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동혁의 이슈분석] 피할 수 있었던 '라건아 논란'. KBL는 무성의했고, KBA는 무능력했다
[스포츠조선 류동혁 기자] 라건아는 다시 리카르도 라틀리프가 되었다. 한국 국적을 취득한 뒤 6년을 대표팀에서 뛰었다.
하지만, KBL(한국농구연맹)은 지난 17일 서울 신사동 KBL 센터에서 열린 이사회에서 '2024~2025시즌부터 특별귀화선수 라건아를 일반 외국선수로 규정하기로 결정했다'고 공식발표했다.
2012년 외국인 선수로 KBL에 입성한 그는 2018년 법무부 심사를 통해 특별귀화를 인정받았다. 이후 특별수당을 받으며 국가대표에이스로 아시안게임, 세계선수권대회 등에서 활약했다.
논란이 일어나고 있다. '라건아 딜레마'는 일단락됐지만, 6년간 대표팀에 헌신한 선수를 다시 외국인 선수로 취급한다는 부분에 대한 불편한 시선이다.
라건아를 다시 외국인 선수로 규정한다는 KBL의 판단 근거는 단순하지만, 명확하다. 기량이 여전히 뛰어난 라건아가 국내 선수로 분류될 경우, 전력의 불균형을 초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사회가 이같은 결정을 한 핵심 근거는 6년 전 계약서에 명시된 단 '하나의 문구' 때문이다.
그동안 라건아에 대해, 대표팀 계약기간이 끝날 경우, '외국인 선수 분류 vs 국내 선수 분류'라는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문제는 라건아와 대한농구협회, KBL,그리고 소속팀 KCC가 맺은 계약서에는 '라건아를 대표팀 계약기간 완료 이후 국내 선수로 분류한다'는 조건이 없다.
KBL 측은 "라건아와의 계약서에 '2024년 5월31일 계약 종료 이후 외국인 선수 규정 여부는 이사회 결정에 따른다'는 규정만 명시돼 있다. 이 계약서 근거에 따라서 이사회를 열었고, 결국 전력 불균형이라는 이유로 라건아를 외국 선수로 규정키로 결정했다'고 부연설명했다.
냉정하게 보면, KBL 이사회의 결정은 근거가 확실하다. 라건아의 국내 선수 전환 보장이 없었던 계약서였고, 라건아 역시 특별귀화를 '공짜'로 하지 않았다. 많은 금전적 보상이 있었다.
KBL 측은 라건아의 대표팀 차출에 따른 특별수당에 대해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았다. 단 "라건아는 훈련수당을 국내 선수들의 5~7배 정도 받았고, 출전 수당 역시 매 경기 100만원 이상을 수령했다. 대회의 가치에 따라서 2~3배의 출전수당옵션이 있었고, 승리 수당 역시 별도였다"고 했다. 국내선수들이 대표팀 차출 시 일당 10만원 안팎을 받는다는 것을 감안하면 라건아의 대표팀 출전은 계약에 따른 비지니스적 성격이 더 짙었다.
게다가 라건아는 2021년을 기점으로 기량 자체가 하락하기 시작했다. 올 시즌 KCC 우승 주역으로 부활했지만, 2021~2022시즌을 앞두고 원하는 팀이 없었다. KCC 역시 전력 강화를 위해 라건아 대신 다른 외국인 선수를 물색하고 있었다.
하지만, 대표팀 에이스 라건아가 소속팀을 찾지 못할 경우, 대표팀 경쟁력을 우려한 고 정상영 KCC 명예회장은 곧바로 KCC 구단에 지시를 내렸고, 전격적으로 3년 재계약을 맺었다. 1옵션 계약이었다.
올 시즌 라건아의 연봉은 56만4000달러(약 7억5000만원)이다. 게다가 세금까지 구단에서 책임지고 있다. A 관계자는 "KCC도, KBL도 협회도 라건아의 총 연봉은 정확하게 공개되지 않고 있다. 계약의 특수성 때문이다. 단, 연간 10억원 안팎을 수령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했다.
즉, '라건아 논란'에서 그를 외국인 선수분류 결정은 아쉽지만, 어쩔 수 없는 부분이다. 올 시즌 PO에서 강력한 에이스 역할을 했던 라건아에 대해 1옵션으로 영입하겠다는 구단은 아직까지 나타나지 않고 있다. 즉, 최근 3년간 라건아는 자신의 경기력보다 높은 연봉을 받았다. 대표팀에 대한 활약상을 감안한 일종의 '보너스'이자 KCC의 '희생'이었다.
그보다 KBL과 대한농구협회에 더욱 아쉬운 부분이 있다. 일단, KBL 이사회는 라건아에 대한 결정을 '기계적'으로만 내렸다. 그동안 라건아가 대표팀에서 활약한 부분과 이를 위해 지불했던 비용과 혜택 등을 동시에 고려, 국내선수의 형평성에 따른 판단근거를 제시하지 않았다. 단순히 '라건아는 여전히 강력한 기량을 가졌기 때문에 리그 전력의 불균형을 초래한다'라는 근거만을 내세웠고, 그렇게 발표했다. 때문에 농구팬 입장에서는 불편한 시선이 있을 수밖에 없다. '6년간 대표팀에서 희생했는데, 이제 외국인 선수로 취급한다'는 그럴 듯한 동정론이 힘을 얻을 수밖에 없는 이유다. 일부 언론에서 강하게 이 논조의 기사를 내는 이유이기도 하다. 단, 라건아 논란의 정확한 팩트는 아니다.
KBL 이사회가 충분한 근거를 가지고 결정을 발표했다면, 그리고 농구팬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근거를 좀 더 자세하게 발표했다면, 쓸데없는 라건아 논란은 피할 수 있었다.
더욱 중요한 점이 남아있다. 전 세계적으로 미국을 제외한 농구 강국들은 앞다투어 귀화 선수 제도를 활용한다. 전력을 극대화하기 위해서다. '폐쇄적' 정책으로 유명했던 중국 역시 NBA 미네소타에서 뛰는 카일 앤더슨을 귀화시키면서 대세에 동참했다. 단, 한국은 귀화정책을 책임져야 할 대한농구협회가 그런 능력이 없다. 시스템도 돈도 없다.
라건아 특별귀화 역시 사실 '언발의 오줌누기' 식이었다. 귀화 선수를 물색할 시스템도, 자금도 없는 대한농구협회는 결국 KBL에서 뛰는 외국인 선수 중 가장 적합한 라건아를 귀화시켰다. KBL과 그의 소속팀에게 비용 책임을 상당부분 떠넘겼다. 라건아의 경쟁력이 매년 떨어졌지만, 6년 간 그를 귀화선수로 데리고 있을 수밖에 없었던 이유이기도 하다. 정상적 협회라면 대표팀 경쟁력 강화를 위해 좀 더 적합한 선수를 물색하는 게 당연했지만, 협회는 그런 능력도 없었다. 라건아가 계약이 만료됐지만, 여전히 차기 귀화선수에 대한 플랜은 알려지지 않았다. 구태의연하게 6년 전과 똑같이 KBL과 소속구단에게 비용을 떠넘기는 식의 귀화선수를 물색하고 있다. 디드릭 로슨의 '귀화설'도 이 배경 속에서 나왔다. '라건아 논란'은 씁쓸한 한국농구의 현실을 보여준다. KBL은 농구팬에게 무성의했고, 대한농구협회는 여전히 무능력하다. 이 과정에서 부정확한 '라건아 동정론'이 나왔다. 류동혁 기자 sfryu@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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