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남용되는 상향등, 전문가 “앞차 위협할 때 쓰는 거 아니다” 일갈

이동준 2024. 5. 18. 16:28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야간 등화장치에 따른 보행자 가시거리. 사진=한국교통안전공단 제공
 
모든 차량에는 상향등이 장착돼 있다.

상향등은 전조등의 조사 방향이 일반 전조등보다 위쪽을 향하고 있는 차량 조명을 말한다.

이처럼 어두운 밤길 안전운전을 위해 준비된 상향등이 오·남용되는 사례가 종종 전해져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18일 세계일보와 통화한 한 전문가는 “상향등 기능을 모르는 운전자는 아마 없을 것”이라면서도 “가장 많이 오·남용되고 있다”고 지적한다.

오·남용의 대표적 사례는 운전 중 발생하는 시비에 사용되는 것이다.

실제 지난해 12월 운전 중 자신의 앞으로 차선을 변경했다는 이유로 보복 운전하고 폭행한 80대 A씨가 벌금형을 선고받았다.

경찰에 따르면 80대 운전자는 대전 동구의 한 도로 1차선에서 운전하던 도중 옆 차로에 있던 B씨 차량이 자신 앞으로 차선을 변경하자, 상향등을 7회 작동하고 2차선으로 변경한 뒤 B씨 차량을 밀어붙일 듯이 운전했다.

이에 대전지법 형사2단독(재판장 윤지숙)은 특수협박, 폭행 혐의로 기소된 A씨(85)에게 벌금 500만원을 선고했다.

전문가는 이같은 사례에 대해 “상향등은 다른 차량 운전자를 위협할 때 쓰는 게 아니다”라고 일갈했다.

상향등은 어두운 밤길 주행을 위해 사용돼야 한다.

지난해 11월 한국교통안전공단이 자동차 전문 채널 오토뷰와 경기도 화성시 자동차안전연구원에서 등화장치·틴팅 농도에 따른 가시거리 비교 시험을 한 결과, 밤에 차량 주간주행등만 켜고 달리면 10여m 앞의 보행자도 발견하기 어려워 사고 위험이 커진 것으로 드러났다.

야간에 주간주행등만 켠 경우 운전자의 시야에서 보행자가 16m 앞에 다가와야 인식할 수 있었다. 하지만 야간에 주로 사용하는 하향등을 켜면 29m, 상향등을 켜면 무려 79m 떨어진 보행자도 발견했다.

다만 앞 유리창 틴팅 농도에 따른 가시거리 측정 결과 야간에 하향등 점등 시 틴팅 농도 50%에서는 24m였으나, 30%에서는 20m, 15%에서는 18m로 감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실험 결과에 대해 한국교통안전공단 권용복 이사장은 “야간이나 안개 환경에서는 주간주행등만으로 시야 확보가 어려워 하향등이나 안개등과 같은 등화장치의 작동 여부를 사전에 확인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다양한 운행조건에서의 시정거리 확보를 위해 등화장치를 올바르게 사용하고, 적정한 틴팅 농도를 선택할 것을 권한다”고 당부했다.

앞서 강원도 고성군에서 70대 보행자가 승용차에 치어 숨지는 안타까운 사고가 발생했다.

당시 가해 운전자(50대·여성)는 상향등을 켜지 않은 채 자신의 아반떼 승용차를 몰다 참혹한 사고를 냈다.

해당 도로는 가로등이 설치되어있지 않은 곳으로 만에 하나 발생할 수 있는 사고 방지를 위해 상향등 사용이 필요한 곳이었다.

특히 경찰이 확보한 블랙박스 영상을 보면 가해 차량 앞에는 다른 운전자가 없었고, 반대편 차선에도 주행 중인 차량은 없었다.

아반떼의 마른 노면과 젖은 노면의 평균 제동거리는 42.05m 정도다.

예컨대 그가 틴팅 농도 30%에 상향등을 켰다면 피해자를 약 54m 전에서 발견할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50%일 경우 약 20m더 긴 64m 정도다.

하지만 이른바 ‘국민 틴팅’으로 불리는 전면 30~35%, 측면 15%는 관련 법 규정상 불법에 해당한다.

틴팅 농도 규정은 도로교통법과 국토교통부가 관리하는 자동차안전기준에서 찾을 수 있다.

국토부에 따르면 도로교통법 제28조에 자동차 유리 가시광선 투과율은 전면 70%, 운전석 좌우 측면 40% 이상이어야 한다고 명시돼 있다.

전문가는 틴팅이 아니더라도 상향등 사용이 충분히 가능한 상황에서 보행자를 치어 사망에 이르게 하지 않았을 수 있다는 견해다. 또 차로 치기 전 제동을 할 수 없더라도 사망까진 이르지 않을 수 있다고 설명한다.

제동거리가 있어 사고는 피할 수 없더라도 시속 80km로 달리다 브레이크 조작 없이 사고를 낸 것과 브레이크를 밟아 감속된 상태에서 발생한 사고는 분명 차이가 있다는 것으로, 이 사고의 경우 “못 봤다”, “상향등 사용은 의무가 아니다”라는 주장은 단순 가해 운전자의 변명이 되는 셈이다.

전문가 역시 이런 점을 지적한다. 전문가는 “상향등은 사고를 막고 주변 시야를 확보하는 등의 용도로 사용돼야 한다”면서 “올바른 상향등 사용은 운전자 뿐 아니라 사고를 예방하는 동시에 다른 소중한 생명도 보호할 수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동준 기자 blondie@segye.com

Copyright © 세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