는 게 아니라 그 분도 몰랐던 거다. 모션오펜스, 플렉스, 수비에서는 반대에 있을 때 헬프 사이드 위치, 용어 등을 알고 이해를 했다면, 프로에서 배울 수 있는 걸 충분히 배웠으면 어땠을까 싶다.
연세대에서 일찍 경험한 생존 경쟁
대학 때 정말 힘들었다. 동기나 후배들이 경기를 뛰니까 그 사이에서 굉장히 자존감이 낮아지고, 자신감도 떨어지면서 플레이 하나하나도 조심스럽게 된다. 자신있게 못 한다. 잠깐 뛰다가 못 하면 나온다. 주전은 계속 뛸 수 있지만, 식스맨은 들어가서 잘 해야 한다. ‘더 준비를 하고 있어야 하겠구나’라고 생각을 바꿨다. 무조건 열심히 준비를 해야 한다. 상황이 다르다면 어떻게든 버텨야 한다고 여겼다. 그 때 아픔들이 지금 버틸 수 있는 경험이 되지 않았나 생각한다.
출전 기회 없을 때 개인훈련
슛 연습을 엄청 많이 했다. 여기에 새벽에도 사이드 스텝 등 수비 연습을 했다. 수비가 안 되니까 경기를 못 뛰었다. 따라다니는 게 안되었다. SK에서도 수비 스텝 연습을 했었다.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반복 연습을 굉장히 많이 했다. 슛 연습은 서서 쏘지 않고 하프라인 찍고 와서 들어가는 숫자를 정해놓고 던지는 등 계속 움직이면서 훈련했다. 돌파 후 백보드 슛 연습을 많이 해서 자신이 있다. 스피드가 장점인 걸 알아서 치고 들어가다 딱 멈춰서 던지면 막을 수 없을 거 같아서 그 연습을 했다. 수비 연습은 자신과의 싸움인데 LG에 있을 때 강혁 코치님(현 한국가스공사 감독)이 많이 도와주셨다. 수비는 도와주지 않으면 못 한다. 강혁 코치님 도움으로 제가 이해를 하고, 혼자서 그 연습을 많이 했다. 야간에 (훈련하러) 나가기 싫은데도 나갔다. 굉장히 열심히 했다고 자부할 수 있다.
플레이오프를 뛸 때 되게 좋았다. 남들에게 아무것도 아닐 수 있지만, 소중한 시간이었다. 저는 점점 좋아졌는데 그게 정말 크게 다가왔다. 왜냐하면 SK에 있을 때 플레이오프를 가고, 정규리그 우승할 때 못 뛰었다. LG에서는 조금씩 기회를 받았다. 플레이오프를 뛸 때는 플레이오프도 뛰는구나 생각했다. 노력한 게 빛을 발했다. 감독님 생각에 제가 있어서 플레이오프를 뛴 거라서 만족했다. 항상 부족해서 더 잘 하고 싶다는 열망이 컸는데 플레이오프를 뛸 때 감격스러웠다
DB에서 맞이한 위기
이상범 감독님께서 불러주셔서 DB로 갔다. 기회를 엄청 주셨고, 나름 고참이어서 열심히 했다. 그런데 오프 시즌부터 아픈 적이 없던 허리가 아프기 시작했다. 쉬어야 하는데 괜찮아지면 계속 운동을 하니까 부담이 되어서 시즌 개막 3경기 만에 허리 디스크가 터져서 수술했다. 농구 인생이 끝이라고 생각했다. 1년 계약이었는데 이렇게 그만둘 수 없다며 울면서 재활했다. 시즌 아웃이었는데 2개월 만에 복귀했다. D리그를 7경기 연속으로 뛰면서 몸이 올라와서 정규리그 막판 기회를 받았다. 복귀 경기(vs. KGC)에서 12점을 넣어서 남은 4경기를 주축으로 출전한 뒤 계약 연장이 되었다.
두 마리 토끼 잡은 정관장 이적
SK에서는 포기하지 않았고, LG에서는 정말 많이 부딪히며 연습했고, DB에서는 경기를 뛸 수 있는 준비가 되었다. 그리고 정관장으로 왔다. 순서가 있는 거 같다. SK에서 정규리그 우승을 할 때 잘 몰랐다면 정관장에서는 경기를 뛰며 우승에 일조했다. 고생한 걸 보여주려고 여기 왔구나 싶었다. 너무 좋은 선수들이 많았다. 양희종 형, 오세근 형, 문성곤, 박지훈, 변준형 등을 보면서 어떻게 하면 뛸 수 있을까가 아니라 어떻게 하면 이 선수들과 손발을 잘 맞출까 생각했다. 긴 시간을 뛴 건 아니지만, 우승에 기여했다. 저에게는 엄청난 터닝포인트였다.
후배들에게 해주고 싶은 조언
꾸준하고 성실히 하면 못 할 건 없다고 생각한다. 똑같은 이야기이기는 하다. 기회를 잡으려면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하고, 그 준비가 되어 있으려면 항상 남들 모르게 칼을 갈고 있어야 된다고 생각한다. 신세 한탄을 하고 있는 게 아니라 부족한 걸 채우면 어떻게든 기회가 온다. 멘탈 관리를 하면서 주문을 외우는 게 중요하다. 그러면서 행동해야 한다. 저는 그걸로 버텼다. 포기하지 않고 성실하고 꾸준하게, 이게 가장 중요하다. 하기 싫은 걸 해야 한다.
멘탈 관리는 저는 낙천적으로 생각한다. 사람이라서 화가 나고 기분이 나쁠 때도 있다. 그건 잠시다. 선수 입장에서는 (코트에) 들어갔다가 빨리 나오거나 하면 ‘나는 안 뛰어주네’고 생각할 수 있는데 그건 잠시이고, 자기 손해라는 걸 알아차렸다. 이것도 잘 되려고 하나 보다라고 계속 긍정적으로 생각하려고 했다. 아침에 일어나면 생각을 비우려고 무조건 명상을 했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잠깐 멍 때리면서 농구 생각을 안 했다. 잘 하려고 아둥바둥거리면서, 1년 계약도 하면서 스트레스를 받았는데 그걸 행동으로 옮기고 습관이 되어서 멘탈 관리를 하는 방법도 배웠다.
두 번의 EASL 경험
EASL을 뛰는 건 어디 가서 돈 주고도 못 살 엄청 큰 경험이었다. 각 나라의 좋은 팀과 경기를 하고, 두 외국선수가 뛰어서 버거운 부분도 있었다. 해외로 원정경기를 간다는 자체가 새롭게 다가왔고, 나라마다 플레이 스타일이 다르고, 몸싸움도 다르고, 심판 판정도 하드하다. 한국에서도 이건 써먹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필리핀은 개인기와 몸싸움이 좋았고, 일본은 들어오는 선수들마다 제몫을 하는 약속된 시스템이 잘 되어 있었다. 일본은 사람이 안 올 거 같지 않은 지역에 체육관이 있는데 관중이 꽉 찼다. 그런 것도 신선했다. 필리핀도 마찬가지로 관중이 많았다. 우리나라 EASL 경기는 관중이 많지 않았다. 다양한 문화, 환경을 느낄 수 있었던 정말 좋은 경험이었다. 체력적으로 힘들기는 했지만, 아무리 힘들어도 저는 다음에 기회가 있다면 나가고 싶고, 나가야 된다고 생각한다.
#사진_ 점프볼 DB(박상혁, 유용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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