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냄새 향해 돌진하는 ‘이 나라’…미국 인정받고 본격 달러벌이 나서나 [신짜오 베트남]

홍장원 기자(noenemy99@mk.co.kr) 2024. 5. 18. 1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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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든 미국 대통령(왼쪽)과 판민찐 베트남 총리가 악수하는 모습. <연합뉴스>
[신짜오 베트남 - 293] 베트남에서 체류하는 한인들이 자주 하는 말 중에 “베트남은 자본주의 그 자체다”가 있습니다. 겉으로 사회주의 외피를 쓰고 있는 베트남에서 실제 사회주의 특유의 무언가를 찾기가 오히려 어렵습니다. 평균연령 30대 미만 세대가 절반가량인 베트남의 청년층은 돈을 벌 기회를 찾기 위해 두 눈을 반짝입니다.

어린 아이를 두고 있는 젊은 학부모는 자녀에게 더 나은 기회를 물려주기 위해 사교육에 목을 맵니다. 사회 전체가 현 상황보다 한 단계 위로 올라가기 위한 에너지로 가득 차 있습니다. 지금 다니는 회사보다 월급을 다만 얼마라도 더 주는 곳이 있다면 의리고 뭐고 다 내팽기고 옮기는 일이 허다합니다. 집 여러 채를 사서 세를 주며 월세 수입으로 거액을 벌어들이며 노후를 편하게 즐기는 사람도 많습니다.

미국이 수많은 반대에도 불구하고 베트남전에 뛰어들어 피를 흘린 것은 아마도 베트남의 공산화를 막기 위한 게 가장 큰 명분이었을 것입니다. 미군은 베트남에서 패배해 목표를 달성하지 못했지만 공산화된 베트남은 맹렬히 돈냄새를 쫓아 뛰어가고 있으니 신기한 역설입니다.

얼마전 미국과 베트남간 관계를 재정립할 수 있는 중요한 이벤트가 발생했습니다. 미국이 베트남의 무역 지위를 현재 ‘비시장경제’(NME)에서 ‘시장경제’로 격상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로이터통신이 보도한 것입니다.

이는 크게 두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는 중국 견제입니다. 얼마 전 바이든 정부는 중국산 전기차에 대한 관세를 기존 대비 4배 올리는 강경책을 내놨습니다. 기존 관세율이던 25%에서 100%로 4배 상향하기로 방침을 정했다는 것입니다. 또, 중국의 핵심광물과 태양광패널, 배터리 등 부품에도 관세 인상이 예정되어 있습니다. 미국은 중국을 옥죄는 대신 인접국가인 베트남을 키우는 전략을 세운 것으로 보입니다. 애플을 비롯한 미국 기업들이 잇달아 베트남을 방문해 공장 설립 안건들을 논의하는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하노이 고층빌딩 전경. <연합뉴스>
미국과 베트남간 관계가 급속하게 가까워 지는 것도 베트남을 달리 바라보는 원인이 됐습니다.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지난해 9월 베트남을 방문해 양국 관계를 ‘포괄적 전략 동반자’로 격상하기로 상호간 합의했습니다. 기존에 베트남이 포괄적 전략 동반자 관계를 맺은 나라는 한국과 인도, 러시아, 중국 등 4개국뿐이었습니다. 새롭게 미국이 리스트에 추가되며 베트남 입장에서는 외교관계의 중대한 변화를 모색할 시점이 되었습니다. 이번에 미국이 베트남을 시장경제 지위로 올리는 것을 검토하는 것도 베트남의 끈질긴 요청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만약 베트남 무역 지위가 올라갈 경우 베트남 입장에서 미국에 수출할 때 관세를 크게 줄일 수 있습니다.

베트남 언론인 VN익스프레스에 따르면 베트남에서 키워 미국으로 납품하는 냉동 새우 관세는 현재 25.76%입니다. 반면 옆나라 태국에서 새우를 수출하면 관세가 5.34%만 붙습니다.

베트남 입장에서 미국 관세가 낮아지면 글로벌 최대 소비시장이 열리는 효과를 낼 수 있습니다. 옆나라 중국으로 수출하던 물량 상당수를 미국으로 돌릴 수 있습니다.

미국 상무부는 최근 워싱턴DC에서 베트남의 무역 지위 변경에 대한 공청회를 열고 이에 대한 찬반 의견을 들었습니다. 상무부는 7월 말까지 검토를 마칠 계획입니다.

가장 큰 관건은 미국 내 반대여론입니다. 저렴한 베트남 산 물품이 들어올 때 손해를 보는 미국내 이익집단은 베트남 무역 지위 격상을 고운 눈으로 보지 않을 것입니다.

현재 미국이 비시장경제로 지정한 국가는 베트남과 중국, 러시아, 벨라루스 등 12개국입니다. 당연히 주로 사회주의 국가가 지정되어 있습니다.

주베트남 미국 대사 출신으로 현재 미·아세안 비즈니스협의회 회장인 테드 오시우스는 “베트남은 이미 시장경제다. 미국 많은 기업이 베트남의 성장 잠재력을 인정하고 상당한 투자를 했다”고 말했습니다.

베트남 내 여론은 어떨까요. 댓글로 본 베트남 사람의 속내는 찬양일색입니다. “베트남은 이미 자격을 갖췄다”, “시장경제 인정을 받으면 베트남 경제는 번창할 것이다”, “미국과의 관계개선은 베트남의 발전을 의미한다” 등 긍정적인 내용으로 도배가 되어 있습니다.

베트남은 아직 1인당 GDP가 4000달러 안팎 개발도상국이지만 체류시절 느낀 베트남은 독특한 구석이 있었습니다. 국제 관계 사안을 다룰 때 ‘열등감’ 없이 굉장히 주도적인 스탠스를 가지고 있다는 점입니다.

아마도 근세 이후 전쟁에서 한 번도 패배한 적이 없는 역사가 영향을 미쳤을 것입니다. 프랑스와 싸워서 이기고, 글로벌 패권국가 미국도 물리치고, 국경지역에서 중국도 격퇴시킨 100여년간의 베트남 역사는 베트남 국민에게 특유의 자신감을 심어주었습니다.

불과 몇 십 년 전 서로 총칼을 들고 치열하게 싸웠던 두 나라이지만 베트남 입장에서 미국에 대한 적개심은 아예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베트남 입장에서 문제가 되는 건 “이게 돈이 되느냐 마느냐” 여부지 과거 미국과의 전쟁에서 나왔던 크고 작은 에피소드는 아예 공론장에서 눈 씻고 찾아볼 수가 없을 지경입니다.

아마도 베트남 국민의 깊은 무의식 아래에는 “미국은 우리에게 전쟁에서 진 나라”라는 인식이 자리 잡고 있을 겁니다. 아마도 이런 점이 베트남이 미국을 ‘컴플렉스’라는 렌즈를 거치고 보지 않는 이유일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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