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년유지형 임금피크제’ 무효 판결 2년…또다시 유효성 인정 [허란의 판례 읽기]

2024. 5. 19. 0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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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지법 “개별 동의 없어도 임피제 적용대상”
대상조치 임금삭감 등 판단 기준

[법알못 판례 읽기]

서울 종로구 서린동 KB신용정보 본사. 사진=한국경제신문



2022년 5월 26일 대법원이 한국전자기술연구원의 정년유지형 임금피크제에 대해 합리적 이유 없이 연령만을 사유로 시행하면 무효라고 판결한 이후 임금피크제의 유효성을 다투는 하급심 소송이 이어지고 있다.

임금피크제는 일정 연령에 도달하면 임금을 감액하는 제도로 ‘정년연장형’과 ‘정년유지형’으로 나뉜다. 임금피크제 도입 시점을 기준으로 2013년 고령자고용법 개정에 따라 정년을 60세로 연장하면서 수반된 조치로서 임금피크제를 도입한 경우는 정년연장형, 2016년 정년 60세 이상이 시행되기 이전에 정년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임금피크제를 도입한 경우는 정년유지형으로 분류된다.

지난 2년간 판례들이 엇갈리는 가운데 정년유지형 임금피크제의 유효성을 인정하는 수원지방법원의 1심 판결이 또 나왔다. 이는 정년유지형이라고 해서 무조건 무효가 아니라는 법원의 입장을 다시 한번 명확하게 보여준 것이다.

임금피크제의 유효성은 사업장에서 임금피크제를 시행하게 된 계기, 임금 삭감의 정도와 적용 기간, 대상 조치 여부 및 수준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판단된다. 이번 판례도 임금피크제의 도입 목적이 타당하고 적정한 대상 조치가 이뤄졌다고 보고 유효성을 인정한 경우다.

 

 도입 목적 타당, 적정한 대상 조치했다면 ‘유효’

법조계에 따르면 수원지방법원은 지난 4월 3일 개별적 동의를 받지 않고 정년유지형 임금피크제를 실시했더라도 그 도입 목적이 타당하고, 근로자 불이익을 줄이기 위한 대상 조치를 실시했다면 고령자고용법 및 헌법에 위반되지 않는다고 판결했다.

해당 사건의 피고인 공공기관은 2급 이상 근로자들의 정년을 만 60세, 3급 이하 근로자들의 정년을 만 58세로 정했다가 2016년 들어 전체 직급의 정년을 만 60세로 통일했다.

그러면서 만 58세부터 만 60세까지 2년간 1급 근로자들의 경우 매년 45%, 2급 근로자들의 경우 매년 40%의 임금을 감액하는 내용의 이 사건 정년유지형 임금피크제를 시행했다.

다만 3급 이하 근로자들에 대해서는 정년연장형 임금피크제를 적용했다. 이에 2급 이상 근로자들인 원고들은 이 같은 정년유지형 임금피크제 도입에 개별적 동의를 하지 않았다며 임금차액 지급을 청구하는 소송을 제기했다.

쟁점은 원고들이 임금피크제 적용 대상인지 여부와 피고가 임금 삭감에 따라 업무 강도를 줄이는 등의 적정한 대상 조치를 실시했느냐였다. 피고 측 대리를 맡은 법무법인 세종의 기영석 변호사는 “원고들이 개별적 동의를 하지 않았더라도 임금피크제를 적용받으며 그 도입 목적이 타당하고 피고가 근로자들의 불이익을 줄이기 위해 적정한 대상 조치를 실시했다”고 피력하며 법원의 판결을 끌어냈다.

정년유지형 임금피크제의 경우에도 임금 삭감의 폭이나 기간, 총액 등에 있어 근로자에게 초래되는 불이익이 크지 않고 충분한 대상 조치가 행해졌다면 유효성이 인정되는 추세다. 상고심이 진행 중인 한국광물자원공사의 정년유지형 임금피크제 역시 1심에서 유효성이 인정된 사례다.

서울동부지방법원 제15민사부(부장판사 정완)는 2022년 10월 27일 공사 퇴직근로자 7명이 회사를 상대로 낸 임금청구 소송에서 임금 감액률이 과도하지 않고 임금피크제에 들어간 근로자를 보호하는 조치를 했다면 무효가 아니라고 보고 공사 측의 손을 들어줬다.

 

 “정년연장형·정년유지형 모두 적용”

2022년 대법원 판결이 설시한 임금피크제의 유효성 판단 법리는 정년유지형 및 정년연장형 임금피크제에 모두 적용될 수 있다.

최근 2년간의 하급심 판결을 보면 정년연장형 하급심 판결에서도 대법원 판결이 제시한 ①임금피크제 도입 목적의 타당성 ②대상 근로자들의 불이익 ③임금 삭감에 따른 대상 조치 여부 및 그 적정성 ④임금피크제로 확보한 재원의 도입 목적에 부합한 사용이라는 네 가지 기준을 최소한 판단의 요소로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된다.

서울중앙지법이 2022년 6월 16일 선고한 KT 사건과 2023년 1월 19일 선고한 삼성화재 사건의 경우 재판부는 대법원 판결이 설시한 기준에 따라 각사의 정년연장형 임금피크제를 적법한 것으로 판단했다.

대상 조치나 근로자의 불이익 정도를 판단할 때 정년연장 자체를 임금 삭감에 대응하는 가장 중요한 보상으로 고려해 판단하는 경우도 있으므로 정년연장형의 경우 정년유지형에 비해 유효하다고 판단될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높다.

그러나 정년연장형 임금피크제라 하더라도 임금 삭감이 지나치게 단기간에 과도하게 이뤄지면 유효성이 부정될 수 있다. 최근 법원은 정년연장으로 인해 근로자들의 보수 총액에 어떤 변화가 발생했는지를 비교하는 판단 경향을 보인다.

KB신용정보의 정년연장형 임금피크제는 임금 삭감의 폭이 지나치게 커서 1심에서 무효로 판단된 경우다. 서울중앙지방법원 제41민사부(부장판사 정회일)는 2023년 5월 11일 KB신용정보 전현직 근로자 4명이 회사를 상대로 낸 임금피크제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렸다.

임금피크제 도입 후 임금 수준이 연간 보수 총액 대비 300%에서 225%까지만 수령이 가능해 임금총액이 삭감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을 지적한 것이다. 현재 항고심 진행 중이다.

적법한 취업규칙 불이익 변경 절차를 거치지 않은 임금피크제는 무효로 판단될 수 있다. 대구경북능금농업협동조합의 경우 임금피크제 도입을 위한 취업규칙 변경 과정에서 근로자들의 동의를 제대로 받지 않았다는 점이 문제가 됐다.

대구지방법원 제14민사부(부장판사 김정일)는 2023년 4월 27일 퇴직근로자 5명이 조합을 상대로 제기한 임금 청구 소송에서 “취업규칙을 불리하게 변경할 때 갖춰야 할 절차적 요건을 충족하지 못했다”며 원고 승소로 판결했다.

임금삭감에 대한 충분한 대상 조치가 없는 정년유지형 임금피크제의 경우 무효로 볼 수 있다. 부산지방법원 제6민사부(재판장 남재현)는 2023년 5월 25일 부산시설공단 재직자와 퇴직자 43명이 제기한 임금피크제 무효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을 했다.

재판부는 “임금피크제 시행 전후로 담당 업무, 업무량, 근로 시간에 대한 조정이 전혀 없었다”며 “임금피크제로 마련한 재원으로 청년 대상 신규 채용을 확대하기는 했으나 이는 원고들에 대한 대상 조치로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돋보기]
 

 임금피크제 유효성 기준, 중노위 판정에도 적용

2022년의 대법원 판결이 설시한 임금피크제의 유효성 판단 법리는 최근 중앙노동위원회 판단에서도 적용됐다.

중노위는 5월 8일 임금피크제 대상이라는 이유로 충분한 검토나 협의도 없이 직원을 하급직 자리로 옮긴 것은 ‘부당 전직’이라고 보고 사용자 측에 전직을 취소하고 임금 차액을 지급하라는 구제명령을 내렸다.

A 씨는 B 도서관의 전문직 사서 3급 대표도서관장으로 채용돼 일하던 중 임금피크제 대상자가 됐다. 사용자는 임금피크제에 따라 A 씨의 임금을 일부 삭감하고 규모가 작고 6급 관장이 있던 C 도서관장으로 옮겨 일하게 했다.

사용자 측은 임금 삭감에 따른 주 2시간의 단축근무를 실질적으로 보장하기 위해 업무 경감이 가능한 자리로 발령 낸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중노위는 3급 대표도서관장을 6급이 관장으로 있던 단위도서관으로 전직한 것은 경력관리 측면에서도 큰 불이익이고, 전직 과정에서 A 씨와의 협의도 부족했다고 지적했다.

이번 중노위 판정은 임금피크제가 유효하려면 도입 목적의 타당성, 대상 조치의 적정성 등을 판단해야 한다는 대법원의 법리 기준을 엄격하게 적용한 것으로 볼 수 있다.

허란 한국경제 기자 wh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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