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원 구단주가 전해준 '꽃다발'…'국민타자' 이승엽 감독, 100승의 기쁨보다 책임감을 더 느꼈다 [MD잠실]
[마이데일리 = 잠실 박승환 기자] "작년에 정말 큰 공부를 했다"
두산 베어스는 18일 서울 잠실구장에서 열린 2024 신한은행 SOL Bank KBO리그 롯데 자이언츠와 팀 간 시즌 5차전 홈 맞대결에서 8-3으로 완승을 거뒀다.
최근 9연승을 질주한 이후 좋았던 흐름이 한풀 꺾였던 두산. 특히 전날(17일)은 '루키' 최준호의 역투에도 불구하고 타선이 이렇다 할 힘을 쓰지 못하면서, 3경기에서 패-무-패를 기록했다. 하지만 이날은 달랐다. 전날 신동빈 구단주가 선수단을 격려하기 위해 잠실구장을 방문해 승리를 맛봤다면, 이날은 박정원 구단주가 잠실을 찾았고, 화끈한 타격을 바탕으로 롯데 마운드를 두들겼다. 특히 이날 승리는 남다른 의미가 있는 승리였다. 바로 이승엽 감독의 통산 100번째 승리였기 때문.
이승엽 감독은 지난 17일 "내 100승은 전혀 중요하지 않다. 정말 하나도 신경 쓰지 않고 있다. 500승을 한다면, 그만큼 감독으로서 자리를 지키는 것인데, 100승은 2년만 감독을 하면 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그저 오늘 이기자는 생각만 하고 있다"고 개인 통산 100승을 크게 의식하지 않는 눈치였으나, 마침내 100번째 승리를 손에 넣었다. 공교롭게도 상대는 또 롯데였다. 2022시즌이 끝난 뒤 두산의 지휘봉을 잡은 이승엽 감독은 4월 1일 잠실 롯데전에서 연장전 접전 끝에 호세 로하스(現 뉴욕 양키스)의 끝내기 홈런에 힘입어 데뷔전을 승리로 장식했는데, 100번째 승리의 상대도 롯데였다.
이날 두산의 '토종 에이스' 곽빈은 컨디션이 썩 좋아보이지 않았다. 1회부터 만루 위기를 자초, 무려 30구를 던지는 등 불안한 스타트를 끊었다. 2회에는 롯데의 하위 타선을 삼자범퇴로 묶어내며 안정을 찾는 듯했으나, 3회 다시 위기에 몰린 뒤 점수를 내줬다. 그리고 6회에도 마운드에 올랐으나, 이닝을 매듭짓지 못하는 등 4승(4패)째를 손에 넣었으나, 5⅓이닝 동안 투구수 101구, 7피안타 3볼넷 5탈삼진 3실점(3자책)으로 아쉬운 투구를 기록했다. 그리고 김택연(1⅓이닝)이 가장 큰 위기에서 소방수 역할을 해낸 뒤 최지강(1⅓이닝)-이영하(1이닝)가 차례로 등판해 뒷문을 걸어잠갔다.
마운드가 흔들릴 때 힘을 낸 것은 타선이었다. 이날 두산에서는 '캡틴' 양석환이 4년 연속 두 자릿수 홈런을 기록하는 등 4타수 2안타(2홈런) 5타점 2득점으로 원맨쇼 활약을 펼쳤다. 그리고 김기연이 3타수 2안타(1홈런) 1타점 2득점, 하루 휴식을 취하고 돌아온 정수빈이 2안타(1홈런) 1타점 2득점, 전민재가 2안타 1타점 1도루로 존재감을 뽐내며 팀 승리에 큰 힘을 보탰다.
경기가 끝난 뒤 만난 이승엽 감독은 "오늘 (곽)빈이가 무사 1, 2루에서 시작을 했는데 무실점으로 막았다. 그리고 (양)석환이가 홈런을 쳐주면서 흐름이 바뀌었고, 덕분에 곽빈이 조금 편안한 마음으로 안정을 찾지 않았나 생각한다"며 "막상 승리를 하고 나서 꽃다발을 전해주니 100승이 조금 와닿는 것 같다. 특히 회장님께서 야구에 대한 관심이 많으시다. 항상 지켜보고 있다는 생각을 갖고, 책임감을 갖고 경기에 임하고 있는데, 직접 내려와서 꽃다발을 전해주셔서 영광스럽다. 책임감이 더 느껴진다"고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100승까지의 과정이 쉽지는 않았다. 지난해 정규시즌 마지막 경기를 마친 뒤에는 포스트시즌 진출 성공에도 불구하고 팬들에게 야유를 받기도 했다. 이승엽 감독은 "시행착오가 많았다. 시즌이 끝난 뒤 복기를 했는데, 생각했던 것보다 더 많은 것이 필요한 게 감독이었다. 그냥 서 있는 것이 감독이 아니라는 걸 느꼈다. 정말 큰 공부를 했다. 그래서 더 완벽해지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지만, 갈 길이 멀다. 멀지만, 부족한 부분을 경기를 통해 메운다는 생각으로 임하고 있다. 그저 우리 팀 선수들과 좋은 분위기 속에서 좋은 경기를 하면서 조금이라도 더 이길 수 있도록 하겠다"고 힘주어 말했다.
감독 첫 승을 비롯해 100승, 현역 시절에는 400호 홈런, 56호 홈런까지 모두 롯데를 상대로 얻어낸 기록들. 이에 이승엽 감독은 "선수 때도 그랬는데, 지도자가 되고도 그런 것 같다. 지금 롯데가 최하위에 있지만, 우리 팀에게는 정말 까다롭다. 상대 전적도 뒤지고 있다"며 "그저께(KIA전)에서 투수를 무리하게 쓴 것도 연승 이후에 연패가 길어지면 안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KIA를 상대로 무승부를 하면서 우리 팀이 조금 더 강해졌다고 생각한다. 그날 경기에 졌다면, 오늘 경기 전까지 3연패였을 것이다. 작년에도 연승 이후 롯데전부터 좋지 않았기 때문에 연패를 꼭 끊고 싶었다"고 말했다.
경기가 끝난 뒤 두산 선수단은 이승엽 감독의 100승을 진심으로 축하했다. 우연치 않게 박정원 구단주가 방문한 날 100승을 달성하게 됐고, 박정원 구단주는 "축하합니다!"라며 이승엽 감독에게 꽃다발을 건넸다. 그리고 양석환이 선수단을 대표해 이승엽 감독에게 꽃다발을 안긴 뒤, 선수단이 머리를 맞댄 끝에 고안해낸 특별 제작 케이크까지 선물했다. 이승엽 감독은 마치 준비가 된 듯 양석환을 향해 '케이크를 들고 돌진하라'는 신호를 보냈지만, 양석환은 손으로 크림을 찍어 이승엽 감독의 얼굴에 발라주며 100승의 기쁨을 함께 나눴다.
이승엽 감독은 "양석환에게 '부어라'고 했는데, 못 하더라"고 웃으며 "양석환이 너무 잘해주고 있다. 나도 어렸을 때 많은 지도자를 모셨지만, 무게를 잡거나 하는 것은 나와 맞지 않다. 선수들과 고민도 이야기할 수 있고, 팀 메이트로 모든 것을 공유할 수 있는 게 좋다. 스승과 제자보다는 같은 팀에 소속된 사람으로서 선수들과 지내고 싶다"고 앞으로도 지금과 똑같이 선수들과 스스럼없이 지낼 수 있는 지도자가 되겠다고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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